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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이사야서 60:15-16 
설교일 2021-11-28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성서 본문

 

비록 네가 전에는

버림을 받고 미움을 받아서,

너의 옆으로 오는 사람이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길이길이 너를 높이고,

너를 오고오는 세대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게 하겠다.

네가 이방 나라들의 젖을 빨며,

뭇 왕의 젖을 빨아먹을 것이니,

이것으로써,

너는 나 주가 너의 구원자이며,

너의 속량자요,

야곱의 전능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사야서 60:15-16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은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 대림절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이런 복된 날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찾아 성심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주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채워주시기를 빌며 축복합니다. 내일과 모레가 지나면 12월이 됩니다. 열둘이라는 수가 참 재미있습니다. 한 해의 달도 열둘, 띠도 열둘, 시계의 눈금도 열둘, 별자리도 열둘, 한 옥타브 속의 반음도 열둘, 이스라엘의 지파 수도 열둘, 예수님의 제자도 열둘. 다 꼽을 수도 없습니다. 옛날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요즘 나오는 전화기의 버튼까지도 열두 개입니다. 이제 우리는 며칠 지나면 열두 번째 달을 맞이하게 됩니다. 12월은 추워지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추억이 많은 달이기도 합니다. 한 해가 가는 때여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성탄절이 있어서 의미가 큰 달입니다. ‘성탄하면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말인데, 예수님께서 오신 일이 어째서 그렇게 중요한가,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모모 이야기

 

에밀 아자르가 쓴 소설 가운데 자기 앞의 생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오래 전에 읽은 책입니다만, 주인공은 모모라고 하는 알제리 출신의 열 살짜리 소년입니다. 이 소년은 고아인데, 로자라는 유대인 할머니(“로자 아줌마”) 밑에서 자랍니다. 이 할머니는 창녀 출신입니다. 이제는 늙어서 나이가 65세에 이르렀고, 몸무게는 95kg이나 나가는 추한 할머니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린 모모는 이 할머니를 때로는 무서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미워하기도 하지만, 어느새 그런 마음은 사라지고 연민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할머니의 집은 7층짜리 아파트의 꼭대기 층이었는데, 할머니는 이제 병이 들어 그 계단도 오르내리지 못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 모모는 어떤 예쁜 배우의 녹음실을 방문하게 됩니다. 그 배우는 영화에 목소리를 더빙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소년 모모는 굉장히 신기한 현상을 발견합니다. 녹음을 하다가 NG가 나면 화면을 거꾸로 되돌려서 다시 녹음을 하게 되는데, 그 장면을 보고 모모는 속으로 환성을 질렀습니다. 대충 이야기하자면 이런 겁니다. , 한 사나이가 총에 맞아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테이프를 거꾸로 돌리니까 머리 속에 박혔던 총알이 쑥 빠지더니 다시 멀리 멀리 달아나 버리고 그 사나이는 다시 멀쩡해졌습니다. 또 다른 장면입니다. 어떤 아이가 말썽꾸러기여서 부모님 속을 어지간히 썩게 해 드리는데, 테이프를 거꾸로 돌리니까 그 아이가 금방 아기가 되더니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하나 더 다른 장면입니다. 어떤 사람이 강도를 당해서 모진 고초를 겪었는데, 테이프를 거꾸로 돌리는 순간, 그 사람은 순식간에 다시 행복한 사람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 걸 보면서 모모가 생각했습니다. ‘우리 로자 아줌마의 테이프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옛날로 돌이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그런 생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이야기

 

역사라는 것은 한 번 지나가고 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모모가 본 장면처럼, 테이프를 거꾸로 휙 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이스라엘 역사를 보더라도 가슴 아픈 일들이 참 많습니다. 테이프를 되돌릴 수만 있다면, 할 수만 있다면 과거로 되돌리고 싶은 장면이 정말 많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만 괴로워도 테이프를 되돌리자고 했습니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노예살이 하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로 나왔을 때,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며 불평했습니다. ‘왜 우리를 끌어다가 이렇게 생고생을 시키느냐? 옛날이 좋았다. 이집트에서는 그래도 배는 고프지 않았다. 고기도 먹을 수 있었다. 도로 돌려놓아라!’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어서 바빌로니아로 끌려갔을 때 그들은 땅을 치고 후회했습니다. 그들은 바빌로니아의 강변에서 자기들의 신세를 한탄하며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진작 주님 말씀을 들을 걸. 다시 되돌릴 수 있으면 좋겠다.’ 베르디의 오페라 가운데 나부코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오페라의 3막이 그 유명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입니다. 그 합창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나의 마음이여, 황금날개를 타고 날아가라. 비탄의 언덕길을 타고 날아가라. 부드럽고 따뜻한 고향 산들바람의 향기 나는 곳으로 날아가라. 요단의 강물과 시온의 무너진 탑들을 맞이하러 가거라. , 사랑하는 나의 잃어버린 조국이여, 소중한 추억과 불행한 기억이 있는 곳, 예언의 시인들의 황금 하프여, 왜 버드나무 위에서 침묵하고 있는가! 우리 가슴 속 기억에 다시 잃어버린 불을 붙여 옛 시절 이야기를 들려다오. 예루살렘의 잔혹한 운명을 위해 쓰디 쓴 비탄의 노래를 들려다오. 아니면 우리가 고통을 이길 수 있도록 주님께 노래를 청해다오.” 참 비통합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그런데요, 하나님은 한번 이루어진 역사를 디시 제자리로 돌리신 적이 없습니다. 광야로 나온 백성들이 죽겠다고 소리를 질렀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끝까지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백성들은 40년이란 세월을 고생했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의 출발점은 이집트가 아니라 가나안이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다시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로니아에서 죽겠다고 소리를 질렀지만, 하나님은 바빌로니아에서 삶의 형편을 좋게 해주시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역사를 새로 시작할 곳은 바빌로니아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곧 가나안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을 처리하시는 방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아우성친다고 결코 역사를 되돌리시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내팽겨 쳐 두시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십니까?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시작하게 하십니다. 영어로 말하면 리와인드(rewind)하시는 것이 아니라 리스타트(restart) 시키신다는 것입니다. 테이프를 거꾸로 돌리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게 하신다는 겁니다. 험한 팔자를 한탄하고 있는 그 사람을 다시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인생을 다시 시작하게 하신다는 겁니다. 오늘 이사야서 본문 말씀을 봅시다. 비록 네가 전에는 버림을 받고 미움을 받아서, 너의 옆으로 오는 사람이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길이길이 너를 높이고, 너를 오고오는 세대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게 하겠다. 네가 이방 나라들의 젖을 빨며, 뭇 왕의 젖을 빨아먹을 것이니, 이것으로써, 너는 나 주가 너의 구원자이며, 너의 속량자요, 야곱의 전능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버림을 받고 미움 받던 역사를 다시 돌이켜서 전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겪을 건 다 겪고 나서 새로 시작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맺는 말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도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주님께서는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아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이니, 이전 것들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떠오르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이사야서 65:17). 요한 계시록에도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보좌에 앉으신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 또 말씀하셨습니다. ‘기록하여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다’”(요한계시록 21:5).

 

 

우리가 대림절을 맞이하여 예수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은, 우리의 역사를 새롭게 시작해 주시기 위하여 그분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았을까?’ 이렇게 후회하지 마십시오. ‘내가 10년만 더 젊었더라면이렇게 한탄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새 역사를 열어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오십니다. 유명한 신학자 가운데 칼 바르트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뒤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는 없다. 그러나 누구나 지금 시작해서 완전히 새로운 결말을 만들 수는 있다.” 우리에게 오고 계시는 예수님과 함께,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083 따로, 외딴곳에서, 조금
1082 행복해지는 기도
1081 "깨어 있어라!"
1080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079 요지부동 욥
1078 바울의 폭탄선언
1077 바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산산조각 내다!
1076 “네 죄를 묻지 않겠다!”
1075 작은 씨앗, 큰 나무
1074 안식일 잘 지키기
1073 생명을 선택하십시오!
1072 능력을 입을 때까지
1071 예측 가능한 세상
1070 야곱, 부자 되다!
1069 청출어람(靑出於藍)
1068 야생, 방목, 사육
1067 좁은 문으로 들어간 솔로몬
1066 부활 드라마의 주역들
1065 예수를 찾는 이유
1064 “내가 세상을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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