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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주인공

by 마을지기 posted Apr 1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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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출애굽기 15:19
설교일 2017-04-16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부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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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 본문

 

바로의 군마가 그의 병거와 기병과 함께 갈라진 바다로 들어갔을 때에, 주님께서 바닷물을 돌이키셔서 그들을 덮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한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고 건넜다.

 

― 출애굽기 15:19 ―

 

■ 들어가는 이야기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귀한 날이 일 년에 두 번 있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셔서 우리에게 오신 날이고, 또 한 번은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서 우리에게 돌아오신 날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 때, 그가 태어난 생일날도 기쁘지만, 그보다 더 기쁜 날이 있습니다. 죽은 줄 알았는데, 그래서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는데, 그 사람이 관 뚜껑을 열고 멀쩡하게 일어났다면, 그거야말로 기쁜 일이 아니겠습니까? 오늘이 바로 그런 날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이, 부활을 감격스러워하는 여러분 위에 충만히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 마른 바다

 

먼저, 먼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해방되던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우리 민족은 36년 동안 일본사람들의 지배를 받았습니다만,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 사람들의 지배를 400년이나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래도 우리 땅에서 고생을 했지요. 그러나 그 사람들은 남의 나라인 이집트 땅에서 노예살이를 했습니다. 그때 모세가 등장했습니다. ‘내 백성을 해방시켜라!’ 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민족해방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노예상태에서 해방된다면 온 백성이 좋아해야 되는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집트의 왕인 파라오의 고집을 꺾는 것도 문제였지만, 동족의 반대를 설득하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모세는 두 가지 관문을 다 통과했습니다. 동족을 설득하는 일과 파라오의 고집을 꺾는 일을 모두 성공했습니다. 드디어 백성을 이끌고 광야로 나왔습니다. 무리 가운데는 아기들도 있고 노인들도 있고 장애인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그동안 모은 재산 가운데는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류도 있었지만, 짐승들도 있었습니다. 건장한 남자들도 짐을 지고 걷는 것이 어려운데, 사정이 이랬으니 집단행군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설상가상, 며칠을 걸어서 나왔더니 바다가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마지못해 히브리 백성들을 풀어주었던 파라오는 그새 마음이 변해서, 안 되겠다, 저놈들을 도로 잡아와야겠다, 해서 군인들을 동원해서 추격 작전을 개시했습니다. ‘진퇴양난’(進退兩難)이었지요.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궁지에 빠졌습니다. 이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바다가 갈라진 것입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그건 제게 묻지 마십시오. 흔히 볼 수 없는 자연현상이었는지, 천재지변이 거꾸로 일어났는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바다에 길이 생겼습니다. 그 길을 따라 모세 일행은 바다를 무사히 건넜습니다. 그 뒤를 따라 이집트의 군사들이 수레를 몰고 바다 한가운데 이르렀을 때, 아까와 반대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바다가 이전처럼 완전히 복원된 것입니다. 이집트 군인들은 바다 한가운데 빠져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물귀신이 됐습니다.

 

■ 칠년 전쟁

 

이 사건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세상 모든 일을 다 과학지식으로 이해할 수는 없지요. 어쨌든 ‘팩트’는, 해방을 향해 가는 히브리 백성은 살아남았고 해방을 향해 가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쫓아왔던 이집트 병정들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압제자 앞에서 다 죽었던 약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 이것이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민중을 억압하는 기득권 세력이 예수님을 죽였지만,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나라 역사 이야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우리가 ‘전쟁’ 하면 흔히 6.25를 먼저 떠올립니다만, 그것보다 훨씬 참혹했던 전쟁이 ‘임진왜란’입니다. 지금부터 425년 전인 1592년 4월 14일 오전 8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군이 일본 오우라 항을 떠나 그날 오후 5시에 부산항에 닿았습니다. 조선 땅으로 건너온 병력이 20만, 일본 오사카에 대기하는 병력이 10만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군인 수가 60만쯤 되지요. 그러나 그 당시 조선의 인구는 5백만, 일본은 1천만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숫자입니다. 불행하게도 조선에는 군인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정예 병력이 거의 없었습니다. 있다고 해도 저 위에 압록강 쪽에 기껏해야 1~2만 정도 있을까 말까 할 정도였습니다. 전혀 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이 마음먹고 몰려들어왔으니, 결과는 뻔했겠지요. 주력부대인 고니시의 부대는 거의 조선 관군의 저항을 받지 않고 파죽지세로 북쪽으로 진격해 올라갔습니다. 부산에서 양산, 밀양, 청도, 대구, 인동, 선산, 상주를 거쳐 보름 만인 4월 29일에 충주까지 올라왔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신립 장군이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싸웠지만 이틀 만에 충주도 떨어졌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선조 임금은 중국과 국경인 의주까지 피난을 떠나버렸고, 결국 사흘 뒤인 5월 2일 서울까지 점령됐습니다. 제가 지금 왜병들이 서울까지 ‘점령’했다고 했는데, 이놈들이 그냥 지나가기만 했겠습니까? 집집마다 재물과 곡식 다 빼앗겼습니다. 사람인들 무사했겠습니까? 남자들은 그렇다고 치고, 여자들은 어떠했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 최후의 승자

 

왜놈들은 수로와 육로가 잘 뚫린 육지 중간에다가 본거지를 마련했습니다. 거기다가 창고를 짓고 군수물자를 쌓아놓았지요. 조선 사람들이 보니까 완전히 왜놈 동네가 된 겁니다. 그래서 이름을 붙이기를 ‘왜관’(倭館)동이라고 했습니다. 구미 바로 옆에 있는 왜관이 바로 그 왜관입니다. 나라 전체가 콩가루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나라를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거의 다 망한 나라가 어떻게 다시 살아나게 되었을까요?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것은 의병(義兵)들이었습니다. 관군들이 맥을 못 추고 있을 때 농사짓던 백성들이 일어나서 쇠스랑과 낫을 들고 나라를 지켰습니다. 수많은 의병장들 가운데서 경상도에서 활약했던 곽재우를 잘 아실 것입니다. 이 사람은 낙동강을 누비면서 수많은 왜병들을 물리쳤습니다. 또한 조선 개국과 함께 쫓겨나서 산속에 살던 스님들이 승병을 일으켜서 싸웠습니다. 풍전등화의 나라를 살린 또 하나의 축은 조선 수군이었습니다. 지리멸렬 상태였던 수군을 이끌고 왜놈들을 벌벌 떨게 했던 인물이 이순신 아닙니까? 이순신이 종횡무진 바다를 누비며 일본에서 오는 보급로를 차단하고, 육지에서는 의병들이 나서서 독안에 든 쥐들을 족쳤습니다. 이렇게 해서 7년 전쟁은 조선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참 의미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부패해서 화를 입게 되었을 때 거의 예외 없이 민초들이 나라를 살렸습니다. 임진왜란 때도 그랬지만, 300여 년 뒤에 다시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을 때도 백성들은 독립군을 만들어서 일본과 싸웠지요. 독재자들이 나라를 쥐락펴락할 때 국민들이 일어나서 민주화를 이루었지요. 부패한 정권이 IMF 사태를 초래했을 때도 국민들이 나서서 극복했지요. 박근혜 정권이 나라를 들어먹었지만 지금도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다시 일으키고 있지 않습니까?

 

■ 맺는 이야기

 

고린도전서에 보니까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으니, 또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의 부활도 옵니다”(고린도전서 15:21). 한 사람 때문에 나라가 망하기도 하지만, 한 사람 덕분에 나라가 살기도 합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죽음을 만드는 한 사람이 아니라, 부활을 만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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