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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스무 살 모세

by 마을지기 posted May 2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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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신명기 34:7-8
설교일 2017-05-21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오디오파일 듣기/내려받기]

 

■ 성서 본문

 

모세가 죽을 때에 나이가 백스무 살이었으나, 그의 눈은 빛을 잃지 않았고, 기력은 정정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 평원에서 모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간이 끝날 때까지, 모세를 생각하며 삼십 일 동안 애곡하였다.

 

― 신명기 34:7-8 ―


■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은 24절기 가운데서 ‘소만’(小滿)이라고 부르는 날입니다. 작을 ‘소’ 자에 찰 ‘만’ 자를 쓰는데요, 여름(열매)의 기운이 꽉 차고 있다고 하는 뜻일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보리이삭 익어가는 것을 보면서, 씀바귀 잎을 따서 무쳐먹으면서, 보릿고개의 배고픔을 달랬던 절기입니다. 한낮은 여름인데, 아침저녁으로는 아직 기온이 높지 않기 때문에 “소만 바람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감기에 조심해야 될 때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위에 충만히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마지막 전화

 

작년에 총회 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왔습니다.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는 글이라 저장해두었는데, 잠시 소개합니다. 어떤 사람의 아버지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 아버지에게 친한 친구 한 분이 계셨습니다. 늘 형제같이 지냈던 친구였다고 합니다. 그 노인은 여든일곱 살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숨을 거두기 한 시간 전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친구야! 나 먼저 가네!” 당시에 거동이 불편했던 아버지는 그 전화를 받고 눈물만 뚝뚝 흘렸습니다. “나 먼저 가네!” 이 말 속에는 그 동안 고마웠다는 뜻이 들어 있었을 것이고,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는 뜻도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전화를 받은 아버지 역시 몸이 불편한 상태라 일어나 앉지도 못하고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한 시간 뒤에 친구 노인의 자제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아버님께서 별세하셨다고 말이지요. 죽기 직전까지 정신 줄 놓지 않고, 기력 잃지 않고, 오래오래 살다가 이제 때가 되었다 싶은 시점에, 사랑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친구야, 나 먼저 가네!” 하고 말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최근 한두 달 동안에 저도 두 군데 문상을 다녀왔는데, 상주는 둘 다 우리 구미지역의 목사님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분, 다평교회 송재흥 목사님의 어머니는 올해 아흔 다섯이었습니다. 이 어른은 돌아가시기 전 날 저녁,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저녁을 잘 드신 다음, 그날 밤에 주무시듯이 세상을 떠나셨답니다. 또 한 분, 선산 서부교회 박혁진 목사님의 아버지는 아흔 여덟이었습니다. 이 어른 역시 돌아가실 때까지 병원 신세도 지지 않고 집에서 계셨는데, 특별히 편찮으신 데가 없이 기력이 약해지셨다고 합니다. 이제 내가 갈 때가 다 되었나보다, 하셔서 자손들이 모두 어른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답니다. 그런 뒤에 고요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참 복 받은 분들 아닙니까?

 

■ 모세의 죽음

 

죽음, 하면 우리는 흔히 공포를 느낍니다. 슬픔을 상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죽음은 복 중에서도 복입니다. 물론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생을 마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걸리버 여행기》라는 책을 아시지요. 영국의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세계를 다니다가 여차저차해서 별난 나라들에 다녀왔다 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인데요, 물론 상상 속의 일들입니다. 주인공이 소인국에 갔던 이야기, 거인국에 갔던 이야기 등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지금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이야기는 이 사람이 ‘럭나그’라고 하는 나라에서 봤다는 장면인데요, 거기에는 ‘영생인’이라는 족속이 산답니다. ― 조너선 스위프트(박용수 역), ≪걸리버 여행기≫(㈜문예출판사, 2010), 700쪽. 그 나라 사람들은 보통 인간이 살 수 있는 나이가 80세가 한계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생인 족속은 말 그대로 영원히 죽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몸과 마음은 늙었는데, 죽지는 않으니 그것 참 큰일 아닙니까? 그들은 젊은이들이 활발하게 노는 것을 보면서 절망감을 느낍니다. 다른 노인들이 죽는 것을 볼 때는 질투심을 느낍니다. 다른 사람들의 장례식을 볼 때는, 저렇게 안식처로 돌아가는구나, 하면서 부러워합니다. 이런 일들이 결국은 슬픔이 되어 쌓입니다. 영생인들 가운데서 그나마 덜 불행한 사람은 기억력을 완전히 상실해버린 사람들입니다. 차라리 정신 줄을 놓아버리는 것이 괴로움을 더는 방법이니까요. 여러분,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죽음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 큰 복입니다. 문제는 아름답게 죽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모세는 12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명기 34:7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죽을 때에 나이가 백스무 살이었으나, 그의 눈은 빛을 잃지 않았고, 기력은 정정하였다.” 모세가 죽자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 평원에 모여서, 삼십 일 동안이나 애도했습니다. 세상에 그런 노인이 어디 있습니까? 정말 부러운 영감입니다.

 

■ 그의 뒷모습

 

어떤 사정이 있어서 일찍 목숨을 잃는 경우도 없지 않겠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저도 모세처럼 죽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모세와 같이 삶을 마감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세상답고 나라가 나라다워서, 우리 모두가 이렇게 멋지게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상황이 어떻든지, 우리가 수명을 다하고 죽는다고 가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준비’입니다. 이 자리에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다 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죽음은 죽음에 임박해서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꼭 들어가고 싶은 좋은 대학이 있다고 할 때 그 대학에 들어가려면 언제부터 준비해야 합니까? 고등학교 3학년 때 시작하면 안 되잖아요. 미리미리 준비해야 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는 죽을 것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준비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본인에게도 남에게도 아름다운 죽음을 남길 수 있습니다. 중국 송나라 때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라는 선승이 있었습니다. 《벽암록(碧巖錄)》을 쓴 분이지요. 이 양반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생야전기현(生也全機現) 사야전기현(死也全機現).” ‘살 때는 삶에 철저하여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하여 그 전부를 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삶과 죽음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사는 것이 철저하게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고, 철저하게 죽는 것이 철저하게 삶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을 더 잘 기억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앞모습은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지만, 사람의 마지막 모습, 곧 그의 뒷모습은 끝까지 기억에 남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나서 문재인 대통령이 바로 청와대로 이사를 못했지요. 왜 그랬을까, 저도 궁금했는데, 나중에 보도를 보니까 청와대 관저 거실이 사방 전부 거울로 되어 있더라는 겁니다. 대통령으로 있다가 탄핵되는 거야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그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택도 아닌 관저의 거실 사방을 거울로 도배해놓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대통령으로서 아주 괴이한 뒷모습을 남긴 것이지요. 탄핵보다 훨씬 더 창피한 뒷모습입니다.

 

■ 맺는 이야기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 세상을 떠나는 날,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고 모양 있게 퇴장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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