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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다섯째 날

by 마을지기 posted Sep 0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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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창세기 1:20-21
설교일 2017-09-03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창조절
사용처 1. 20170906 경북보건대학교.

[오디오파일 듣기/내려받기]

 

■ 성서 본문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물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고, 새들은 땅 위 하늘 창공으로 날아다녀라” 하셨다. 하나님이 커다란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는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날개 달린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 창세기 1:20-21 ―


■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은 창조절 첫째 주일, 생명을 생각하는 절기입니다. 가을을 맞이하는 문턱에서, 창조의 새 기운이 여러분의 몸과 마음과 영혼에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참 좋았는데

 

창조절이니까 창조 이야기부터 해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엿새 만에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첫째 날에는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둘째 날에는 하늘과 땅을 갈라놓으시고 땅과 바다를 나누어놓으셨습니다. 셋째 날에는 온갖 식물들이 생겨났습니다. 넷째 날에는 해와 달과 별 등 항성들과 행성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섯째 날에는 물고기와 새들을 만드셨습니다. 여섯째 날에는 집짐승과 들짐승과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제가 어릴 때 교회 선생님께 이렇게 여쭈어봤습니다. “선생님, 성경에 보면 분명히 해와 달이 넷째 날에 창조되었다고 적혀 있지요. 지구가 한 번 자전하는 것을 하루라고 하지 않습니까? 지구에서 태양을 향해 있는 쪽은 낮이고 그 반대편은 밤인데, 밤낮이 한번 바뀌어야 24시간, 곧 하루가 가지요. 그렇다면 태양이 창조되기 전에는 하루를 어떻게 계산했습니까?” 선생님의 대답은,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였습니다. 모르는 게 당연하지요. 지금 저도 모르는데요. 성경의 언어는 사람의 언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어입니다. 하나님의 언어와 사람의 언어는 어떻게 다릅니까? 사람에게 하루는 그냥 하루지만,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기도 하고 천 년이 하루 같기도 합니다(베드로후서 3:8). 그러니까 다 알 수 없어요. 그저 우리는 그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하고 고백하면 됩니다. 그런데 창조의 순서를 보면 진화론에서 말하는 생명 출현 순서와 비슷합니다. 어쨌든 다섯째 날에 어류와 조류가 생겼습니다. 이날도 하나님은 ‘야, 참 좋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좋았던 창조세계가 최근 백여 년 사이에 엄청나게 망가졌습니다. 일본의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가 100년쯤 전에 쓴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다에 가보면, 물고기들은 단 한 마리도 병에 걸려 병원에 간 적이 없이 모두 건강하게 헤엄친다, 인도양을 횡단해본 사람에게, ‘자네, 물고기가 죽은 것을 본 적이 있는가?’ 하고 물어보라. 아무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드넓은 망망대해를 밤낮으로 배를 타고 다니면서 찾아보아도 옛날부터 한 마리 물고기도 죽은 채 떠다니지 않는다. ― 나쓰메 소세키(김영식 역),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문예출판사, 2011), 532쪽.

 

■ 욕심 때문에

 

옛날에는 물고기가 죽어서 바다에 떠 있는 것을 보기가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물고기도 틀림없이 죽기는 죽을 텐데,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보면 그만큼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됐다는 말이겠지요. 그러나 요즘은 어떻습니까? 오염 때문에 곳곳에서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넓은 바다에 그냥 저희들끼리 살라고 놓아두면 그렇지 않을 텐데, 좁은 공간에 바글바글 모아놓고 ‘양식’을 하기 때문일 겁니다. 왜 양식을 해야 됩니까? 바다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잡아가지고서는 수요를 감당을 못하니까 그렇지요. UN 식량농업기구(FAO)의 자료를 보면 2009년의 일인당 물고기 소비량은 1년에 18.5킬로그램입니다. 지금부터 50년쯤 전인 1960년대에는 10킬로그램이었습니다. 거의 두 배나 뛰었습니다. 지구상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고 하는 중국 사람들의 소비량이 다섯 배 늘었고, 인도 사람들의 소비량이 두 배 이상 늘었습니다. 그러면 인구가 늘어나듯이 물고기들도 늘어났을까요? 천만에요. 물고기 수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 조너선 밸컴(양병찬 역), 《물고기는 알고 있다》(에이도스, 2017), 290-291쪽. 인류는 매년 1조~2조7천억 마리의 물고기들을 살해한다고 합니다. 물고기 1조 마리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잡히지요. 물고기 한 마리의 길이를 만 원짜리 지폐(15센티미터)라고 가정할 때, 물고기의 머리와 꼬리를 모두 이으면 지구에서 태양까지 왕복하고도 2,000억 마리가 남는다고 합니다. ― 조너선 밸컴(양병찬 역), 《물고기는 알고 있다》(에이도스, 2017), 9쪽. 어마어마하게 먹어댑니다. 우리나라도 그래요. 옛날에는 일 년에 한두 번이나 생선을 구경할까 말까였는데 요즘은 흔하디흔한 것이 생선입니다. 빽빽하게 가두어놓고 양식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천하게 건강하던 물고기들이 병이 생기지요. 그러면 항생제를 투여할 수밖에 없습니다.

 

■ 희망은 있다

 

요즘 이른바 ‘살충제 계란’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납니까? 닭들을 좁은 공간에다가 오글오글 가두어놓고 키우니까 그렇지요. 소도 그렇고 돼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동물복지’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동물들도 어느 정도 동물다운 생명권을 존중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 말입니다. 개를 잡아먹는 것에 대한 논란은 오래 됐지요. 개 식용 반대자들은 개도 존엄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다른 동물들도 다 걸립니다. 그런데 육식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유독 물고기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물고기에 대한 편견 때문입니다. 물고기는 함부로 대해도 되는 줄 알아요. 물고기의 고통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덤덤합니다. 왜 그럴까요? 물고기는 늘 조용합니다. 소리를 지르지 않아요. 표정도 없습니다. 다리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없어요. 그저 멀뚱멀뚱하게 바라보기만 합니다. 낚싯바늘에 꿰여 물 밖으로 끌려나올 때 비명을 지르지도 않습니다. 눈물을 흘리지도 않습니다. 항상 휘둥그렇게 눈을 뜨고 있기 때문에, 아 이놈들은 아무것도 못 느끼는구나, 그런 오해를 받습니다. 그러나 물고기들은 항상 물속에 살기 때문에 눈꺼풀이 필요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됩니다. 《물고기는 알고 있다》라는 책을 쓴 조너선 밸컴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물고기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는 ‘노는 물’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낚싯바늘에 꿰여 물 밖으로 끌려나온 물고기가 울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물속에 빠졌을 때 울지 않는 이유와 마찬가지다. 물고기는 물속에서 기능을 발휘하고, 의사소통을 하고, 자신을 표현하도록 설계되었다. 사실 상당수의 물고기들이 아플 때 소리를 지르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물속을 잘 통과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우리 귀에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 조너선 밸컴(양병찬 역), ≪물고기는 알고 있다≫(에이도스, 2017), 316-317쪽.

 

■ 맺는 이야기

 

그렇다고 생선 먹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육식을 끊으라는 소리도 아닙니다. 최소한 덜 먹으려고 노력은 하자, 이 말입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소를 잡을 때 스님을 불러다가 독경도 했습니다. 그동안 수고한 너를 내가 잡아먹기는 하지만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기 바란다, 그 말이지요. 그동안 사람들은 여섯째 날에 창조된 동물들을 학살하더니, 이제 다섯 째 날에 창조된 어류까지 괴롭히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우주선을 띄워서 넷째 날에 창조된 별들까지 오염시킬 기세입니다. 제동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먼저 각성해야 되겠지요. 주님의 평화가 저와 여러분뿐만 아니라 온 땅에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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