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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21-07-17 16:39:25
0 79
성서본문 갈라디아서 5:22-26 
설교일 2021-07-18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성서 본문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 우리는 잘난 체하거나 서로 노엽게 하거나 질투하거나 하지 않도록 합시다.

 

갈라디아서 5:22-26

 

들어가는 말씀

 

연일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24절기 가운데 대서(大暑)가 이번 주 목요일(22)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 수도 전에 없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더위도 그렇고 코로나도 그렇고, 이제 최고 정점을 찍은 것 같습니다. 내려갈 일만 남았지요. 조금만 더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가운데서 신실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가난한 사람이겠습니까? 아닙니다. 못생긴 사람이겠습니까? 아닙니다. 못 배운 사람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겠습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건강치 못한 사람이겠습니까? 역시 아닙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그것은 인간 대접을 못 받는 사람입니다. 인간 대접을 못 받는 사람, 그게 뭘 말하는 걸까요? 그 사람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아무도 안 믿어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뭐라고 말하든지 남들이 믿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게 신실의 열매입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이 신실입니다.

 

지난 2009724,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충북 괴산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를 찾아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보답하는 것이 나의 삶의 가치다.” 나무랄 데 없는 가치관이지요? 대통령이 이런 가치관을 따르고 있는 것은 매우 마땅하고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이 기사가 어느 포털 사이트 대문에 걸렸습니다. 기사가 뜨자마자 몇 시간 만에 댓글이 무려 1만 개가 훌쩍 넘어섰습니다. 저는 댓글 숫자를 보고, 대통령에 대한 찬사가 쏟아진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몇 개를 소개해보면 이렇습니다. 이완용: “조선의 독립이 내 삶의 가치다.” 뺑덕어멈: “심 봉사 눈 뜨게 하는 것이 내 삶의 가치다.” 고양이: “쥐를 보호하는 것이 내 삶의 가치다.” 놀부: “흥부를 돕는 것이 내 삶의 가치다.” 히틀러: “유대인을 살리는 게 내 삶의 가치다.” 강호순: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 내 삶의 가치다.” KT&G: “전 국민이 금연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 회사의 가치다.” : “개구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내 삶의 가치다.”

 

이런 댓글들을 읽으면서 저는 기가 딱 막혔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대통령이 말합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편입니다. 그들의 아픔을 이해합니다.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펴겠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살리는 걸 최우선 과제로 삼겠습니다.’ 이런 말이잖아요. 그런데 국민들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댓글들을 단 거 아니겠습니까? 말이야 바른말이지만, 국민들이 생각하기에,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건 이완용이 조선 독립을 걱정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받아들인 겁니다. 물론 여기가 민주사회니까, 국민들 가운데서는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그 양반이 이렇게까지 공격을 받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것도 대통령의 정책이나 정치적 노선에 대해서 반대하고 욕을 하는 거라면 모르겠는데, 대통령을 거짓말쟁이로 취급하는 거예요.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국민들이 보기에 말과 행동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조롱 섞인 댓글들이 1만 개 이상이나 달린 것이겠지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신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령의 열매 가운데서 신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신실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뭡니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받는 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어떤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십니까?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받을 가장 큰 벌은, 그 사람이 진실을 말해도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치기 소년처럼, 아무리 사실을 말해도 아무도 안 믿어주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답답한 정도만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겠는데, 이건 그 정도가 아니라 대단히 위험한 상황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반대로, 신실한 사람은 어떻습니까?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남다른 힘을 가지게 됩니다. ‘파워있는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그런 사람이 무슨 말을 하면 온 세상 사람이 다 믿어줍니다. 그래서 신실한 사람 옆에 있으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행복해집니다. 그 사람 말을 들으면 틀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신실함의 복입니다. 신실함의 복은 재물의 복보다 더 값집니다. 장수의 복보다 더 오래 갑니다. 자녀의 복보다 훨씬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세계적인 대철학자죠,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임마누엘 칸트를 잘 아실 겁니다. 이런 위대한 철학자가 그냥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요. 이 양반의 아버지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칸트의 아버지가 객지에서 일을 보고 고향으로 가는 도중이었습니다. 떼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은 돈 되는 건 다 빼앗았습니다. 말도 뺏겼습니다. 지갑도 뺏겼습니다. 그러고는 강도들이 물었습니다. “이게 전부냐?” 칸트의 아버지가 , 이게 답니다!” 하고 대답하니까 강도들은 물건만 빼앗고 사람은 풀어주었습니다. 가진 거 다 빼앗기고 빈손으로 털레털레 고향으로 걸어가는데, 뱃속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느껴졌습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옷을 꿰매서 배 밑에 감추어둔 금덩어리였습니다. 그는 강도들에게 전부라고 거짓말한 게 생각났습니다. 곧바로 되돌아서서는 강도들에게 달려가서 말했습니다. “이보시오, 아까 내가 내 가진 걸 다 내놓았다고 말했는데, 사실은 뭐가 또 있었소.” 그러면서 금덩어리를 내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강도들은 그 누구도 그 금덩어리를 감히 받지 못했습니다. 아니, 세상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그랬겠지요. 그 가운데서 나이가 제일 많은 강도가 아무 말 없이 그에게 다가오더니, 말과 물건과 돈을 돌려주고는 안녕히 가시라고 하고 자기들 갈 길을 갔답니다.

 

소신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신실입니다.

 

세상의 모든 도둑이나 강도들이 칸트 아버지 같은 사람에게 감동할 만큼 착한 것은 물론 아닐 것입니다. 그 강도들이 유난히 양심적인 사람들이었을 수도 있지요. 정직하게 산다고 해서, 손톱만큼의 거짓말도 하지 않고 산다고 해서, 칸트의 아버지처럼 당장에 보상을 받거나 복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거짓말 안 하고 정직하게 사는 일이 얼마나 힘듭니까? 그건 정말 고행의 길이에요. 그렇지만 정직하게 살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면 언젠가는 복을 받습니다. 반드시 보상을 받습니다. 성경에, 동방의 의인이라고 불리던 사람이 있지요? 욥이잖아요? 욥이야말로 정말 정직한 사람의 표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욥은 아주 오랫동안 그 고결한 성품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안 알아준 거예요. 아내조차도 욥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대로 바가지를 긁어댔습니다. 급기야 사탄이 나섰습니다. , 저거 좋은 먹잇감이다, 장난 좀 치자, 그러면서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욥을 괴롭혔습니다.

 

이 장난질 때문에 욥은 재산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자식들도 다 빼앗겼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몸에 몹쓸 병까지 얻었습니다. 욥은 발바닥에서부터 머리 꼭대기 정수리에까지 가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유 없이 몸 가려운 거,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모릅니다. 밤새도록 한잠도 못 잡니다. 긁어도, 긁어도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하다가, 하다가, 욥은 잿더미 위에 앉아서, 옹기 조각으로 자기 몸을 벅벅 긁어댔습니다. 그때 욥의 아내가 욥에게 말했습니다. 욥기 2:9입니다. 이래도 당신은 여전히 신실함을 지킬 겁니까?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서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이런 얘기에요. 여보, 당신이 그동안 정직하게 산 결과가 이겁니까? 다 소용없어요. 남들 사는 대로 살아요, 이렇게 개고생하느니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세요, 까짓거, 죽기밖에 더 하겠어요? 그러면서 악다구니를 씁니다. 그렇지만 욥은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란 놈들도 욥을 몰아세웁니다. 네가 이렇게 고생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원인은 하나밖에 없어, 네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야, 네가 죄가 없다면 이런 일이 왜 생기겠어? 네 죄를 자백해, 그러면서 다그칩니다. 그렇지만 욥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백할 게 없습니다. 거짓말로라도 잘못했다고 했으면 그렇게까지 욕을 먹고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욥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잘못을 저질러 놓고 안 했다고 하는 것도 거짓말이지만, 아무 잘못이 없으면서도 잘못했다고 하는 것도 거짓말이잖아요. 그래서 욥은 끝까지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결국 욥이 승리했잖아요. 하나님께서 욥의 결백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 이후에 욥은 세상 그 누구도 받지 못했던 큰 복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게 욥기의 내용입니다.

 

맺는 말씀

 

 

저는 오늘도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신실함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게 신실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신실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끝까지 자기 소신을 지키는 것이 신실함이라고 했습니다. 신실한 사람은 처음에는 고생을 많이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큰 보상을 받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모두 신실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께 크게 영광이 되는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1040 힘내라, 꼴찌!
1039 사랑 받는 사람의 특징
1038 먹을 만큼씩만 거두십시오!
1037 구하라, 찾아라, 두드려라!
1036 그리스도인의 기본요건(2) - 소통
1035 그리스도인의 기본요건(2) - 찬송
1034 그리스도인의 기본요건(1) - 기도
1033 기쁨 공장
1032 기쁨이 넘치는 도시
1031 평화와 밥
1030 잊을 것과 기억할 것
1029 생명을 지켜주는 열매, 절제
1028 온유한 사람이란?
» 신실한 사람
1026 복을 베푸는 사람, 선한 사람
1025 정결한 예물, 친절
1024 마음의 피부, 인내
1023 평화 만들기, 세 가지 방법
1022 세 가지 기쁨
1021 사랑의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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