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와 논어에 대한 모든 것

전대환 지음, 《공자제곱》에 차곡차곡 들어 있습니다.

종이책 사러 가기

모든 기기에서 읽으세요!

PC, 태블릿, 안드로이드, 아이폰 등 모든 기기에서 《공자제곱》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전자책 사러 가기

이곳에서 이야기 보물상자를 열어 보세요!

이야기마을에는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들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성서본문 요엘서 2:28 
설교일 2020-05-31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오순절 

 

성서 본문

 

그런 다음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딸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

 

요엘서 2:28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2천 년 전 처음 오순절 날에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내렸던 성령강림 사건이 오늘 저와 여러분 위에도 그대로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집을 떠나다

 

누가복음서 4:14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을 입고 갈릴리로 돌아오셨다.” 갈릴리로 돌아오셨다고 했지요? 어디에서 오셨는가 하면 광야에서 돌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린 시절, 비록 가난하기는 했지만 요셉과 마리아 밑에서 잘 성장하셨습니다. 이제 청년이 됐습니다. 세상으로 나오실 때가 되었지요. 집을 나왔습니다. 이건 가출이 아니고 출가입니다. 어쨌든 집에서 세상으로 나오셨는데, 이게 웬 일입니까? 마귀한테 붙잡혔습니다. 아마도 마귀가 예수님의 집 근처에서 스토커 노릇을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뭐 이런 일이 있나 싶지만, 큰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다 이런 저런 과정이 있습니다. 세상에 그냥 되는 일은 없어요. 한 판 붙어야지요. 결투 장소는 광야였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3:0으로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깔끔하게 승리를 챙긴 뒤에 예수님은 갈릴리로 돌아오셨습니다. 고향이니까 아무래도 거기서부터 일을 시작하시는 것이 순리겠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돌아오실 때, 그냥 빈손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성령의 능력을 입고오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뭐가 달라졌을까요?

 

겉으로 보기에는 큰 차이가 없었는지 모르지만, 내면으로는 놀라운 변화가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그 다음에 뭐라고 했는가 하면 예수의 소문이 사방의 온 지역에 두루 퍼졌다!” 그랬습니다. 소문이 왜 퍼집니까? 뭔가 남다른 구석이 있으니까 퍼졌겠지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봅시다. 그때부터 예수님은 시골 총각 예수의 모습을 벗어버렸습니다. 성령을 받은 이후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겠다고 하는 엄청난 계획을 세웠습니다. 보잘것없던 촌 젊은이가 나라를 세워서 시조(始祖)가 되겠다는 거예요. 그것도 세계최강의 복지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능력을 입으면 어마어마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다 아시는 것처럼 예수님의 성장환경, 참 열악하지 않았습니까?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디 가서 무엇을 배웠다고 하는 기록도 전혀 없습니다. 학력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력서에는 무학’(無學)이라고 써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이 하나 있다면 스스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야!’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정도입니다. 그런 소명을 밑천 삼아서 예수님은 집을 나셨습니다. 그런데 마귀란 놈이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습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요. 이 정도가 되면 보통 사람 같으면 십중팔구 포기할 것입니다. 나는 배경도 없어, 배운 것도 없어, 운까지 없어, 그러면서 말이지요.

 

운명의 도전

 

며칠 전에 소설책을 한 권 읽었는데, 제목이 그렇게 보낼 인생이 아니다입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평소에 불평불만이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늘 남 탓만 하면서 살았습니다. 이 사람이 사고를 당해서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코마(coma) 상태라고 하지요. 그런 이 사람과 이 사람의 영혼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이 사람이 말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 왜 이렇게 재수가 없을까?” 영혼이 말합니다. “네 탓이지 누구 탓이겠어?” 이 사람이 화가 나서 대꾸합니다. “내 주변 환경이 다 이 모양인데 그게 어째서 내 탓이야?” 그랬더니 영혼이 이런 말을 합니다. “[너는] 상황을 통제할 순 없었겠지만 상황에 대한 반응은 통제할 수 있었어.” 아난드 딜바르(정혜미 역), 그렇게 보낼 인생이 아니다(레드스톤, 2017), 전자책 24/170. 이 대목을 읽으면서 저는, 아하,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환경을 스스로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에 안 든다고 부모를 바꿀 수 없습니다. 고향을 바꿀 수도 없습니다. 태어났더니 이러이러한 상황이더라, 그러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통제 밖의 일이에요. 그러면, 어차피 이렇게 던져졌으니 아무 소리 말고 되는 대로 살자, 그러면 되겠습니까? 그건 아니지요. 우리가 상황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나의 반응입니다.

 

, 여기서 예수님의 상황을 다시 봅시다. 가장 천한 곳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 아닙니까? 인류 가운데서 그 누구도 예수님처럼 비참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의연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소설 작가의 말처럼, 예수님은 환경을 통제하려고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주변 여건을 바꾸어보겠다고 애쓰지도 않았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환경을 바꾸려고 계획하셨다면 헤롯 임금부터 요절을 냈을 것입니다. 저 인간은 민중의 적이다, 제거하자, 이렇게 운동을 하셨다면 못 할 일도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이스라엘의 원수인 로마의 총독 빌라도를 공격하지도 않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서 배를 불리는 부자들을 해코지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옆에 있던 제자 하나가 칼을 빼서 내리쳤지요. 그 군인의 귀가 잘려 나갔습니다. 그때도 예수님은 칼 쓰는 놈은 칼로 망하는 법이야!” 하시면서 귀를 도로 붙여 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결코 상대방을, 또는 바깥세상을 통제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반응을 통제하셨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자기통제, 그 꽃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적을 공격해서 무너뜨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예수님의 인생은 완전히 실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최후의 승리는 예수님의 것 아닙니까?

 

영을 받으면

 

참 어렵지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가 있습니까? 보통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요? 성령의 능력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입으면 그렇게 됩니다. 구약성경 요엘서 2:28 말씀을 봅니다. 그런 다음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딸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 요엘 예언자의 입을 빌려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인데요, 이스라엘이 국가적인 재난을 당했습니다. 메뚜기 떼가, 하늘이 새까맣게 몰려와서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벼렸습니다. 경제가 파탄 났습니다. 백성들은 이제 죽었다, 복창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백성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걱정 마. 내가 회복시켜 줄게.”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겁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영을 부어 주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 뒤에 바로 답이 나옵니다. 너희의 아들딸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

 

아들과 딸이 예언을 한다고 했습니다. 예언을 한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점쟁이를 연상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미래를 점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뭘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들딸이 예언자가 된다는 건데요, 이것은 온 식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산다는 뜻입니다. 그 다음에, 노인들이 꿈을 꾼다고 했지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꿈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젊은이들의 몫입니다. 노인의 것이 아니에요. 다 늙어서, 죽을 날 받아놓은 사람한테 무슨 꿈이 있습니까? 그렇지만, 성령을 받으면 노인에게도 꿈이 생긴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환상은 영어로 비전’(vision)이에요. 한 마디로 말하면 앞날이 밝다는 말입니다. 최근에, 청년들을 두고 삼포세대칠포세대니 그런 말을 합니다. 다 포기하고 희망이 없다는 것이지요.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그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습니다. 내 집을 마련하는 일은 아예 꿈도 못 꿉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영을 내려주시면 젊은이들이 비전을 가지게 된다, 그런 말씀입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그렇게 됩니다. 물 한 방울 구하기 어려운 사막에 샘이 솟아납니다. 말라버린 황무지에서 꽃이 핍니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가 내릴 때처럼, 죽은 줄 알았던 것들이 소생하기 시작합니다. 죽음의 골짜기 같던 황량한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기 시작합니다.

 

맺는 이야기

 

 

이처럼, 성령을 받으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교회의 성도들이 성령을 받으면 교회가 천국이 됩니다. 교인 수가 많든지 적든지 그건 아무런 문제가 아닙니다. 그저 교회 오는 것이 즐겁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기다려집니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형제자매들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세찬 비바람에도 끄떡하지 않는 반석 같은 믿음이 생깁니다. 집안의 식구들이 성령을 받으면 부부 사이의 벽이 허물어집니다.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 사이에 소통이 원활해집니다. 형제자매 사이에 화목의 꿀이 뚝뚝 떨어집니다. 나라의 국민들이 성령을 받으면 젊은이들은 비전을 가지고 힘차게 살게 됩니다. 노인들은 꿈을 꾸면서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이런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성령님은 여러분에게 비전을 주시는 분입니다. 꿈을 가지게 하시는 분입니다. 평범한 시골 총각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을 받으신 이후에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로 변화된 것처럼, 평범하기 그지없는 저와 여러분도 성령을 받아서 놀라운 인물로 변화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시련 대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시련에 대처하는 태도 대문에 망한다.”

 

972 2020.7.5 한울교회 생방송 주일예배 예고
971 낭중지추(囊中之錐)
970 폭풍전야, 그리고 평화의 아침
969 그 가운데서 으뜸은 생각입니다!
968 지상천국, 가능한 일일까?
» 청년은 비전을, 노인은 꿈을!
966 주님께 꾸어 드리기
965 피리를 불어도, 애곡을 하여도
964 효도와 성공의 함수관계
963 행복한 부모 되기
962 고통의 원인 제거하기
961 자는 동안 복 받기
960 개켜 있는 수건
959 흥미진진한 때
958 수요와 공급의 법칙
957 그날을 꿈꾸며 감사하십시오!
956 행복을 부르는 말, 불행을 부르는 말
955 2020.3.8(일) 한울교회 온라인예배 실황 영상
954 2020.3.1 온라인예배 실황 영상
953 2020.2.23 온라인예배 실황 영상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