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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19-04-14 15: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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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전도서 3:1-4 
설교일 2019-04-14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사순절 

성서 본문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살릴 때가 있다. 허물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 통곡할 때가 있고, 기뻐 춤출 때가 있다.

 

전도서 3:1-4

 

들어가는 이야기

 

사순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이라고도 하지요. 예수님의 일생 가운데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한 주간을 기억하며 우리 삶을 돌아보는 주간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고난 받으시고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이번 주간에는 더욱 각별하게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찾아 나설 때

 

여러분, 지금 지갑 잘 챙기고 계시지요? 저는 가끔 한 번씩 지갑을 잃어버리는 꿈을 꿉니다. 신분증, 신용카드, 현금 등이 들어 있는 지갑이 없어지면 여간 난처하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휴대폰까지 잃어버린다면 큰일이지요. 지갑에 든 돈은 별로 없어도 잃어버리면 불편하잖아요. 그래서 평소에 굉장히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 덕에, 지금까지 한 번도 실제로 지갑이나 휴대폰을 잃어버린 적은 없습니다. 여러분도 항상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서 15장에 보면 잃어버렸다가 찾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먼저 양 이야기입니다. 어떤 목자에게 양 백 마리가 있었습니다. 낮에 들에서 꼴을 먹이고 집으로 데리고 돌아와서 세어 보니 한 마리가 없어졌습니다. 목자는 아흔아홉 마리 양들을 우리에 잘 넣은 뒤, 잃은 양을 찾아 나섰습니다. 물을 건너고 산속을 헤매다가 겨우 찾았습니다. 목자는 그놈을 어깨에 둘러메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벗과 이웃 사람을 불러 모아서 잔치를 열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자본주의 논리로 따지면 그까짓 양 한 마리 때문에 잔치 비용이 더 들어갔으니 손해나는 장사를 한 겁니다. 그래도 목자는 양을 찾았습니다.

 

그 다음은 드라크마 이야기입니다. 어떤 여자에게 드라크마 열 닢이 있었습니다. ‘드라크마데나리온처럼 당시 돈 단위인데, 성인 노동자의 하루 품삯 쯤 됩니다. 계산하기 쉽게 한 드라크마를 10만 원이라고 치면, 그걸 잃어버린 겁니다. 여자는 등불을 켜고 온 집안을 쓸면서 샅샅이 뒤졌습니다. 드디어 찾았습니다. 이 여자 역시 벗과 이웃 사람을 불러 모으고 말했습니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드라크마를 찾았습니다.”

 

기다릴 때

 

세 번째는 탕자이야기입니다. 어떤 부자에게 아들이 둘 있었습니다. 어느 날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재산, 그거 결국 우리 형제들에게 물려주실 것 아닙니까? 어차피 주실 거라면,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두지 말고, 지금 주시면 안 될까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잖아요. 아버지가 졌습니다. 살림을 반으로 나누어서 두 아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그 재산을 처분해가지고 가출을 했습니다. 휴대폰 번호도 바꾸어버렸습니다. 연락도 안 됩니다. ‘아버지, 성공해서 돌아올게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지요. 그런데 세상만사가 어디 그렇게 만만합니까? 천만의 말씀이지요. 쫄딱 망했습니다. 아들이 고생한 이야기는 지금 하지 않겠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기도 하고, 그동안 여러분께서 많이 들으셨을 테니까요. 한편 아들이 가출한 뒤, 아버지는 잠시도 편하지 않습니다. 좌불안석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대문 밖에 나가서 큰길 쪽을 쳐다봅니다. 집안에 있을 때도 연신 출입문을 바라봅니다. 아들을 기다리는 것이지요.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목자와 여자는 잃은 것을 찾기 위해서 즉시 행동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곧바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기다렸습니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전도서 3:1-4입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살릴 때가 있다. 허물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 통곡할 때가 있고, 기뻐 춤출 때가 있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때를 맞추어서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낭패를 겪습니다. 울어야 할 때 웃고, 웃어야 할 때 울면,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목숨을 걸 때

 

목자가 양을 잃어버렸을 때 당장 찾아 나섰습니다. 이건 적절한 입니다. 여자가 드라크마를 잃어버렸을 때 즉시 수색을 시작합니다. 이것 역시 적절한 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가출했습니다. 아버지는 찾아 나서지 않았습니다. 집 나간 그날 바로 찾지는 않더라도 한두 주, 또는 한두 달 뒤에 찾아 나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친구들 연락처를 구해서 수소문해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아들이 갈 만한 곳에 가서 이 잡듯이 도시를 뒤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찾아 나설 때가 아니라 기다릴 때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드라크마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발 벗고 나섰지요. 양도 그렇습니다. 무생물에 비해서는 훨씬 낫지만, 그래도 양은 집을 찾아올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목자가 나선 것이지요. 아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다 컸지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서둘러 아들을 찾았다고 합시다. 모가지 끌고 집에 들어왔다고 합시다. 그렇게 했다면 아들이 가출 병을 고치고 집에 얌전히 있으면서 일에 몰두했을까요? 아닐 겁니다. 모르긴 해도 언젠가는 또 뛰쳐나가려고 했을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아들이 객지에서 고생을 하다가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아버지의 생각은 적중했습니다. 타지에서 돼지 죽통까지 뒤져서 배를 채우며 고생을 하다가 돌아왔기 때문에, 이제는 등을 떠밀어도 안 나갈 것입니다. 아버지는 를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종려주일이지요.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했던 날입니다.

 

맺는 이야기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벼슬자리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거기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요? 명예를 얻을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직 십자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알면서도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의장대를 앞세운 병거를 타고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새끼나귀를 타고 들어가셨습니다. 목숨을 내놓은 결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무언가를 찾아야 할 때는 만사를 접어두고 떨쳐나섰습니다. 기다려야 할 때는 인내심을 가지고 오래 오래 기다렸습니다. 세울 때는 세울 줄 아는 분이었고, 허물 때는 허물 줄 아는 분이었습니다. 그런 예수님 덕에 우리는 구원을 얻었고, 희망을 찾았고, 영생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처럼, ‘를 잘 맞추어서 행동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지혜를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916 사랑을 위해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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