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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야고보서 5:13-15 
설교일 2021-09-12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성서 본문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 여러분 가운데 병든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십시오. 그리고 그 장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 믿음으로 간절히 드리는 기도는 병든 사람을 낫게 할 것이니,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은 것이 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야고보서 5:13-18

 

들어가는 말씀

 

야고보서 5:13-14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 여러분 가운데 병든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십시오.” 이 말씀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기도와 찬송과 소통, 이 세 가지가 그리스도교인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요건입니다. 이 가운데서 오늘은 찬송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판초 비야와 라쿠카라차

 

멕시코의 유명한 영웅이 있습니다. 판초 비야(Pancho Villa, 1878.6.5~1923.7.20)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187865일 멕시코에서 농장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어려서부터 농장노동자로 일했습니다. 판초 비야의 나이 열여섯 되던 해인 1894년에 그의 일생을 바꾸어놓은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농장 주인이 그의 누이를 강간한 것이지요. 당시에는 드물지 않게 일어나던 일이었지만, 이 사람은 그것을 묵과하지 않고, 누이를 강간한 농장 주인을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멕시코 북부 산속으로 들어가서 산적이 되었습니다. 비록 도둑이 되기는 했지만, 이 사람은 그냥 도둑이 아니라, 부자들의 재산을 털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의적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술을 마시되 취하지 말고, 사랑을 하되 감정에 매몰되지 말고, 훔치되 부자들의 것만 건드려라!” 이 당시 멕시코의 농민들은, 지주들의 등쌀에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멕시코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사람이 100만 명이나 죽은 큰 사건이었습니다. 판초 비야는 1910, 자신을 따르던 게릴라 세력을 이끌고 농민혁명에 가담하였고, 파죽지세로 멕시코 북부지역을 평정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판초 비야는 민중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혁명은 성공했지만, 그는 19237월 암살당하였습니다.

 

여러분, 학교 다닐 때 라쿠카라차라는 노래를 배우셨을 겁니다. 아주 경쾌한 노래였지요. 우리는 이 노래를 즐거운 노래로만 알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배운 가사는 이런 식으로 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번 들어보실까요? 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 아름다운 그 얼굴 / 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 희한하다 그 모습 / 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 달이 떠올라오면, / 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 그립다 그 얼굴.” 그런데 사실 이 노래는 명랑한 노래가 아니라 판초 비야 시대에 애창되었던 혁명가입니다. 우리가 이 노래를 배울 때가 독재 시절이었기 때문에 엉터리 가사를 배운 것이지요. 워낙 오래된 민요라, 다른 버전이 많습니다만, 판초 비야 당시의 가사는 대체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 이제 더 살 수가 없네. / 먹을 것이 없기 때문이지. / 그러나 누군가가 나를 미소 짓게 하네. / 그는 바로 셔츠를 벗은 판초 비야. / 이미 까란사의 군대는 도망 가버렸네. / 판초 비야의 군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지.” 원래 쿠카라차라는 말은 바퀴벌레라는 뜻입니다. 거기다가 여성명사 앞에 붙는 정관사 를 붙여서 라 쿠카라차가 된 것이지요. 민중의 삶이 바퀴벌레처럼 비참하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한편 바퀴벌레처럼 생명력이 질기다는 뜻도 담고 있습니다. 판초 비야를 그리워하는 노래입니다. 이런 노래가 힘이 되어 그들은 농민혁명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음악의 힘

 

멕시코 민중들은 자기들의 비참한 삶에서 생긴 한을, 노래를 통하여 발산했습니다. 동학혁명 때 우리나라 사람들도 전봉준 장군을 그리며 역시 노래를 불렀지요. 전주 고부 녹두새야 어서 바삐 날아가라 댓잎 솔잎 푸르다고 봄철인 줄 알지마라.” 전봉준 장군이 체포되지 않고 멀리 멀러 도망가기를 바라는 뜻이지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이것은 전봉준 장군을 붙잡지 말라는 가사입니다. 이처럼, 동서양의 민중들은 노래를 통하여 자기들의 시름을 달래고, 희망을 얻고, 힘을 키웠습니다. 노래라는 게 이렇게 힘이 있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 때, 중국군들이 일본군과 많이 싸웠지요. 중국군 가운데서 마오쩌둥(모택동) 군대는 게릴라전에서 대단한 전과를 올리고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사용한 전법이 좀 특이했습니다. 모택동 군은 일단 일본군을 포위하고 나면 중국 전래의 고전적인 악기를 동원하여 노래를 처량하게 읊어댑니다. 처음에 들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이 오래 계속되면 반응이 나타납니다. 거기다가 달이라도 비치는 밤이면 그렇지 않아도 향수병에 걸려 있는 일본군들은 전의(戰意)를 상실합니다. 무기로 공격한 것도 아니고 다만 음악만 연주하는데도 일본군 중에서 투항하는 병사들이 의외로 많았답니다. 노랫소리, 피리 소리 하나가 얼마나 사람의 심금을 울려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金聖鍾, 黎明의 눈동자 1(도서출판 南島, 1991), 124.

 

일반적인 악기 소리나 노랫소리도 이렇게 힘을 발휘하는데, 찬송의 힘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성경말씀에 보면,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 했지요. 그러면 즐겁지 않은 사람은 찬송하지 않아도 됩니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요즘 흔히 하는 말이 있지요.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진다.’ 마찬가지입니다. 기뻐서 찬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찬송을 하면 기뻐집니다. 기쁠 때는 당연히 찬송을 해야지요. 그러나 병들었을 때나 힘들 때, 오히려 더 찬송이 필요합니다. 우리 찬송가에 보면 흑인영가가 네 곡 실려 있는데, 흑인영가(Negro Spiritual)는 고통 받는 흑인들이 자기들이 처한 처절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 불렀던 찬송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372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라는 곡입니다.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또 나의 슬픔 알까. 주밖에 누가 알아주랴 영광 할렐루야. 나 자주 넘어집니다. , 주여! 나 자주 실패합니다. , 주여!” 비록 그들이 머나먼 땅에 노예로 끌려와서 죽지 못해 살고 있고, 이 세상에는 도대체 희망을 둘 만한 데가 없지만, 주님께서 그들의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들의 희망은 오직 주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찬송으로 승화되어 나온 것이 흑인영가입니다.

 

찬송의 능력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병들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다. 병들지 않으면 부르지 못할 찬송이 있다. 병들지 않으면 믿지 못할 이적이 있다. 병들지 않으면 듣지 못할 말씀이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교육원 편, 화해하게 하옵소서(한신대학교 출판부, 1995), 274. 몸이 아플 때, 만사가 귀찮지요? 그러나 그때가 바로 찬송할 때입니다. 병들었을 때 부르는 찬송은 보통 때 부르는 찬송보다 우리 마음을 더 주님께 가까이 안내합니다. 낙심될 때 드리는 기도, 괴로울 때 드리는 찬송, 일이 잘 안 풀릴 때 듣는 말씀. 이런 것들은 보통 때에는 경험하지 못하는 색다른 것들입니다. 이런 특별한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지도 모릅니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 했지만, 사실은 괴로울 때, 병들었을 때, 고난을 당할 때, 힘이 없을 때, 일이 잘 안 풀릴 때, 그때 찬송이 더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찬송을 부를 때, 가장 우선적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달려오시기 때문입니다.

 

제 딸아이가 예술고등학교를 나와서 대학에서도 음악을 전공했는데요, 그때 저는 전국으로 여기저기 참 많이 다녔습니다. 딸아이의 연주를 직접 듣고 보기 위해서였지요. 한번은 서울 국립국악원에서 연주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서울까지 다녀왔습니다. 잠깐 딸의 연주를 듣기 위해서 그렇게 꽉꽉 막히는 길을 차를 몰고 가서, 새벽에야 돌아왔습니다. 그렇지만, 이게 아버지의 마음이고 어머니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불과 몇 분 동안의 연주지만 그걸 듣기 위해서 장거리 여행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노래를 해요. 사랑하는 자식이 악기를 연주해요. 그러면, 아무리 바쁘고 여건이 안 돼도 달려가서 들어주고 싶은 것이 부모 아닙니까? 사랑하는 자녀들이 찬송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외면하시겠습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찬송을 하면, 하나님께서는 돌아 앉아 계시다가도 얼른, 자식이 찬송하는 쪽으로 얼굴을 돌리실 것입니다. 이게 찬송의 매력입니다. 기도는요,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행동이에요. 그렇지만 찬송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시도록 하는 행동입니다.

 

맺는 말씀

 

 

우리 교회에 자랑스러운 점이 참 많습니다만, 그 가운데서도 정말 기쁜 것 하나는, 모인 사람 수에 비해서 찬송 소리가 정말 크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기 애문에 직접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만, 전에는 그랬습니다. 그것은 찬송을 좋아하는 분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겠지요. 그리고 처음 보는 곡도 금방 잘 소화를 해냅니다. 이게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예배 시간에 찬송을 부를 때나, 기도회 시간에 찬양을 할 때 보면 힘이 절로 납니다. 모두들 열심히 찬송을 하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집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때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이런 찬송 생활은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찬송의 능력이 지금부터 영원토록 우리 교회와 우리 온 가정에 넘치도록 충만하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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