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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by 마을지기 posted Feb 0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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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마태복음서 5:14-16
설교일 2017-02-05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오디오파일 듣기/내려받기]

 

■ 성서 본문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세운 마을은 숨길 수 없다.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다 내려놓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다 놓아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 마태복음서 5:14-16 ―

 

■ 들어가는 이야기

 

어제가 입춘이었지요. 해마다 오는 봄이지만, 그리고 아직 봄이 되려면 더 기다려야 되지만, ‘입춘’(立春)이라는 말만 들어도 몸과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입춘이 되면 우리 조상들은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글을 써서 잘 보이는 곳에 붙였습니다. 피차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2월 첫 주일을 맞이하여, 또한 입춘을 맞이하여, 여러분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더욱 강건해지기를, 여러분이 하시는 일이 형통하게 풀려 나가기를, 그리고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마다 큰 복을 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겨울의 가장 아름다운 색깔

 

입춘이 지나기는 했지만 아직은 겨울입니다. 민주화 투쟁으로 오랫동안 옥고를 겪다가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시던 신영복 선생을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해 1월에 세상을 떠나셨지요. 그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한테 묻는다면 겨울의 가장 아름다운 색깔은 불빛이라고 하겠습니다. 새까만 연탄구멍 저쪽의 아득한 곳에서부터 초롱초롱 눈을 뜨고 세차게 살아 오르는 주홍의 불빛은 가히 겨울의 꽃이고 심동(深冬)의 평화입니다.” ―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돌베개, 2008), 172쪽.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계절은 겨울입니다. 인도에 가서 본 이색풍경들이 여럿 있습니다만, 그 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길거리에 돗자리를 펴놓고 잠을 자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노숙자들이 아닙니다. 멀쩡한 사람들도 그렇게 합디다. 그 나라는 밤에도 전혀 춥지 않아요. 겨울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겨울이 되면 온기 없이는 살지 못합니다. 밖에서 밤을 보내다가는 얼어 죽지요. 그래서 신영복 선생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겁니다. 엄동설한에 손과 발이 꽁꽁 얼어 있는데, 따뜻한 불빛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유명한 교훈 하나를 봅시다. 마태복음서 5:14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어쩌라는 말씀일까요? 밤낮없이 자동차 라이트를 켜고 다니면 될까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BC 410~BC 323)처럼, 세상이 어둡다며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니면 될까요? 뭐, 세상의 빛이 되는 이런 저런 방법들이 있겠지만, 겨울에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추운 사람을 위해서 준비하는 불빛입니다. 안도현 시인이 그랬지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누군가에게 뜨거운 사람이 된다는 것, 그것이 세상의 빛이 되어 사는 모습입니다.

 

■ 빛 속의 무서움

 

사람이 세상에서 빛이 되어 사는 또 다른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빨강머리 앤》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인공 앤이 같은 마을에 사는 짐 선장이라는 사람에게 한 말인데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짐 선장님, 나는 등불을 켜고 걷기를 좋아하지 않아요. 둥그런 불빛 바로 바깥쪽 저편의 어둠 속에서 적의에 찬 눈으로 몰래 나를 응시하고 있는 불길한 무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듯한 말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거든요. 어릴 때부터 그런 느낌을 갖고 있었어요. 어째서일까요? 완전한 어둠 속에 있을 때에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데. 어둠으로 빈틈없이 둘러싸여 있을 때에는 조금도 무섭지가 않아요.” ― 루시 모드 몽고메리(김유경 역), 《빨강머리 앤 5 - 웨딩드레스》(동서문화사, 2004), 전자책 238/781쪽. 지금 우리가 사는 곳에는 칠흑 같은 어둠을 경험허기 어렵습니다. 들판으로 나가도, 깊은 산에 들어가도, 어디엔가는 불빛이 있습니다. 그러나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조각배를 타고 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끝없는 사막 한가운데서 등잔 하나 없이 서 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도시 전체가 정전이 되었을 때 손전등 하나 없이 운동장 한가운데에 서 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그런데요, 그렇게 깜깜한 곳에서는 차라리 불빛이 없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촛불을 하나 켜면 어떻겠습니까? 그때부터 진짜 무서워집니다. 앤은, 둥그런 불빛 바로 바깥쪽 저편의 어둠 속에서 적의에 찬 눈으로 몰래 나를 응시하고 있는 불길한 무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 같은, 말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어제도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촛불이 켜졌습니다만, 악의 무리들이 들끓는 컴컴한 곳에 혼자서 촛불을 들고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은 공포 그 자체입니다. 그렇지만 촛불이 하나가 아니라 둘, 둘이 아니라, 셋, 셋이 아니라 수백, 수천, 수만이 모인다면 무서움이 물러나고 희망이 보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엄청난 세력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지’(同志)가 있어야 됩니다.

 

■ 빛 나누기

 

그렇다면 함께 촛불을 들 동지가 없을 때는 어떻게 합니까?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칠흑 속에서 살지 않는 것은 다행입니다. 그래도 동지가 있으면 좋지만, 혼자서도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중국의 사마천(司馬遷)이라는 사람이 쓴 《사기열전(史記列傳)》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옛날에 가난한 집 여자와 부유한 집 여자가 함께 길쌈을 했습니다. 우리 어린이들은 길쌈이 뭔지 모르지요? 누에나 모시 등의 재료로 실을 만들어서 옷감을 짜는 일입니다. 옛날에는 옷을 사 입는 것이 아니라 다 만들어 입었거든요. 그게 다 여성들의 몫이었습니다. 어쨌든 길쌈을 하려면 반드시 등불이 필요합니다. 낮에는 농사일을 해야 하니까요. 가난한 여자가 말했습니다. “나는 촛불을 살만한 돈이 없고, 그대의 촛불은 다행히 여광(餘光)이 있으니 나에게 그 여광을 나눠주십시오. 그대는 기왕의 촉광(燭光)을 전혀 덜지 않고도 여광으로 남에게 이익을 나눠줄 수 있습니다. ― 사마천(신동준 역), ≪사기열전1(史記列傳1)≫(도서출판 학오재, 2015), 전자책 671/2313쪽. 지금은 촛불을 켜는 것이나 전깃불을 켜는 것이 크게 부담이 안 되지만 옛날에는 빛이 귀했기 때문에 비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돈이 없어서 촛불도 못 켜고 눈 오면 눈에 반사되는 빛으로 공부를 하고 여름에는 반딧불이의 꼬리불빛으로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가난한 집에서는 길쌈을 하기도 어려웠지요. 그래서 이 가난한 집 여인이 부잣집 여인에게 제안을 한 것입니다. 어차피 촛불을 겨야 하고, 그 옆에 사람 하나 더 앉는다고 초가 더 소모되지도 않을 테니, 같이 좀 하자, 당신 덕 좀 보자, 그런 이야기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찾아보면 그런 일들이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나한테는 별로 손해가 안 되지만 남에게는 굉장히 보탬이 되는 일들 말이지요.

 

■ 맺는 이야기

 

여러분이 세상의 빛이 되어 사는 일에 한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노자는 ‘광이불요’(光而不燿)라고 했습니다. 빛이 나면서도 눈부시게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소리 소문 없이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있는 듯 없는 듯 살면서도 세상에 꼭 필요한 빛을 비추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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