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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잠들기 전

by 마을지기 posted Oct 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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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시편 4:4
설교일 2018-10-28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사용처 1. 20181107 경북보건대학교.

성서 본문

 

너희는 분노하여도 죄짓지 말아라.

잠자리에 누워 마음 깊이 반성하면서, 눈물을 흘려라. (셀라)

 

시편 4:4

 

들어가는 이야기

 

날이 쌀쌀해졌습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조금 지나면 우리는 다시 봄을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계절도 바뀌고 마음도 바뀝니다. 변화무쌍한 세월 가운데서도 잊지 않고 하나님의 집을 찾아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수고하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회복의 은혜를 내리시기를, 이번 주간에는 더 큰 힘을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싸움

 

뉴스를 보면 연일 잔인한 살인사건이 보도됩니다. 소름 끼치는 세상입니다. 인간의 증오가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살다 보니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고, 부딪치면 싸움이 나게 되어 있지요. 그렇다고 사람이 성질대로만 살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놀이를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싸우는 대신 소들끼리 싸우게 하자, 그래서 여러 지방에서 소싸움 판을 벌입니다. 거기다가 축제라는 이름을 붙여서 사람을 모이게 합니다. 사실 소들은 싸울 필요가 별로 없습니다. 제 주인 밑에서 제 일만 하면 되는데 왜 원수처럼 피를 흘리며 싸워야 됩니까? 권장할 만한 일이 못 됩니다.

 

소싸움은 그래도 나은 편입니다. 로마에서는 사람을 내세워서 맹수와 싸우게 했습니다. 사람끼리 싸우게도 했습니다. 그런 검투사들이 경기를 하는 곳이 콜로세움입니다. 기원후 80, 콜로세움이 완공되었을 때, 낙성을 기념하기 위해서 무려 백 일 동안이나 경기가 벌어졌습니다. 맹수들이 수천 마리나 살해당했고 검투사들도 무수히 죽었습니다. 원형경기장 지하에는 검투사 대기실이 있었는데, 이른 아침에 검투사들은 거기 모여서 식사를 했습니다. 일부 관객들은 그 방으로 와서 그들의 근육을 만져 볼 수도 있었습니다. 검투사들은 대개 근육보다는 살이 많은 뚱보들이었습니다. 몸에 지방질이 많아야 상처를 입더라도 더 오래 버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획자들은 가장 작고 날랜 검투사들로 하여금 가장 덩치가 크고 둔한 검투사들과 맞붙게도 했고, 탁월한 재능을 지닌 검투사 한 명을 상대로 여러 명이 싸우게도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경기의 흥미를 높였습니다.

 

검투사가 상대하는 맹수로는 황소나 곰보다 사자가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황소나 곰은 사람을 잡아먹는 동물이 아니라서 검투사들을 죽이지 않고 그저 다치게만 하니까 싸우는 시간이 길어지거든요. 어쨌든, 역사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검투사들 가운데 5퍼센트 정도가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살아남은 검투사들은 인기와 부를 얻었고 노예 신분에서 벗어났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이세욱 임호경 역),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주식회사 열린책들, 2011), 200-201.

 

복수

 

사람이 참 못됐지요? 자기들 즐기려고 살아 있는 생명들을 무지막지하게 희생시킵니다. 과거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선생들이 아주 못된 짓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수업시간에 떠들거나 말 안 듣는 학생 둘을 불러냅니다. 한 학생에게 상대 학생의 따귀를 때리라고 명령합니다. 친구인데 주저할 것 아니에요? 선생이 먼저 그 학생의 따귀를 힘껏 때립니다. ‘그래도 안 때릴래?’ 이거지요. 그러면 학생은 어쩔 수 없이 상대의 따귀를 때립니다. 상대 학생도 안 때릴 수가 없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지만, 일단 맞으니까 화가 나고, 화가 나니까 더 세게 때리고. 이렇게 해서 원치 않는 싸움을 하게 됩니다. 그걸 보고 선생은 미소를 짓지요. 일제 때뿐만 아니라 제가 학교 다닐 때도 어떤 선생이 그런 것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일제 잔재였지요.

 

남과 북이 전쟁을 하고 오랫동안 적대관계를 유지해온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 강대국들이 자기들의 이권을 챙기기 위해서 우리나라를 남과 북으로 나누어놓고 싸움을 붙인 겁니다. 그동안 우리가 어리석게도 거기에 놀아난 거예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툼도 남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의 말이 오해가 되고 그 오해가 당사자들끼리의 싸움으로 번지게 되지요. 원인이 무엇이든지, 사람은 상대에게 공격을 당하면 복수심이 생깁니다. 어떤 식으로든 복수를 하면 상대편에서도 복수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복수가 반복됩니다. 비극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서 5:43-44입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러면서 또 하신 말씀이 이겁니다(48).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복수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이 완전한 사람입니다. 완전한 사람 되기 어렵지요?

 

살핌

 

원수를 어떻게 사랑합니까? 원수를 찾아가서 업어줍니까? 안아줍니까? 그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자칫하다가 미친 놈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 하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면 증오가 스르르 녹습니다. 복수심이 가라않습니다.

 

시편 4:4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분노하여도 죄짓지 말아라. 잠자리에 누워 마음 깊이 반성하면서, 눈물을 흘려라.” 원수를 갚으려고 마음먹기 전에 먼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라는 권고입니다. 잘 안 되지요. 그래도 해야 합니다. 논어에 보면 일일삼성”(一日三省)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증자가 한 말입니다. 나는 매일 내 자신에게서 다음 세 가지를 돌아본다. 첫째, 남을 대함에 있어서 충심을 다하지 않은 일은 없는가, 둘째, 벗과 교류하는 동안 믿음을 저버린 일은 없는가. 셋째, 배운 바를 오용(誤用)하거나 남용(濫用)한 일은 없는가.” 전대환, 공자제곱(이야기마을, 2017), 181. 증오의 원인을 남에게서가 아니라 자신에게서 찾자는 말입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어느 날 강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가장 큰 원수는 대체 누군가요? 소련? 미국? 아닙니다. 그럼 일본? 남들은 그럽디다. 모두들 그래요. 일본이 우리의 가장 큰 원수라고.” 말이 채 맺어지기도 전에 일본 순사가 외쳤습니다, “중지! 연설 중지!” 그때 만해는 재빠르게 말머리를 돌렸습니다. “우리의 원수는 일본이 아닙니다. 그러니 다들 안심하십시오. 그렇다면 우리의 원수는? 소련도, 미국도, 일본도 아닙니다. 우리들 자신의 게으름,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원수입니다!” 임중빈, 만해 한용운(범우사, 2015), 전자책 26/493. 남이 아니라, 바로 내가 원수인 경우가 많습니다. 남이 원수이든, 내가 원수이든, 일단 우리는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원수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맺는 이야기

 

오늘 밤 잠들기 전, 아니 매일 밤 잠들기 전, 반드시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남을 향하여 증오를 쏟기 전에 먼저 나의 잘못을 회개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완전한 사람이 됩니다. 화가 나서 죽겠는데, 어떻게 반성부터 해요? 어떻게 원수를 위해서 기도해요? 힘든 거 압니다. 그래도 손해 보는 셈 치고 제 말대로 해보세요. 그러면 놀라운 효과가 나타납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 밤 잠들기 전까지 하나님께서 반드시 평화를 내려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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