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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백향목 왕궁

by 마을지기 posted Apr 0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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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사무엘기하 7:2
설교일 2017-04-02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오디오파일 듣기/내려받기]

 

■ 성서 본문

 

하루는, 왕이 예언자 나단에게 말하였다. “나는 백향목 왕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휘장 안에 있습니다.”

 

― 사무엘기하 7:2 ―

 

■ 들어가는 이야기

 

여러분, 반갑습니다. 지난 한 주간, 잘 지내셨지요? 일터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사람들 속에서, 바르게 일하셨을 줄 믿습니다. 또한 진실하게 사셨을 줄 믿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더 복된 삶을 꿈꾸며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 위에, 성령님의 따뜻한 위로와 흡족한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다윗의 안타까움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어서 구치소에 들어갔습니다. 궁궐보다 더 큰 청와대에 살다가 삼성동 자택에 와서 사는 것도 불편했을 텐데, 이제 구치소에서 살게 되었으니 그 불편함이야 말할 수도 없겠지요. 안타깝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죄 지은 사람을 구치소(아직 미결수이기 때문에 교도소는 아니지만)에 가게 하는 것은 불편하라고 보내는 것입니다. 불편하지 않다면 그런 제도가 의미가 없지요. 그런데 박근혜 씨한테는 3.9 평짜리 독방을 준답니다. 보통 여섯 명이 사용하는 방을 개조해서 제공하겠다는 것인데, 샤워시설과 접견실까지 갖추어진 방이라 특혜 시비도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사람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다윗 이야기를 잠시 하겠습니다. 다윗은 멋진 궁궐에서 살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백향목 궁궐’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백향목은 소나무 과(科)에 속하는 상록수인데, 이스라엘에는 그런 나무가 없고요, 레바논에서 주로 자랍니다. 다 자라면 높이가 약 40m, 둘레가 10m 이상 된다고 합니다. 최고급 목재로 알려져 있지요. 육상으로 운반하기 어려우니까 나무를 잘라서 뗏목을 만든 다음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까지 바다에 띄워서 보냈습니다. 이렇게 귀한 목재였기 때문에 백향목으로 여염집을 짓기는 어려웠습니다. 어쨌든 다윗이 이 백향목으로 왕궁을 지어서 거기서 살았습니다. 대단히 화려하고 훌륭한 궁궐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곳에서 매우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답이 사무엘기하 7:2에 나옵니다. 다윗이 예언자 나단에게 말한 내용입니다. “나는 백향목 왕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휘장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궤 곧 법궤는 옛날 우리나라 조선시대 왕들이 모시던 신주단지보다 훨씬 더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이 궤에는 십계명이 새겨진 돌 판과 모세의 지팡이와 광야에서 먹던 만나가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법궤가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신다고 믿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보이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지요.

 

■ 공감 능력

 

나중에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서 거기에다가 이 법궤를 모십니다만, 다윗 시대에는 성전이 없었습니다. 다윗은 그게 불편했던 것입니다. 자기는 화려한 왕궁에 사는데 하나님은 아직 천막에 계시도록 방치해두었다는 자책감 때문이지요. 그래서 성전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너는 손에 피를 너무 많이 묻혔다. 그런 피 묻은 손으로는 거룩한 성전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아무튼 중요한 점은 다윗이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안타까워했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이 여자를 빼앗기 위해서 신하를 죽인 죄를 지었을 때 예언자 나단이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지요. 부자 영감이 손님 대접하려고, 자기 양을 두고, 가난한 이웃집에서 애지중지하며 키우는 양을 빼앗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저런 죽일 놈이 있나!’ 하면서 화를 냈습니다. 나단이, ‘그게 바로 당신이오!’ 해서 다윗이 회개하지 않았습니까? 이 사건이 말해주는 것은, 다윗이 ‘공감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공감’은 영어로 ‘심퍼시’(sympathy)라고 합니다. 이 말은 원래 그리스어에인데요, ‘순 파테인’(soun pathein) 곧 ‘함께 고통을 겪다’라는 뜻입니다. ‘동정’(同情, compassion)도 같은 말입니다. 라틴어 ‘쿰 파티오르’(cum patior)가 ‘함께 고통을 겪다’라는 뜻이니까요. 남의 아픔을 함께 느낄 줄 아는 것, 그것이 ‘공감능력’이고 ‘동정’입니다. 물속에 가라앉았던 세월호 선체가 지금 목포항에 들어와 있지요. 어떤 청년이 트위터에 이런 글을 썼습디다(2017.3.31. 호랑이기운‏ @gGJHzQm16ltbMLo). “아빠랑 삼촌이 밥 먹으면서 세월호 뉴스를 보더니 ‘저거 인양비용이 얼만데!’ 이러고 앉아 있네. 그 말 듣자마자 빡쳐서, ‘아빤 내가 배 타다 물에 빠져 죽어도 시신도 찾지 말고 배도 건지지 말고 밥 잘 먹고 잘살아. 어차피 물고기 밥 됐을 텐데 건져서 뭐해?’ 이랬더니, 조용~.” 이 청년의 아버지와 삼촌은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을 돈으로만 계산하려고 하는 이 시대 사람들의 모습이지요. 그나마 나중에 입을 다물어서 다행입니다.

■ 천 원짜리 밥상

 

처지를 바꾸어 남의 사정을 헤아리는 것,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느끼는 것, 이것이 인간이 갖추어야 할 기본소양인 ‘공감능력’입니다. 이게 없으면 동물보다 못한 속물이지요. 다윗은 권력자였음에도, 부자였음에도, 죄인이었음에도, 그런 소양을 갖추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많이 벌어서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자동차 타고, 비싼 음식 먹는 것, 누가 뭐라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감능력은 가져야 됩니다. 좁은 집에 사는 사람들, 자동차 없이 사는 사람들, 싸구려 음식을 먹고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런 거 잘합니다. 부자들이 문제지요. 여러분도 부자 되거든 오늘 제가 드린 말씀을 꼭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에 훈훈한 뉴스를 한 꼭지 보았습니다(2017.3.26. 중앙일보).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동 대인시장에 아주 유명한 식당이 하나 있답니다. ‘해 뜨는 식당’이라는 이름입니다. 손님들은 이 식당에서 단돈 천 원에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래 이름보다 ‘천 원 식당’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렀습니다. 단돈 천 원만 내면 뜨끈한 밥 한 공기와 구수한 된장국과 김치, 그리고 시금치무침에 콩나물무침까지 나옵니다. 요즘 어디 가서 밥 한 끼 먹으려면 최소한 6~7천 원은 줘야 되는데, 참 싸지요? 이 식당을 운영하던 분은 김선자라는 할머니였는데, 안타깝게도 지난 3월 18일에 지병인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분이 식당을 운영한 것은 2010년부터였습니다. 젊은 시절 사업에 실패했던 경험이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김선자 씨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처럼 가슴 아픈 사람들이 마음 놓고 와서, 자존심 상하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차리고 싶었어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돕겠다는 마음도 아름답지만, 그들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하겠다는 마음은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 맺는 이야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마태복음서 7:12).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 공감능력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성경말씀 전체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보다 형편이 좋지 못한 사람을 늘 생각하면서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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