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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우시다고요?

by 마을지기 posted Dec 0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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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말라기서 3:7
설교일 2018-12-02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성서 본문

 

너희 조상 때로부터, 너희는 내 규례를 떠나서 지키지 않았다. 이제 너희는 나에게로 돌아오너라.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겠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그러나 너희는 돌아가려면,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하고 묻는구나.

말라기서 3:7

 

들어가는 이야기

 

여러분은 지금까지 12월을 몇 번이나 맞이하셨습니까? 12월은 성과를 점검하는 달입니다. 건강을 돌아보는 달입니다. 하나님께와 사람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잘못한 일은 없는지 반성하는 달입니다. 열차를 타고 창밖을 내다보면 언제나 직선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열차 꽁무니에서 철길을 보면 굽이굽이 휘어 있습니다. 나는 항상 바르게 가는 것 같지만, 돌아보면 과거가 굽어 있습니다.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모릅니다. 그래서 12월이 중요합니다. 12월 첫 주일,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삶을 돌아보기 위해서 이 자리에 찾아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하늘의 은혜와 땅의 축복이 이번 12월에도 여러분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무식 추방운동

 

1932429일 오전 1140, 중국 상해 홍구공원(현 루쉰 공원)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폭탄 소리가 났습니다. 스물다섯 살 난 대한의 청년 윤봉길이 터뜨린 것이었습니다. 일본군 수뇌들이 여럿 죽었습니다. 윤봉길은 그 자리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힘차게 외치고 체포되었습니다. 한국과 중국 국민들이 환호했습니다. 그 사건으로 세계의 열강들도 한국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이 윤봉길이 고향인 충청남도 예산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웬 시골 청년 하나가 숨을 헐떡이면서 공동묘지에서 나무 팻말을 한아름 안고 비탈길을 내려왔습니다. 청년은 윤봉길에게 다가와서 심각하게 물었습니다. “실례지만 형씨, 글자를 아슈?” 청년이 두 팔 가득 들고 있는 것은 비석 대신 세워둔 묘소의 푯말들이었습니다. “글자야 알고 있소만 이게 무슨 짓이오? 남의 무덤의 푯말들을 뽑아오다니!” 청년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제 아버님 이름 좀 찾아주셔유. 제 아버님 산소가 공동묘지 저 산모퉁이인데 이 까막눈으로는 암만 봐도 찾을 수가 없네유.” 듣고 나니 딱한 일이라 윤봉길이 물었습니다. “선친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윤봉길은 묘표들을 뒤적여서 청년의 아버지 이름이 적힌 묘표를 찾아냈습니다. 청년은 묘표를 얼싸안고는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상님. 이제사 아버님 산소를 찾게 됐네유. 간신히 불효를 면했어유.” 청년의 집은 원래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일본 놈들 손에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그 충격으로 앓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청년은 고향을 떠나 살다가, 몇 년 만에 돌아와서 선친의 묘소를 찾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이 아무런 표시도 해놓지 않고 묘표들을 다 뽑아온 겁니다. 아버지의 무덤뿐만 아니라 다른 무덤들의 주인도 못 찾게 됐습니다. 임중빈, 윤봉길 의사 일대기(범우사, 2015), 전자책 117/513. 참 낭패였습니다.

 

숲속의 꽃, 화병의 꽃

 

윤봉길은 그때부터 계몽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게 다 무식 때문이다!’ 생각한 것이지요. 청년이 글자를 모른다는 것도 무식의 결과였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무식은 묘표를 식별할 수 있는 근거를 없애버렸다는 것입니다. 비석이나 묘표는 무덤 앞에 박혀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인데, 그걸 뽑아버렸으니 이만저만 곤란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시간 제 말씀의 요지는, 동물이고 식물이고 간에 뿌리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채근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부귀와 명예가 도덕으로부터 온 것이면 숲속의 꽃과 같아 절로 잎이 피고 뿌리가 뻗을 것이요, 공적과 사업에서 얻어진 것이라면 화단 속의 꽃과 같아 이리저리 옮겨지고 흥폐가 있을 것이며, 권력으로 얻어진 것이라면 화병 속의 꽃과 같아 마치 그 뿌리가 심겨지지 않은 것과 같은지라. 이내 시듦을 가히 서서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김희영 역해 편, 채근담(菜根譚)(청아출판사, 2014), 전자책 108/597. 꽃병의 꽃도 꽃이고, 화단의 꽃도 꽃이고, 숲속의 꽃도 꽃입니다. 그러나 그 생명력의 차이는 말 안 해도 아시지요. 어마어마하게 크지 않습니까?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가 말했습니다. 사람이 생을 마감하는 것을 삼가 무겁게 여겨서 먼 조상까지 추모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백성들 사이에 덕()이 두터워질 것이다.” 전대환, 공자제곱(이야기마을, 2017), 183. 조상에게 예를 다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유교에서 그렇게 제사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공자는 중국 고대의 우()임금을 가리켜서 흠잡을 일이 없는 임금이라고 극찬을 했습니다. 자신은 간소한 음식을 들었지만 조상 제사에는 정성을 다해서 효심을 보였다. 자신은 검소한 옷차림을 했지만 제사에 쓰는 예복과 면류관에는 정성을 다해 정갈함을 더했다”(논어 8-21).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당연히 공자 자신도, 그 어떤 일보다도 제사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논어 7-12 참고).

 

건강한 뿌리, 풍성한 열매

 

세월이 흐르면서 형식이 지나치게 강조돼서 그렇지, 제사라는 게 원래 조상귀신을 숭배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면 뭘까요? 그건 바로 뿌리를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알베르 까뮈가 쓴 이방인이란 소설을 보면 주인공 뫼르소가 권총으로 사람을 죽입니다. 죽은 사람은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우발적인 사건으로 처리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판을 하는 과정에서 뫼르소의 행적이 문제가 됐습니다. 어머니의 장례식 날 관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등 전혀 상주로서의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장례식을 마친 직후에는 여자 친구를 만나서 노닥거리고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결국 재판관과 배심원들이 이놈, 나쁜 놈이다!’ 해서 사형을 선고합니다.

 

사람들은, 이 소설에 담긴 까뮈의 철학이 난해하다고 말을 합니다만, 제가 보기에, 이 소설의 키워드는 외로움입니다. 뫼르소는 자신의 뿌리인 어머니에 대해서 냉소적이었습니다. 그런 중에 특별한 이유도 없이 본인은 태양 때문이라고 말합니다만 살인까지 했습니다. 뫼르소는 죽음을 앞두고 이런 독백을 합니다. 내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이제 내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알베르 카뮈(이휘영 역), 이방인(문예출판사, 1999), 전자책 247/314.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뫼르소는 뿌리인 어머니와 단절되었습니다.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 날임에도 불구하고 여자 친구의 육체를 탐했습니다. 목마를 때 바닷물을 마시는 격이지요. 뫼르소는 죽기 직전까지 외로움의 고통에 시달립니다. 오죽하면 사형이 집행되는 날 군중들의 증오의 함성으로 외로움을 달래려고 했겠습니까?

 

맺는 이야기

 

예수님의 말씀처럼,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삽니다. 전등은 전원에 연결되어 있어야 불이 들어옵니다. 자식은 자신의 뿌리인 부모와 조상과 소통해야 외롭지 않습니다. 사람이 외로운 것은 애인이 없어서가 아니라 뿌리로부터 단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부모뿐만 아니라 조상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뿌리에 굳건히 연결되어 있음으로써 풍성한 열매를 맺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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