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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언어, 여자의 언어

by 마을지기 posted Sep 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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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창세기 2:22-23
설교일 2017-09-17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오디오파일 듣기/내려받기]

 

■ 성서 본문

 

주 하나님이 남자에게서 뽑아 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여자를 남자에게로 데리고 오셨다. 그 때에 그 남자가 말하였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 창세기 2:22-23 ―


■ 들어가는 이야기

 

어제 고속도로에 차들이 상당히 많습디다. 요즘 군인들과 책 이야기를 하느라고 토요일 포항에 자주 가는데, 평소에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지,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라디오에서 그러더군요. 벌초하러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고요. 그러고 보니 추석이 보름 정도 남았습니다. 홀해 추석 명절과 함께 오는 긴 연휴는, 여러분 모두가 편안한 가운데, 쪼들리지 않게,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왜 이혼을?

 

해마다 명절 끝이면 이혼하는 집이 많다는데, 올해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혼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여쭈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이혼해도 되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모세는 이혼증서를 써주고 아내를 보내는 것을 허락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말이지요. 해도 된다고 하면 ‘예수가 아내를 버려도 된다고 했다!’ 하고 조선일보에 대서특필을 할 생각이고, 아내를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고 하면 ‘예수가 모세의 율법을 무시했다!’ 하면서 깃발을 들고 동네방네 떠들면서, 예수 잡아들이라고 검찰에 고발할 작정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예수님은 멋지게 받아치셨습니다. ‘야, 이놈들아! 모세가 이혼증서를 써주고 아내를 내보내도 된다고 한 것은, 너희 놈들이 하도 못돼서 그런 거야. 함부로 아내를 차버려서 오지도 가지도 못하게 만들어놓으니까, 이혼을 하더라도 이혼증서는 써주고 하라고 했지. 오죽했으면 그랬겠어?’ 여자 처지에서 보자면, 이혼증서라도 있으면 과거가 입증이 되지만, 그게 없으면 ‘근본 없는’ 여자가 되거든요. 창녀 취급을 받아서 어디서 돌 맞아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모세가 궁여지책으로 그렇게 말한 겁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웬만하면 함부로 이혼하지 마라!’입니다. 이혼 말이 나왔으니까 예전에 들은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중년쯤 된 여자가 이혼을 결심하고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변호사가 물었습니다. “이혼을 하시려는 이유가 뭐죠?” 여자는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15년 전 어느 화창한 봄날에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죠. 그때 예식장 밖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어요. 하객들의 옷차림은 또 어찌나 화사하던지….” “아니, 이혼하시려는 이유가 뭐냐고요!” 여자는 말을 이었습니다. “결혼 2년째 되던 여름 뜨거운 여름날에 첫아이를 낳았어요. 저를 쏙 닮은 딸이었지요.” “예,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이유를 말씀하시라니까요.” 그제야 여자는 결론을 말했습니다. “아 그거요? 간단해요. 남편과는 도무지 대화가 안 통해요.”

 

■ 무엇이 달라서?

 

빨리 요점을 말하라고 다그친 것을 보니까 그 변호사는 십중팔구 남자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이 뭐요?” 하는 말을 많이 듣는 것은 아무래도 여자 쪽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남자들은 흔히 ‘여자들은 논리적이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자가 정말 논리적이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남자의 논리와 여자의 논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언어 구사 방식이 달라요. 말을 할 때 남자는 대개 요점을 먼저 말하고 필요한 경우 부연설명을 합니다. 말이 짧지요. 그런 데 비해 여자는 보통 상황설명을 먼저 하고, 요점은 뒤에 말합니다. 말이 길어집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여자에게 요점이 뭐냐고 다그치는 남자는 꽉 막힌 남자입니다. 거꾸로 남자에게 긴 말을 요구하는 여자는 욕심이 많은 여자입니다. 남자들이 가장 난감해 하는 때는, 아내나 여자 친구가 화가 잔뜩 나 있는데 도대체 그 이유를 모를 때입니다. ‘내가 이러저러해서 화가 났다!’ 분명히 말하면서 싸움을 걸어온다면 어떻게 대처를 해보겠는데, 이유를 물어도 말은 하지 않으면서도 단단히 토라져 있다면 속수무책입니다. 왜 그러느냐고 자꾸 다그치지만 여자는 웬만해서 입을 열지 않습니다. 어쩌다 입을 여는 경우에도 “몰라!” 또는 “그것도 몰라?” 정도입니다. 여자는, 자신이 화가 난 이유를 말하는 것을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그걸 꼭 내 입으로 말해야 알아, 이 바보야?’ 하는 뜻일 텐데, 남자들은 그런 걸 잘 모릅니다. 원래 좀 모자란 종족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남자가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있을 때 여자는 답답합니다. 여자가 요점을 이야기하지 않을 때 남자는 화가 납니다. 서로 상대의 언어와 논리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 길은 어디에?

 

여자의 말은 '느껴야' 하고 남자의 말은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고, 그런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의 말을 이해하려고 한다거나, 여자가 남자의 말을 느끼려고 한다면 피차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언어를 배워야 하고, 남자는 여자의 언어를 익혀야 합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국ㆍ영ㆍ수는 열심히 가르치면서 이런 언어는 왜 안 가르치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때 유명했던 《대망》이라는 일본소설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죽음과 삶은 만인에게 똑같이 부과된 엄숙한 환희이며 가혹한 형벌임을 사람들은 과연 알고 있을까.” ― 야마오카 소하치(박재희 외 역), ≪대망 1 도쿠가와 이에야스≫(동서문화사, 2012), 전자책 19%. 남자와 여자, 여자와 남자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파멸시키든가 아니면 구원하든가 둘 중 하나다. 인간의 운명은 모두 이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 사랑은 죽음과 삶의 양면성을 지닌다. 요람이 되기도 하고 무덤도 된다. […] 신이 만든 모든 것 중에서 인간의 마음은 가장 넉넉한 빛을 퍼뜨리기도 하고 가장 깊은 어둠을 향하기도 한다.” ― 빅토르 위고(베스트트랜스 역), ≪레미제라블 한영합본(전10권)≫(더클래식, 2012), 전자책 30%. 남자와 여자의 결합은 파멸이 아니면 구원입니다. 죽음일 수도 있고 삶일 수도 있습니다. 무덤이 되기도 하고 요람이 되기도 합니다. 사랑은 하나님께서 만든 가장 깊은 어둠이기도 하고 가장 넉넉한 빛이기도 합니다. ‘결혼’이라는 똑 같은 인생의 변곡점이 누구에게는 천국일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지옥일 수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는 형벌이고 누구에게는 환희입니다.

 

■ 맺는 이야기

 

여러분은 어느 쪽 길을 가기를 원하십니까? 천국입니까, 지옥입니까? 파멸입니까, 구원입니까? 형벌입니까, 환희입니까? 이거 정하는 일이 인력으로는 안 됩니다. 아담이 처음에 이브를 만났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하면서 감격했습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부터 사랑의 무한 달콤함은 끝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아담과 이브가 싸웠다는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두 사람은 쫓겨난 뒤에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사랑을 아름답게 유지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면 은혜요 축복이지만, 하나님을 떠나면 그때부터 저주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늘 복된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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