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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시편 15:1-4 
설교일 2020-10-25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성서 본문

 

주님, 누가 주님의 장막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의 거룩한 산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

혀를 놀려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사람,

친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를 경멸하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맹세한 것은 해가 되더라도 깨뜨리지 않고 지키는 사람입니다.

 

시편 15:1-4

 

인사

 

엊그제 상강(霜降)이 지났지요? 상강이란 24절기 가운데 하나로서 서리가 온다는 절기입니다. 가을이 깊어졌다는 뜻이지요. 오늘이 벌써 10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11월에 추수감사주일을 지키고, 12월에 성탄절을 지키면 올해도 다 지나갑니다. 올해 안에 마무리하셔야 할 일이 남아 있다면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오랜만에 우리가 한자리에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정말 기쁩니다. 반갑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이 한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삶에 필요한 엄청난 에너지를 공급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당시 유럽

 

오늘은 종교개혁 503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15171031, 독일의 성직자인 마르틴 루터는 개혁의 깃발을 들었습니다. 제가 지금 개혁의 깃발들 들었다고 말했습니다만, 사실 루터가 깃발을 들려고 작심하고 한 일은 아닙니다. 가만히 보니까, 이건 아니다, 애래서는 안 된다, 특히 세속 사람들도 아니고 교황과 성직자들이 하는 짓이 하나님의 뜻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이런 문제들을 가지고 우리 토론 한번 해봅시다, 해서 시작된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루터가 볼 때 고위 성직자들의 행동 가운데서 가장 못된 짓은 면죄부 장사였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용서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 어떤 사람에게 죄를 지었다, 그러면 첫째, 가장 먼저 그 사람, 당사자를 찾아가서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돈을 떼어먹었으면 떼어먹은 돈을 갚아야 하고, 주먹으로 한 대 쳤으면 나도 맞을 준비를 해야 하고, 그 사람한테 욕을 했으면 나도 달게 욕을 들어야 하고, 그런 식으로 말이지요. 둘째는 그 사람으로부터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 마지막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용서의 선언을 듣는 일입니다. 그래, 그만하면 됐다, 나도 용서할 테니,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이렇게 함으로써 일단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루터 당시, 교회에서는 어떻게 했는가 하면 면죄증이라는 종이 쪼가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래놓고는 이게 죄 사함을 받았다는 증서다, 돈을 내고 이걸 사면 당신들의 죄는 깨끗이 사해진다,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여러분이 이 헌금 궤에 동전을 넣으면 그 동전이 쨍그렁하면서 떨어지는 순간 연옥에 있던 여러분 가족의 영혼은 천국을 향하여 날아오를 것입니다, 이런 말까지 했어요. 글쎄요, 사실인지 확인은 해보지 못했습니다만,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당시 면죄부 판매위원장이 요한 테쩰이라는 사람이었는데요, 어느 날 라히프치히에서 한 귀족이 테쩰에게 물었습니다. “과거여 지었던 죄 말고 미래에 짓게 될 죄도, 면죄부를 사면 지울 수 있습니까?” 톄쩰은, 당연히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귀족에게 돈을 받고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얼마 뒤, 테쩰이 길을 갈 때 귀족은 그를 따라가서 세우고는 인정사정없이 쥐어팼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게 아까 면죄부 살 때 물어본 죄입니다.” 그랬대요. 다행히 후환은 없었답니다. 이런 판국이니, 면죄부라는 게 도대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까? 그래서 루터가 들고 일어났던 거예요.

 

오늘날의 대한민국

 

올해 초에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란 단체에서 여론조사를 하나 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 교회의 목사들과 교인들의 말을 얼마나 신뢰하는가, 그런 주제였습니다. 결과는 다 짐작하시지요? 지난 27, 경향신문에서 보도한 내용인데요, 한국인 10명 중 6명은 한국 교회목사그리고 기독교인의 말과 행동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렇게 응답했습니다. 주요 종교 가운데서는 그나마 가톨릭이 좀 나았습니다. 낫다고 해봐야 그 집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신교 사람들을 가장 신뢰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다음으로 못 믿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게 불교 신자들이고, 그것보다 조금 나은 게 가톨릭이에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교회가 신뢰받을 수 있겠는가, 그것도 물어봤는데요, 이 질문에 대해서 응답자의 25.9%교회 재정을 투명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꼽았습니다. 이어서 22.8%는 교회 지도자들의 삶이 변화해야 한다고 답했고요, 다른 종교에 대한 태도를 고쳐야 한다는 답도 19.9%나 나왔습니다. 이 조사는 지난 19일부터 11일까지, 제주를 제외한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된 겁니다.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고요.

 

세상 사람들이 개신교 교인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기독교인들이, 즉 우리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안 믿어준다는 거예요. 참 슬픈 일입니다. 옛날에 공자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군자는 의()를 그 바탕으로 삼고, 예법(禮法)에 맞게 행동하고, 겸손하게 말을 하고, 믿음직하게 그 말을 실행해야 한다. 그래야 군자라고 할 수 있다.” 전대환, 공자제곱(이야기마을, 2017), 354. 공자님은 군자가 많아져야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런 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공자님이 말하는 군자는 사람다운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람다운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의를 그 바탕으로 삼으라고 했습니다. 우리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뭡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우리 삶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잖아요.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하셨습니다. 개인적인 욕심을 두고 기도하지 말고 항상 의를 먼저 생각하라는 거예요. 그리고 둘째는 예의 바르게 생동하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겸손하게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요. 둘째와 셋째, 이건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예수님도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넷째, 자기가 한 말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그랬지요?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2:17입니다.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우리의 책임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을 내뱉어놓고 실천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죽은 사람 보고 너 왜 그렇게 가만히 있느냐고, 네가 했던 말, 네가 했던 약속을 지키라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꼼짝하지 않잖아요. 살아 있다면 움직여야 합니다. 살아 있다면 말을 실천해야 합니다. 다윗이 이런 시를 지었습니다. 시편 15:1-4입니다. 주님, 누가 주님의 장막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의 거룩한 산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 혀를 놀려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사람, 친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를 경멸하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맹세한 것은 해가 되더라도 깨뜨리지 않고 지키는 사람입니다.” 시 첫머리를 다시 봅니다. “주님, 누가 주님의 장막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그랬습니다. , “누가 주님의 거룩한 산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누가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겠습니까, 누가 하나님과 한 식구가 될 수 있겠습니까, 누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그런 말 아닙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한 조건을 말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죄인도 다 받아주시는 분이지만, 그 뜻은 죄인을 받아주신다는 뜻이지, 죄를 마냥 용납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자녀답게 살아야지요. 하나님은, 시궁창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우리를 건지셨어요. 그리고는 깨끗하게 닦아서 자녀로 삼아주셨어요. 그렇다면 우리도 그에 걸맞게 바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요? 4절에 나와 있습니다. “맹세한 것은 해가 되더라도 깨뜨리지 않고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은, 여러분이 했던 말과 여러분이 믿고 있는 바를 잘 실천하고 계신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더라고, 기독교인 가운데는 식언(食言)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식언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자기가 한 말을 먹어버린다는 것이지요. 요즘 아이들 표현을 빌리자면 씹어버리는 것입니다. 자기 말을 씹어버리고, 상대의 말을 씹어버리는 사람, 그런 사람이 또래 집단에서 버틸 수 있겠습니까? 퇴출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일부 다른 기독교인들 이야기고, 나는 잘 지키니까 상관없어,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그것도 안 될 일입니다. 같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니까, 그 사람들의 뻘짓도 우리가 안고 가야 해요. 공동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맺는 이야기

 

 

지난 광복절 연휴 때, 일부 기독교인들이 광화문에 모여서 시위를 강행했지요. 그 탓에 코로나바이러스가 급격히 퍼졌습니다. 그 사람들이 저지른 악행 때문에 코로나 확진자 상황을 그 이전으로 돌리는 데 두 달이나 걸렸습니다. 이제야 겨우 진정되어 가고 있지 않습니까? 아직 불안하기는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그 이후, 여러 교회에서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참여하지 못했습니다만, “교회가 미안합니다!”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공동책임을 느끼는 그런 태도는 꽤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작금에, 교회가 욕을 먹고 있는 것, 그건 우리 책임, 내 책임이 아니야, 하고 있기가 매우 불편합니다. 앞으로는 기독교인 가운데서 뻘짓하는 사람이 없도록 우리가 좀 더 기도하고, 좀 더 소통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저와 여러분 가운데 충만히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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