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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출애굽기 16:13:16 
설교일 2021-10-03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성서 본문

 

안개가 걷히고 나니, 이럴 수가, 광야 지면에, 마치 땅 위의 서리처럼 보이는, 가는 싸라기 같은 것이 덮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이스라엘 자손이 그것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서로 이게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입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명하시기를, 당신들은 각자 먹을 만큼씩만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당신들 각 사람은, 자기 장막 안에 있는 식구 수대로, 식구 한 명에 한 오멜씩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6:14-16>

 

들어가는 말씀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동안도 고생 많으셨지요? 일하는 것만도 힘든 법인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일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서 위로를 얻고 힘을 얻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수고하고 애쓰는 것은 다 먹고 살기 위한 것인데, 오늘은 먼 옛날 모세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 그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오늘의 성경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이 더 행복해지고 더 자유로워지기를 축원합니다.

 

만나 이야기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해 나와서 광야에서 살 때의 이야기입니다. 출애굽 후 둘째 달 보름이 되던 날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몰려와서 원망을 퍼부었습니다. 이집트 땅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음식을 먹던 그 때가 차라리 좋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자기들을 광야로 끌어내서 이 고생을 시키느냐, 하는 것이었지요. 하나님이 상당히 섭섭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 주님이 누구입니까? 백성들의 고통을 그냥 지나치는 분이 아니지요. 다음날 아침, 백성이 진을 친 곳 둘레에 안개가 자욱해졌습니다. 안개가 걷히고 나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광야 지면에, 마치 서리처럼 보이는 게 하얗게 덮여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이게 뭐지, 하면서 서로 물었습니다. ‘이게 뭐지?’ ‘이것이 무엇이냐?’ 하는 말을 히브리어로 만 후라고 해요. 여기서 만나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때 모세가 주님의 명령을 전했습니다. 각자 먹을 만큼씩, 곧 식구 수대로 한 명에 한 오멜씩만 거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아무도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이나 예나 사람들의 심성이 안 그렇지요? ‘저걸 좀 더 챙겨두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몇몇 사람들이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었습니다. 그랬더니, 남겨 둔 것에서는 벌레가 생기고 악취가 풍겼습니다. 분명히 먹을 만큼씩만 거두라고 했는데, 욕심 때문에 더 챙기려다가 생긴 일입니다. 마치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먹을 만큼씩만 거두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먹을 만큼만가지고 산다면 세상은 벌써 옛날에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람의 위장(胃腸)이라는 게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하루 세 끼 이상을 먹기는 힘듭니다. 더 먹어서 좋을 것도 없고요. 그러다 보니, 요즘은 어디서 차이가 납니까? 음식 값에서 차이가 나지요. 어떤 사람은 한 끼에 5천 원으로도 훌륭하게 끼니를 때우지만 어떤 사람은 한 끼 밥 먹는 데에 5십만 원, 5백만 원을 씁니다. 한 끼에 백 명분, 천 명분을 혼자 먹어치우는 것이지요. 이것은 만나 정신에 위배되는 일입니다.

 

소크라테스 이야기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대에 안티폰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이 사람은 당시 아테네에서 소피스트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늘 소크라테스를 비난했습니다. 이 사람이 어느 날 소크라테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봐, 소크라테스, 자네가 먹는 음식은 사람이 먹기에 적합하지 않아. 그리고 의복은 또 어떤가. 그걸 옷이라고 할 수 있는가? 돈이란 받아서 기쁘고, 받으면 생활이 한결 나아지는 법인데, 자네는 제자들을 가르치고도 돈을 받지 않네.” 왜 그렇게 사는가, 그런 힐난이었습니다.

 

고요한 정적이 잠시 흐른 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안티폰, 그대는 나의 옷차림과 내가 먹는 음식을 보고, 그처럼 비참한 생활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네. 그러나 함께 생각해 보세. 돈을 받는 사람은 돈을 받은 이상 싫어도 일을 해야 하지만, 나는 돈을 받지 않기 때문에 내가 원하지 않는 자는 가르치지 않아도 되네. 음식만 해도 그래. 음식을 정말 먹을 줄 아는 사람에게는 진미성찬이 필요가 없고, 약간의 허기를 유지하면 모든 음식을 항상 맛있게 먹을 수 있다네. 의복도 마찬가지야. 옷이란 더위와 추위를 막기 위해 갈아입는 것이고, 신발은 걸을 때 발이 편하도록 신는 것인데, 자네는 내가 춥다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고, 덥다고 누구와 나무 그늘을 다투는 것을 보았는가? 또 발이 아파서 마음대로 걷지 못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러고 보면 자네는 식욕이나 환락의 노예야. 나는 실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란 말일세.” 유준호, 아무것도 구하지 마라(시공사, 2001), 196-198.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말을 맺었습니다. “안티폰, 자네는 행복이란 사치와 호사인 줄로 알고 있는데, 나는 욕심이 없으면 신과 똑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세. 욕심이 가장 적을 때 신에 가장 가까운 법일세. 신은 지고(至高)의 선인데, 그 지고의 선에 가까운 것은 그대의 모습이 아니라 나의 가난한 모습일 걸세.”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는, 자기는 가지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 또한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삶과 가깝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복음서 8:32). 진리를 알아야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진리가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에 많은 진리가 있지만, 제가 보기에 가장 큰 진리는 욕심을 버리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나 욕심 많은 사람이오!’ 하고 말하는 사람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누구나 다 욕심을 가지고 있지요. 그래도 저나 여러분은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것은 생활의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이에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왜 그렇습니까? 가난한 사람들은 생활의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이에서도 생활 형편이 조금은차이가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그건 다 거기서 거기인 정도지요. 제가 아는 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만큼의 부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불의한 돈을 받지 않고도 살 수 있지 않습니까? 불의한 청탁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압박받을 일은 없지 않습니까? 그게 자유로운 것이지요.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10년쯤 전에 어떤 정부 유관 기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관계하는 조그마한 신문사가 있는데, 거기다가 4대강 홍보 광고를 실으면 돈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아마 신문사 덩치가 컸다면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주 단출하게 운영되는 신문사이기에 걱정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거 없어도 회사 안 무너지거든요. 그러나 생활의 규모가 큰 기업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 큰살림을 유지하려면 순수성을 지켜내기가 어렵습니다. 젊은 시절에 순수한 마음으로 시민운동도 하고 목회도 하고 정치도 하고, 그런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만, 나이가 들어서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들이 여럿 있습니다. 제가 보니까 그런 경우는 대부분 살림의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큰살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맺는 이야기

 

 

먹을 만큼만 거두며 사는 것이 복입니다. 그래야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자유로워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시편 37편의 말씀으로 제 이야기의 결론을 삼으려고 합니다. 1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악한 자들이 잘 된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말며, 불의한 자들이 잘 산다고 해서 시새워하지 말아라. 그들은 풀처럼 빨리 시들고, 푸성귀처럼 사그라지고 만다. 주님만 의지하고, 선을 행하여라.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성실히 살아라. 기쁨은 오직 주님에게서 찾아라. 주님께서 네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신다. 네 갈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여라.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시편 37:1-5).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셔서, 모든 일을 형통하게 해주시되, 넘치게도 부족하게도 마시고 꼭 일용할 양식만큼 어김없이 꼭꼭 채워주시기를 축복합니다.

 

1040 힘내라, 꼴찌!
1039 사랑 받는 사람의 특징
» 먹을 만큼씩만 거두십시오!
1037 구하라, 찾아라, 두드려라!
1036 그리스도인의 기본요건(2) - 소통
1035 그리스도인의 기본요건(2) - 찬송
1034 그리스도인의 기본요건(1) - 기도
1033 기쁨 공장
1032 기쁨이 넘치는 도시
1031 평화와 밥
1030 잊을 것과 기억할 것
1029 생명을 지켜주는 열매, 절제
1028 온유한 사람이란?
1027 신실한 사람
1026 복을 베푸는 사람, 선한 사람
1025 정결한 예물, 친절
1024 마음의 피부, 인내
1023 평화 만들기, 세 가지 방법
1022 세 가지 기쁨
1021 사랑의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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