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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로마서 8:5-6 
설교일 2021-05-23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오순절 

성서 본문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신에 속한 생각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속한 생각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로마서 8:5-6

 

들어가는 이야기

 

오월도 어느덧 하순입니다.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 이 좋은 시절이 가기 전에 여러분의 삶에도 은혜로운 일, 기뻐할 일, 감사한 일들이 많이, 많이 일어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로마서를 보니까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사람의 생각과 성령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600명 중 하나

 

서울대학교 병원 종양내과 김범석 선생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느 날 외래진료를 보는데 천문학자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천문학자가 물었습니다. 천문학자, 그러면 별을 연구하는 사람이잖아요. “선생님, 오후에는 외래를 몇 시까지 봅니까?” “저녁까지 보죠. 일곱 시에 끝나면 빨리 끝나는 편이에요.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세요?” “제가 기다려보니 한 시간 동안 선생님 외래에 들어오는 환자가 10명 정도 되더라고요. 홈페이지상으로는 외래가 월ㆍ수ㆍ금이던데, 지난번 오전 외래는 두어 시까지 보시는 것 같고, 오후 외래를 그 시간까지 보시면일주일에 외래 보는 시간이 20시간 정도라고 할 때, 일주일에 200명을 보시는 게 되더라고요. 이분들이 대략 3주 간격으로 온다고 하면 선생님이 보시는 전체 환자 숫자가 한 달에 600명 정도 되나요?” 별을 세는 일이 직업이다 보니 환자의 수를 세는 것도 잘했습니다. 실제 외래에 오는 환자 수는 600명보다 더 되긴 하지만 그 정도면 이 사람의 계산법은 꽤 정확한 편입니다. 그 사람이 또 물었습니다. “600명 환자를 다 기억할 수는 있으세요?” 솔직히 좀 찔리는 질문이지요? 외래 의사가 600명이나 되는 환자를 어떻게 다 기억합니까? 그래서 의사는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가려고 하는데, 환자가 말했습니다. “저는 그 600명 중 한 명인 거네요.” 그러더니 잠시 후에 환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에게는 제가 600명 중 한 명일지 몰라도 저에게는 선생님 한 분뿐이거든요.” 김범석,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흐름출판, 2021), 56%.

 

병원에 가면 가끔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환자를 가족처럼 맞이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불가능입니다. 환자를 가족처럼 대하는 의사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환자는 실제로 의사의 가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의사 사위나 의사 며느리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실제로 의사가 가족이 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만족스럽지는 못합니다. 의사도 과가 많은데, 의사 며느리, 의사 사위가 만능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의사가 실제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크게 유익한 점은 생각처럼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요, 의사가 자신의 환자 전부를 가족처럼 여기면 그 의사, 버티지 못합니다. 가족 중 한 명만 아프거나 생을 마감해도 남은 가족들은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만약 누군가가 가족이 600명이고, 그 모두가 아프거나 그 모두를 떠나보내야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사람은 필시 미쳐버릴 겁니다. 수많은 환자를 치료하면서, 모든 사람을 부모에게 하듯이, 자식에게 하듯이 정신과 마음을 다 쏟아버리면 의사는 버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의식적으로 환자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천문학자 환자의 말 기억하시지요? “선생님에게는 제가 600명 중 한 명일지 몰라도 저에게는 선생님이 한 분입니다.” 김범석,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흐름출판, 2021), 58.

 

차별 대우

 

옛날이야기 하나 합니다. 먼 옛날, 자비심이 지극한 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왕이 산길을 가는데 비둘기 한 마리가 품에 안기면서,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매 한 마리가 쫓아와서 말합니다. “그 비둘기는 내 밥입니다. 내놓으시지요.” 왕은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매가 다시 말합니다. “임금님, 임금님은 모든 생명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왜 저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습니까?” 하는 수 없이 왕은 비둘기 대신 자기 살을 떼어주기로 했습니다. 비둘기만큼의 살을 떼어주기 위해서 왕은 허벅지 살을 조금 떼어 양팔저울에 올려놓고 한 쪽에는 비둘기를 얹었습니다. 비둘기만큼 살을 떼어주겠다는 뜻이지요. 그랬더니 이게 웬 일입니까? 비둘기가 더 무거웠습니다. 이번에는 한 팔과 한 다리를 올려놓았습니다. 역시 비둘기 쪽이 더 무거웠습니다. 생각다 못한 왕은 자기 온 몸을 저울에 올려놓았습니다. 비로소 무게가 같아졌습니다. 매는 왕의 행동에 감동해서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한 뒤 하늘 높이 날아갔습니다. 법정, 참 맑은 이야기(동쪽나라, 2002), 56-60, 비둘기 대신 목숨을 바친 왕요약.

 

이 이야기에서 말하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그 무게가 같다는 것입니다. 임금의 생명과 비둘기의 생명이 그 무게가 다르지 않습니다. 임금의 몸값과 비둘기의 몸값이 같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동물들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의 생명도 다르게 취급합니다. 제가 구미에 상당히 오래 살았잖아요. 35년을 살았는데, 그러다 보니 의사들도 꽤 많이 압니다. 그 가운데는 각별하게 친하게 지내는 분들도 있고요. 제가 병원에 자주 가지는 않습니다만, 몇 년에 한 번씩 병원에 가면 친하게 지내는 의사 선생님들은 특별대우를 해줍니다. 한 사람당 진료 시간이 보통 3분에서 5분이고 길어야 10분인데, 저한테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집니다. 진료 중에 잠깐 차를 한 잔씩 나누는 경우도 있고요, 나중에 따로 만나서 친절한 상담을 해주는 일도 있습니다. 의사를 알고 지내는 덕에 특권을 누리는 것이지요. 그럴 때마다 다른 환자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생판 모르는 의사들만 찾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그리고 병원에 가는 일이 드무니까 미안스러운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성령의 생각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 국가들 가운데서 최고라고 하지요? 그런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다루는 것만 보더라도, 자살한 사람이 유명한 사람이냐, 아니냐에 따라 그 비중이 매우 크게 차이가 납니다. 유명한 사람이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 몇 날 며칠 언론에서 그 이야기를 내보냅니다. 그렇지만 하루에만도 4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자살하는데, 그 사람들 이야기는 신문이나 방송에 기사 한 줄 나오지 않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해서 사망하는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그 배상액이 달라져요. 직업에 따라서, 신분에 따라서 상당히 차이가 납니다. 며칠 전, 지난 수요일이 부처님 오신 날이었지요? 우리나라 불교계의 큰스님이었던 성철 스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거리마다 부처님이 계시니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잘 받드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발밑에 기는 벌레가 부처님입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벌레들을 잘 보살피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머리 위에 나는 새가 부처님입니다. 날아다니는 생명을 잘 보호하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넓고 넓은 우주, 한없는 천지의 모든 것이 다 부처님입니다. 수없이 많은 부처님께 정성을 다하여 섬기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정찬주, 자기를 속이지 말라(열림원, 2005), 219-220. 세상의 삼라만상이 다 부처님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가운데는 대접받는 부처님이 있고 무시당하는 부처님이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되잖아요. 부처님이면 다 같이 존경받아야지, 일부만 부처님 대접을 받으면 되겠습니까? 절집 대웅전에 가면 불상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건 부처가 아닙니다. 그냥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만들어놓은 하나의 형상일 뿐입니다. 그러면 진짜 부처님, 참 부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 주변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 약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진짜 부처입니다. 단 한 사람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부처님입니다.

 

마태복음서 10:29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마태복음서 10:29). 하나님은 참새 한 마리의 생명도 이렇게 크게 여기십니다. 참새의 생명도 이렇게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이신데, 그런 분이, 여러분의 생명을 무겁게. 귀하게 여기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8:6의 말씀을 다시 봅시다. 육신에 속한 생각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속한 생각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육신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은 죽음이지만, 성령의 생각은 생명이라고 했지요? 그런데 육신의 생각이 죽음이면 성령의 생각은 생명이어야 하는데, 표현이 좀 다릅니다. 생명과 평화라고 했습니다. 그냥 생명이라고 하면 될 것을, 뒤에 평화를 왜 붙였을까요? 생명과 평화, 이렇게 같이 써놓은 것은, 평화가 없는 생명은 진정한 생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평등한 생명, 불공평한 생명, 차별받는 생명은 진정한 생명일 수 없다는 말입니다.

 

맺는 이야기

 

저는 오늘 말씀의 제목을 사람의 생각, 성령의 생각이라고 붙였는데,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이겁니다. 사람의 생각은, 한마디로 말하면 N분의 1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병원에 가면 600분의 1입니다. 나라에서는 5천만 분의 1입니다. 주주총회에 가면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딱 투자한 액수만큼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령의 생각은 완전히 다릅니다. 성령의 생각은 N분의 1이 아니라 오직 그대입니다. ‘Only You!’에요. 성령님께서 보시기에 저와 여러분은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천하보다 귀한 고유의 생명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아가라는 책이 있지요.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인데요, 그 가운데 한 구절, 아가 2:14입니다. 바위 틈에 있는 나의 비둘기여,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숨은 나의 비둘기여, 그대의 모습, 그 사랑스런 모습을 보여 주오. 그대의 목소리, 그 고운 목소리를 들려 주오.” 얼핏 보면 그냥 평범한 연애 이야기에요. 그렇다면 이런 시시한 연애 이야기가 왜 성경에 책 한 권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요? 생각해 보세요. 연애할 때 어떻습니까? 남자는 여자에게 ‘N분의 1’이 아니라 온리 유입니다. 여자도 남자에게 ‘N분의 1’이 아니라 온리 유예요. 서로 연애하는데 남자가 여자를 ‘N분의 1’로 여기면 어떻게 됩니까? 큰일 납니다. 아가라는 책이 그래서 귀한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 결코 ‘N분의 1’로 취급하시지 않으십니다. 천하보다 귀한 온리 유!’로 우리를 상대하십니다.

 

 

여러분도 보시다시피 우리 한울교회는 아주 작은 교회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우리 교회가 이름 있는 대형교회들보다 훨씬 좋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대형교회 다녀보신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만, 그런 데는 신도 하나가 그저 ‘N분의 1’이에요. 목회자와 신도의 관계가 무엇과 같은가 하면, 한 달에 600명 진료를 보는 의사와 환자 사이와 같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누가 한 사람이 아프면 목사는 물론이고 온 교인이 아파합니다. 우리 교회에 속한 여러분은 결코 ‘N분의 1’이 아닙니다. ‘온리 유!’입니다. 그만큼 귀한 존재라는 뜻이에요. 우리 교회는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성령의 생각이 지배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이 어디에 가시든지, 누구를 만나시든지, 가장 존귀하게 여김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1040 힘내라, 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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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8 먹을 만큼씩만 거두십시오!
1037 구하라, 찾아라, 두드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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