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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이샤야서 6:1-8 
설교일 2021-10-31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성서 본문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 차 있었다. 그분 위로는 스랍들이 서 있었는데, 스랍들은 저마다 날개를 여섯 가지고 있었다.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나머지 둘로는 날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화답하였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의 영광이 가득하다.”

 

우렁차게 부르는 이 노랫소리에 문지방의 터가 흔들리고, 성전에는 연기가 가득 찼다.

 

나는 부르짖었다.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

 

그 때에 스랍들 가운데서 하나가, 제단에서 타고 있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서, 그것을 나의 입에 대며 말하였다.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의 죄는 사해졌다.”

 

그 때에 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내가 아뢰었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이사야서 6:1-8

 

들어가는 이야기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동안도 여러분 모두 삶의 현장 속에서 고생이 많으셨지요? 땀 흘리며 열심히 사시는 여러분에게 큰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 오늘은 종교개혁 504주년 기념일입니다. 이런 귀한 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의 영혼과 정신과 육신에 성령님의 놀라운 감동이 폭풍처럼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구약 시대의 대 예언자인 이사야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이사야 시대의 국제정세

 

예언자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대의 이스라엘은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로 분단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근동 지역에서 가장 위협적인 나라는 앗시리아였습니다. 이사야는 남 왕국 유다에서 예언 활동을 했습니다. 당시 남 왕국의 왕은 웃시야였습니다. 웃시야 왕 시절에 유다는 경제적, 군사적으로 그 나라 역사상 최고봉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웃시야는 군 장비를 현대화시켰으며, 블레셋을 평정하여 남북을 연결하는 국제통상 도로를 장악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라비아까지 무역을 확장하고 엘랏 항구까지 무역 도로를 개척했습니다. 농업도 발전시켰고요. 이처럼 웃시야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던 웃시야 왕이 죽었습니다. 유다는 새로운 정치적 위기를 맞이합니다. 왜냐하면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강대국인 앗시리아의 티글랏 필레셀 왕이 이스라엘의 북쪽 나라인 시리아를 치며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역사적 위기를 가장 먼저 의식하고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바로 이사야입니다.

 

나라가 심상치 않구나, 이런 상황을 직감한 이사야는,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사야는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발을 옮겼습니다. 하나님께 물어보기로 한 거예요. 아주 많이 잘했지요? 성전에서 이사야는 하나님을 봤습니다. 하나님은 높은 보좌 위에 앉아 계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소를 덮고 있었습니다. 그 주위에는 날개 달린 천사들이 훨훨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천사들이 입을 모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의 영광이 가득하다.” 성전의 문설주들은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성전 안은 온통 연기로 가득 찼습니다. 그걸 본 이사야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겁에 질려 소리쳤습니다. “아니고, 나는 망했다. 이제 죽었구나. 내 입술이 이렇게 더러운데, 내가 이렇게 더러운 곳에 사는데, 이런 내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내 눈으로 보게 되다니.” 당시 사람들은 직접 눈으로 하나님을 보면 죽는 줄 알았거든요. 이때 천사 하나가 제물을 사르기 위해 준비해두었던 제단의 숯불을 가지고 이사야에게로 날아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숯불을 이사야의 입술에 갖다 대었습니다. 천사가 이사야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의 죄는 사해졌다.” 이제 이사야는 힘이 넘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이사야가 새 힘을 받았다고 했지요? 그래서 주님의 음성에 즉각 대답했습니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믿음 안에 굳게 서라!”

 

이사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무렵 남 왕국 유다의 왕은 웃시야였는데, 마침 그 당시에 웃시아 왕이 죽었습니다. 이때 강대국인 앗시리아는 계속해서 서쪽으로, 남쪽으로 밀고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 북 왕국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의 세력을 저지하기 위해 시리아의 르신 왕과 동맹을 맺고 앗시리아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왕은 베가였습니다. 이스라엘과 시리아는 유다도 동맹에 가담시키기 위해 유다 왕 아하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힘을 합칩시다, 동맹을 맺읍시다, 이렇게 요구했습니다. 아하스는 거절했습니다. 강대국인 앗시리아에 붙는 것이 자기의 정권 유지에 더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하스가 말을 듣지 않자 시리아-이스라엘 연합군은 아하스를 몰아내고 반 앗시리아 파의 왕을 세우려는 음모를 계획하고 예루살렘으로 남침해 들어왔습니다. 전쟁을 시작한 것이지요.

 

시리아-이스라엘 연합군의 유다 침공은 아하스 왕에게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유다의 성읍들이 점령당하고 예루살렘이 포위되었습니다. 이사야 72절에 보면 그 상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왕의 마음과 백성의 마음이 마치 거센 바람 앞에서 요동하는 수풀처럼 흔들렸다.” 아하스 왕은 그런 국난을 면해 보려고 이방인의 제사를 본받아 자기 아들을 제물로 바쳐 불에 태워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열왕기하 16:3). 그리고 그는 정치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시리아-이스라엘 동맹군에게 항복하기보다는 강대국인 앗시리아에게 지원을 요청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정치적 위기 속에서 이사야는 아하스 왕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아하스에게 이렇게 말했읍니다. 시리아의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크게 분노한다 하여도, 타다가 만 두 부지깽이에서 나오는 연기에 지나지 않으니,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라”(이사야서 7:4). “너희가 믿음 안에 굳게 서지 못한다면, 너희는 절대로 굳게 서지 못한다!”(이사야서 7:9).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예언자 이사야가 생각할 때, 당대의 가장 위험한 일은 예루살렘의 멸망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왕과 백성들의 믿음이 부족한 것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시리아-이스라엘 동맹에 가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렇다고 예루살렘을 구출하기 위하여 앗시리아의 세력을 끌어들이는 것은 더더욱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유다 왕국을 구출하는 해결책은 동맹군에 가담하는 것도 아니고, 앗시리아에 붙는 것도 아니고, 오직 주님이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법도를 좇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유다 왕 아하스에게 믿음을 강조합니다. 79절 다시 봅니다. 너희가 믿음 안에 굳게 서지 못한다면, 너희는 절대로 굳게 서지 못한다!” 히브리어에서 믿는다는 동사와 선다라는 동사는 같은 말입니다. 둘 다 아멘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곧 선다는 것입니다. 안 믿으면 당연히 넘어지게 되겠지요.

 

이스라엘 백성과 유다 백성, 주님의 백성이잖아요. 그렇다면 그들은 당연히 주님을 믿어야 하는데, 하나님을 믿기보다는 강대국을 의지하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보다 동맹군을 더 믿으려 했고, 유다 역시 하나님보다 앗시리아를 의지하려고 했습니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우리 집 아이가 부모인 내 말을 들으려 하기보다는 이웃집 아저씨를 더 의지하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자식이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그 자식을 낳고 길렀을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도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당시에 이스라엘과 유다를 보는 하나님의 마음이 이랬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걱정하고 계실 때에 이사야가 나선 것입니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맺는 말씀

 

15171031일은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불을 댕긴 날입니다. 오늘이 그 504주년 기념일입니다. 루터가 살던 당시에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려 하기보다는 권력과 돈을 더 의지했습니다. 아마 루터도 이사야서의 이 말씀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못된 풍조를 바로잡기 위해 누가 나설 것인가? 바로 내가 나서야겠다!’ 이래서 당시의 교황과 사회를 향하여 95개조 반박문을 대자보로 만들어서 붙였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다 사느라고 바쁘지요. 지금은 시대가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자식이 부모를 신뢰하지 않으면 그 가정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깨집니다. 학생이 스승을 신뢰하지 않으면 학교는 존재의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면 세상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한 일이에요. 그래야 세상이 안정됩니다. 그런 세상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나를 대신하여 갈까?” 이때 우리는 이사야처럼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이것은 종교개혁자 루터처럼 위대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할 수 있습니다. 대 예언자인 이사야처럼 큰 권능과 영감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스스로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나를 바꿀 줄 알면 돼요. 나는 하나님을 확실히 믿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 어떤 것보다 신뢰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되도록 나를 바꾸는 것이 개혁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면서 축복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세상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신뢰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신뢰하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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