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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21-08-14 15: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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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마가복음서 6:30-34 
설교일 2021-08-15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성서 본문

 

사도들이 예수께로 몰려와서,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일을 다 그에게 보고하였다.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와서, 좀 쉬어라.” 거기에는 오고가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배를 타고, 따로 외딴 곳으로 떠나갔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것을 보고, 그들인 줄 알고, 여러 마을에서 발걸음을 재촉하여 그 곳으로 함께 달려가서, 그들보다 먼저 그 곳에 이르렀다.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으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마가복음서 6:30-34

 

들어가는 이야기

 

광복절입니다. 오늘이 해방의 날인데, 혹시 여러분 가운데는 해방되지 못하고 어딘가에 묶여 있는 분은 안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만에 하나, 누군가가 여러분을 묶어놓고 있다면 그 속박의 끈들이 다 술술 풀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평화통일 주일이기도 합니다. 남과 북, 북과 남의 교회가 지난 1989년부터 해마다 공동기도문을 만들어서 평화통일 주일에 함께 기도했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평화통일 주일을 위한 접촉마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평화와 통일의 기운은 지금도 물 밑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평화를 위해 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실 때,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 가운데서 우리가 가장 주의 깊게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서민들이 예수님을 반겼다는 사실입니다. 부자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학수고대 눈이 빠지게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던 날 밤, 메시아가 오셨다는 소식이 들에서 양을 치고 있던 목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러자 들판에서는 노래가 울려 퍼졌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갑자기 하늘 위에서 군대가 나타나서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마도 목자들이 기쁨에 겨워서, 벅찬 마음으로 함께 노래를 불렀던 것을 시적(詩的)으로 표현한 말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날 들판에서 울려퍼진 노래의 가사는 이랬습니다.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누가복음서 2:14).

 

이 노래는 예수님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시그널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열쇠 말 곧 키워드는 평화라는 것을 알리는 노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평화를 위해서다, 이제부터는 평화의 시대다, 그런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특히 서민들에게 대대적으로 환영을 받으신 일이 일생에 두 번 있었는데, 그 첫 번째가 태어나실 때이고, 두 번째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였습니다. 누가복음서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실 때 사람들은 겉옷을 벗어서 길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흔들면서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고 되어 있습니다.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님! 하늘에는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는 영광!”(누가복음서 19:38). 역시 평화의 노래였습니다. 처음 환영 때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맞이하면서 평화의 노래를 불렀고, 두 번째 환영 때도 사람들은 평화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평화를 얻기를 간절히 갈망했다는 뜻일 것입니다.

 

, 휴식, 평화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탄생과 죽음입니다. 물론 그 가운데에 수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탄생과 죽음이 두 기둥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지요.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서 탄생과 죽음이 기둥이라면 부활은 지붕입니다. 부활로 인해서 예수님의 일생은 비로소 완성에 이릅니다. 어쨌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가장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기억하시지요? 제자들이 두려워 떨면서 몰래 모여 있던 집으로 스르르 들어오셔서 하셨던 말씀이잖아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샬롬!”이라고 하셨어요. 이런 것을 보면 평화야말로 예수님의 삶의 알파와 오메가 곧 처음과 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평소에도 늘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시려고 애를 쓰셨습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에 나오는 이야기를 봐도 그렇습니다.

 

마가복음서 6:30-44의 이야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앞부분은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셨다는 이야기이고 뒷부분은 군중들에게 평화를 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와서, 좀 쉬어라.” 쉴 수 없다는 것은 평화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왜 평화롭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너무나 바빠서 밥 먹을 겨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좀 쉴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편안하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평화롭다는 것의 다른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뒷부분에 보면 예수님께서 군중들에게 음식을 먹게 한 내용이 나옵니다. 성경에 보니까 그때 모인 사람들이 성인 남자만도 5천 명쯤이라고 되어 있는데, 어마어마한 숫자지요. 어떤 방법을 쓰셨는지는 모르지만, 예수님은 그 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도록 조치하셨습니다. 함께 먹는 곳에 평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 할 때 ’() 자를 보면 벼 화() 자 옆에 입 구() 자가 있지 않습니까? 그건 밥을 함께 먹을 수 있어야 평화라는 것이지요. 공평하게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을 때, 거기서 평화가 생깁니다. 그리고 평화로울 수 있어야 휴식을 할 수 있습니다. 휴식과 배부름, 이것이 평화의 본질입니다.

 

남과 북의 평화

 

남과 북이 분단된 것이 1945년이니까 우리는 벌써 76년간이나 서로 갈라져서 대치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휴식이 없었습니다. ‘휴식이 아니라 휴전상태로 지금껏 살아오고 있습니다. ‘휴전’(休戰)이란 말에 ’() 자가 들어 있다고 그게 쉬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남이든 북이든 두 다리 뻗고 편안히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너무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은 휴식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이거 빨리 풀어야 합니다. 어떻게 풉니까? 예수님께서 주신 방책을 쓰면 됩니다. 밥을 함께 나누는 것이지요.

 

북녘에 굶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니까 남쪽의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빨리 개방해서 머리 숙이고 나와, 그러면 먹을 것 줄게!” 76년간을 자존심 하나로 버틴 사람들인데 그런다고 나오겠습니까? 그런 방법으로는 안 됩니다. 무조건 먹을 것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주어야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그게 무기가 돼서 전쟁 준비를 할 것 아니냐?” 그럴 수도 있겠지요. 설령 그런 위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평화를 원한다면 같이 먹어야 합니다. 만일 예수님이 군중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얼마나 웃기겠습니까? “어이, 자네! 자네는 내가 주는 밥을 먹으면 그 힘으로 나쁜 짓을 할지도 모르니까 저쪽으로 빠져!” 이런 식이라면 거기에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주는 밥을 먹고 상대방이 무슨 짓을 하든, 그 상대방이 배가 고프다면 일단 밥은 주어야 합니다. 그게 인륜입니다.

 

맺는 이야기

 

 

밥은 무조건 같이 먹어야 합니다. 한쪽에서는 굶고 한쪽에서는 배부르면 결코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대치 상황이 더 험악해집니다. 평화가 사라집니다. 서로 미워하며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휴식이 있을 수 없지요. 발 뻗고 잘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위해서는 밥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서로 간에 휴식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휴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먹을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야 평화가 오고, 평화가 있어야 쉼이 있습니다. 이것은 남북관계에도 적용되지만, 우리 개인의 삶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평화가 있어야 편안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함께 편안하게 밥을 먹어야 합니다. 공평하게 나누어 먹어야 합니다. 빈부의 격차가 커지면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 주님의 은총으로 저와 여러분의 삶에 진정한 평화가 깃들기를, 그리고 우리나라에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되기를, 또한 온 세계에 온전한 평화가 자리 잡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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