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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by 마을지기 posted Jul 1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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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요나서 4:1-4
설교일 2017-07-16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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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 본문

 

요나는 이 일이 매우 못마땅하여, 화가 났다. 그는 주님께 기도하며 아뢰었다. “주님,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렇게 될 것이라고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내가 서둘러 스페인으로 달아났던 것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좀처럼 노하지 않으시며 사랑이 한없는 분이셔서, 내리시려던 재앙마저 거두실 것임을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이제는 제발 내 목숨을 나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하고 책망하셨다.

 

― 요나서 4:1-4 ―

 

■ 들어가는 이야기

 

엊그제 경주의 낮 최고기온이 39.7도까지 올라갔습니다. 사람의 체온이 보통 36.5도라고 하지요. 기온이 체온보다 높다는 것은 숨을 제대로 쉬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이 무더운 날씨에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잘 지켜주시고 보살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바깥기온이 체온에 근접하게 되면 더위를 이기기 위해서 체력을 많이 소모하게 됩니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고 하잖아요? 지갑이 두둑해야 어디 가서 밥도 사고, 사람이 궁색하게 되지 않는 법인데, 지갑이 얇으면 돈 쓰는 일이 무섭습니다. 체력도 그렇습니다. 내 몸에 에너지가 넉넉해야 남도 배려하고, 누구를 도와주기도 할 텐데, 더위 이기느라고 체력이 고갈되어 있으니, 남을 배려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조그마한 일에도 짜증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 요나 이야기

 

까뮈의 ‘이방인’이라는 소설을 보면 주인공 뫼르소가 총으로 사람을 쏘아 죽입니다. 법정에서 그는, ‘태양 빛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때가 뜨거운 여름이었던 것은 맞지만, 일각에서는 뫼르소가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칼에서 햇빛이 반사되는 것을 보는 순간, 정당방위로 총을 쏜 것이 아니냐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까뮈가 죽고 없으니 물어볼 수는 없습니다만, 뜨거운 햇살이 살인의 원인이기도 했을 겁니다. 아무튼 날이 뜨거우면 사람들이 예민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니까 요나가 햇살 때문에 화를 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니느웨로 가지 않고 스페인으로 갔잖아요. 그러다가 배가 풍랑을 만나서 요나의 반역이 들통 났고, 뱃사람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덕에 다시 살아나서 니느웨로 갔습니다. 기분은 내키지 않았지만,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당신들은 망할 겁니다. 망하지 않으려면 회개하시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그 사람들이 왕에서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재를 뒤집어쓰고 금식을 하면서 회개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니느웨 멸망 계획을 취소하셨습니다. 요나가 심사가 뒤틀려서 ‘어이, 씨! 저것들 망해야 되는데…’ 하면서 화를 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그러고는 요나가 뜨거운 햇볕을 피하려고 들어가 있던 박 넝쿨을 죽여 버렸습니다. 요나가 항의했지요. 그때 하나님께서 ‘야, 이놈아!’ 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수고하지도 않았고, 네가 키운 것도 아니며, 그저 하룻밤 사이에 자라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식물을 네가 그처럼 아까워하는데, 하물며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십이만 명도 더 되고 짐승들도 수없이 많은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요나서 4:10-11).

 

■ 프랭크 이야기

 

미국 포틀랜드에 사는 프랭크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 수재나 E. 플로레스(안진희 역), ≪페이스북 심리학≫(책세상, 2017), 전자책 404/646쪽. 나이는 46세, 남자입니다. 이 사람은 페이스북에서 데비라는 여자를 만났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였습니다. 데비 또한 얼마 전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뭔가 동질감이 생겼겠지요. 당시 프랭크는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그는 데비를 만났고 친구가 되었습니다. 아예 뿅 가버렸습니다. 데비는 아내와 달리 프랭크의 모든 것을 이해해주었습니다. 아내처럼 잔소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매우 훌륭한 여성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데비는 자선행사에서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는 사진들을 올렸습니다. 마침내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났습니다. 과연 그 여자는 놀라운 사람이었습니다. 같이 자기도 했습니다. 환상이었습니다. 프랭크는 정말로 사랑에 빠졌습니다. 이 여자와 여생을 보내야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양육권도 포기했습니다.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라스베이거스로 떠났습니다. 마침내 자유롭게 새 삶을 시작할 준비가 되자 데비에게 결혼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데비는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데비가 사라졌고 연락도 끊겼습니다. 얼마 후 프랭크는 페이스북에서 자기 페친 중 한 명에게 작업을 걸고 있는 그 여자를 발견했습니다. “맙소사, 이 나쁜 년!” 프랭크는 아내에, 아이들에, 직장까지(근무태만) 다 잃었습니다. 데비는 이런 여자라고, 그 페친에게 경고했지만, 그는 데비가 이제껏 만난 누구와도 다르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프랭크는 그 페친도 끊어버렸습니다. “뭐, 고생 끝에 알게 되겠지. 너도 겪어봐라. 둘이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니니까. 그녀가 미워 죽겠다.”

 

■ 바울 이야기

 

부적절한 사랑을 만들자고 나를 유혹하는 사람은, 내가 좋아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의 천성입니다. 늘 그렇게 하고 다니는 사람이에요. 사랑이 아닙니다.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프랭크는 그런 여자에게 당한 겁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화를 내요. 하나님께서 그러실 겁니다.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이처럼 세상에는 자기가 잘못해놓고도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잘못한 것이 전혀 없이 고생만 하면서도 화를 안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대표적인 인물이 바울입니다. 바울이 평소에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고린도전서 11:23-27에 잘 나와 있습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고, 감옥살이도 더 많이 하고, 매도 더 많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습니다. 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 엄청납니다. 그랬지만 바울은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교회를 염려해서입니다(28). 내가 화를 내면 교회에 어려움이 생길까봐, 그게 이유였습니다. 바울은 당시 유럽 전체의 중심인 로마에서 생을 마감했는데요, 유대 사람들의 모함 때문에 재판을 받으러 갔다가 거기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택연금을 당한 상태였지만 거기서도 바울은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열을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틈나는 대로 사람들에게 예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멋집니다. 본받아야 합니다.

 

■ 맺는 이야기

 

이번 주말이 중복입니다. 날이 뜨거워서 몸과 마음이 힘든 시기이지만, 화내는 것을 자제하고,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예수님의 정신을 전파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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