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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아요, 우리의 꿈을!

by 마을지기 posted Aug 1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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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로마서 14:19
설교일 2017-08-13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기념주일
사용처 1. 20170911 공자제곱(에필로그).

[오디오파일 듣기/내려받기]

 

■ 성서 본문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화평을 도모하는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을 씁시다.

 

― 로마서 14:19 ―


■ 들어가는 이야기

 

해마다 우리는 8월 둘째 주일을 평화통일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올해도 남측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북측의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이 공동기도문을 작성했고, 그 기도문으로 우리가 함께 기도했습니다. 남과 북의 통일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그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갈라진 것들이 성령 안에서 모두 다시 이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악마의 유혹, 베드로의 유혹

 

흔히 ‘유혹’ 하면 뭔가 나쁜 짓을 하자고 또는 하라고 꼬드기는 것을 생각합니다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옛날 악마는 무작정 나쁜 짓을 하도록 유혹했지만, 악마도 진화를 거듭하면서 상당히 영악해졌습니다. 나쁜 짓 하라고 유혹하는 대표적인 놈이 창세기에 나오는 악마입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먹으라고 이브를 꼬드겼지요. 이건 분명히 죄를 짓는 일입니다. 그러나 진화된 악마는 대놓고 죄 지으라고 유혹하지 않습니다. 죄는 아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나쁜 결과가 나오도록 만듭니다. 영악한 놈이지요. 예수님에게 나타났던 악마가 그런 놈입니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의 금식을 마쳤을 때 악마란 놈이 나타나서 예수님을 꼬드겼습니다. “야, 너 배고프지? 이 돌 가지고 빵 좀 만들어 먹어 봐. 그러면 우선 네 배가 불러서 좋고, 그걸 남들이 보면, ‘야, 대단하다!’ 그렇게 말하지 않겠어? 너 하나님 나라 만든다며? 그렇게 하려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야 되잖아.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어?” 악마는 이런 식의 유혹을 두 번 더 했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했지요? 이것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라는 주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자기한테 절을 하라고 했습니다. 이런 거, 저런 거 신경 쓸 필요 없이 하나만 하라, 이겁니다. 자기 밑에 들어와서 자기 말만 들으면 다 알아서 해주겠다, 얼마나 편하겠느냐, 이 말입니다. 돌로 빵 만드는 것도 그렇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것도 그렇고, 사람이 사람에게 절하는 것도 그렇고, 그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그게 정도(定道)가 아니니까 문제지요. 나머지 두 가지는 일단 두고, 첫 번째 유혹만 잠깐 봅시다. 빵이란 게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밭에다가 씨를 뿌려서 밀농사를 짓고, 추수를 해서 밀가루를 만든 다음, 조리과정을 거쳐서 빵이 되지요. 그런데 악마는 그 과정을 다 생략하라고 합니다.

 

■ 바다와 노인

 

이렇게 하면 당장은 편하겠지요. 그러나 농사를 짓지 않으면 땅이 황폐하게 됩니다. 땅이 황폐해지면 땅속에 살던 미생물들이 다 죽습니다. 벌레들과 새들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일터가 없어지면 사람의 몸과 마음도 피폐해집니다. ‘단 한 번인데 어떻겠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언제나 문제는 ‘한 번쯤이야!’ 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이게 바로 악마가 노리는 파멸입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이브를 유혹한 악마는 ‘뱀’의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예수님을 유혹한 악마는 ‘모르는 사람’의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우리가 조심하면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악마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등장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건 정말 어렵습니다. 식별도 어렵고 유혹의 떨쳐버리는 것도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제자 세 사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였습니다. 거기서 세 사람은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말을 주고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야말로 환상이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에는 선생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베드로의 말이 죄입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그러면 뭐가 문제일까요? 안타깝게도 여기서 베드로는 ‘꿈을 접자’고 유혹했습니다.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시려고 하던 예수님의 꿈을 접고 그냥 편하게 살자는 것이지요. 노벨문학상을 탄 미국의 작가 헤밍웨이는 ‘바다와 노인’이라는 작품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희망을 버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야,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건 죄다, 하고 생각했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이경식 역), ≪노인과 바다≫(㈜문예출판사, 1999), 전자책 261/451쪽. 노인은 혼자 조그마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며칠을 헤맨 끝에 커다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것을 배에 매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러 차례 상어 떼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그때마다 사투를 벌였지요. 그러는 과정에서 한 말입니다. 상어들에게 물고기의 살점은 다 빼앗겼지만 노인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목숨을 건져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 성 니콜라이 교회

 

꿈을 접는 것, 희망을 버리는 것은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죄’입니다. 오늘 우리는 평화통일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1945년 해방되던 해 분단된 남과 북은 벌써 72년째 막혀 있습니다. 그냥 막혀 있을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도 양측의 주민들이 전쟁을 걱정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통일의 꿈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도 수없이 불렀습니다. 그런데 분단된 지 너무 오래 돼서 그럴까요? 언제부터인가 통일에 대한 열망이 점점 식어져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살자’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죄’입니다. “주님, 여기가 좋습니다. 이대로가 좋습니다. 여기다가 고속도로도 더 닦고, 아파트도 더 짓고, 원전도 더 건설해서 그대로 살면 좋겠습니다.” 베드로가 했던 말과 똑 같지 않습니까?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분단되었던 나라가 독일입니다. 그러나 독일은 이미 27년 전에 통일이 됐습니다. 45년 만에 통일을 꿈을 이루었습니다. 저절로 됐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동독과 서독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였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동독과 서독의 교회들이 기도로 힘을 모은 공이 컸습니다. 옛 동독지역이었던 라이프치히 시에 있는 니콜라이 교회는 통일의 물꼬를 튼 교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거기 가면 교회 역사에 대한 안내문이 비치되어 있는데, 한국어판도 있습니다. 그 안내문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촛불을 들려면 두 손이 필요했습니다.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한 손으로 가려야 하기 때문이죠. 촛불을 쥔 손으로는 돌멩이와 몽둥이를 들 수 없었습니다.” 그 교회에서는 수십 년 동안 매주 월요일 오후 5시에 평화기도회가 열렸습니다. 경찰과 당국의 방해 속에서도 그들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통일을 기원하며 촛불을 들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 믿음이 바탕이 되어 동독과 서독에 통일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났고, 드디어 1990년 10월 통일이 성사됐습니다.

 

■ 맺는 이야기

 

저는 지난 2005년 10월 15일 평양 칠골교회에서 북쪽 사람들과 함께 통일을 기원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도 우리가 쓰는 성경(공동번역)을 사용하고 있었고, 우리가 쓰는 것과 비슷한 찬송가를 쓰고 있었습니다. 북의 교회들이 한국전쟁 이후 거의 없어졌지만, 아직까지 명맥은 유지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가 한 것처럼 남과 북의 교회가 같은 꿈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면 머지않아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남과 북, 북과 남의 평화통일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속히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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