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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미가서 7:8 
설교일 2022-01-02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성서 본문

 

내 원수야, 내가 당하는 고난을 보고서, 미리 흐뭇해 하지 말아라. 나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 지금은 어둠 속에 있지만, 주님께서 곧 나의 빛이 되신다.

 

미가서 7:8

 

들어가는 이야기

 

지난해, 2021, 우리 교회의 기도 제목은 다시 새날을 주소서!”였습니다. 1년 내내 우리는 이 제목으로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는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날을 주셨습니다. 지난 2년 내내 온 세상이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최근 들어 다시 확진자 수가 늘어나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렇게 오래 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예방접종도 3차까지 완료한 분들이 많고, 치료제도 개발되었습니다.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올해 2022년에 우리는 분명히 새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 기도 제목을 다시 일어나게 하소서!”로 정했습니다. 꼭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원인으로 인해 고생한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고생의 원인이 무엇이었든지, 어쨌든 하나님은 우리 앞에 새날을 놓아두셨습니다. 그러니 일어나야지요. 이제 우리 모두 일어나서 각자의 가정을 더 건강하게 세워나갑시다. 우리 교회를 더 활기차게 변화시킵시다. 우리나라를 더 아름답게 가꿉시다.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에 더 가깝게 만듭시다.

 

고생 끝에 오는 낙

 

1849, 독일의 어느 부잣집에서 아기가 하나 태어났습니다. 딸이었습니다. 아기의 아버지는 식구들이 함께 읽는 성경책에다가 이렇게 적었습니다. “또 딸이다.” 이 아기의 이름은 베르타(Bertha)였습니다. 베르타는 자라면서 공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대학 진학은 말도 꺼내지 못했습니다. 딸아이가 대학엘 간다?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베르타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계집아이라서 꿈을 못 이룬다면 똘똘한 남자 녀석 하나를 구해다가 시집을 가서 이루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고는 남자를 골랐습니다. 베르타가 고른 청년은, 비록 가난하지만 큰 뜻을 품은 엔지니어였습니다. 이름은 카를 벤츠(Carl Benz)라고 했습니다. 카를 벤츠는 말이 끌지 않는 마차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자동차를 말하는 것이지요. 베르타는 부자인 아버지로부터 받은 결혼 지참금으로 청년을 지원했습니다.

 

10년이 훨씬 지나서 그들 부부는 마침내 말이 끄는 것이 아니라 모터로 가는 자동차를 특허청에 등록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습니다. 베르타 벤츠는 자기들이 만든 차를 타고 혼자 국경을 넘어서 여행을 떠났습니다. 시험 시승을 한 것이지요. 그 과정은 참담했습니다. 연료가 부족했습니다. 밸브가 막혔습니다. 벨트도 끊어졌습니다. 그러나 베르타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방법이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한 베르타는 즉석에서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벨브 막힌 것은 모자에 꽂혀 있던 브로치 바늘로 뚫었습니다. 끊어진 벨트는 스타킹을 묶어서 연결했습니다. 그 덕에 베르타는 부족한 연료에도 불구하고 집에까지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어떠게 됐는지는 다 아시지요? 베르타의 고생은 보상을 받았습니다. 수년간의 고생 끝에 부와 명성이 찾아왔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벤츠라는 브랜드는 이렇게 해서 생겨났고, 그 이후 획기적으로 성장했습니다. 도리스 메르틴(배명자 역), 아비투스(다산북스, 2020), 전자책 49/367. 고생 끝에 낙이 왔습니다.

 

나를 위한 잔칫상

 

사람이 살다 보면 꽃길만 걸을 수는 없습니다. 고생하는 날들도 반드시 존재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 봅시다. 우리는 대개 날이 좋기를 바라지요. 그런데 비는 안 오고 햇볕만 쨍쨍 내리쬐면 어떻게 됩니까? 그곳은 머지않아 사막이 될 겁니다. 사시사철 비만 와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일 년 내내 맑기만 해서도 안 됩니다. 열흘쯤 전에 동지가 지났습니다만, 지금 북유럽 웬만한 나라들은 낮이 없습니다. 온종일 밤만 계속됩니다. 그러다가 하지를 전후해서는 밤이 없습니다. 온종일 낮만 계속됩니다. 이건 좀 곤란하지요? 재미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밤과 낮은 공존해야 합니다. 함께 존재해야 합니다. 여름과 겨울도 공존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기 좋은 곳이 됩니다. 이런 일에서 보듯이, 우리 삶에도 궂은날이 있는 걸 감사해야 합니다. 밤이 있어야 낮의 고마움을 압니다. 혹독한 겨울이 있음으로써 따뜻한 봄날의 꽃향기가 더 감미롭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단순히 고생만 하는 것이라면 웬만하면 견딜 수 있습니다. 문제는 괴롭힘입니다. 모욕입니다. 굴욕입니다. 남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하면 그건 견디기 어렵습니다. 남이 나를 모욕하기를 밥 먹듯이 한다면 그건 참기 힘듭니다. 그래서 내가 굴욕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속에서 천불이 납니다. 구약 시대에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배가 몹시 고픕니다. 마실 물을 찾지 못해 목이 타들어 갑니다. 그런 와중에 설상가상, 사방에서 원수들이 이 사람을 죽이려고 칼을 겨누고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죽음의 골짜기입니다. 사방에서 놀리는 소리, 조롱하는 소리, 비웃는 소리가 들려 옵니다. 그때 이 사람에게 한 귀인이 나타났습니다. 귀인은 우선 이 사람의 허기를 채워주었습니다. 마실 물을 주었습니다. 거기다가 이 귀인이 얼마나 싸움을 잘하는지 원수들이 득실거리는 거리도 마음 놓고 지나갑니다. 그러다가 어느 집으로 들어가더니 잔치를 준비했습니다. , 저게 뭐지, 하면서 원수들이 담밖에서 기웃거립니다. 그때 귀인이 큰 소리로 말합니다. “어떤 놈이든지 이 사람 건들면 죽을 줄 알아라, 내가 가만히 안 둘 거야. 이 잔칫상은 이 사람을 위한 거야!” 알고 봤더니 그 귀인은 임금님이었습니다. 임금님은 불쌍한 이 사람을 평생 궁궐에서 안전하게 살도록 해주었습니다.

 

다시 일어나게 하소서!

 

이 사람은 귀인이 너무나도 눈물겹도록 고마워서 시를 한 편 썼습니다. 시편 23면 말씀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우리가 즐겨 암송하는 시편 23편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찬송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 이렇게 반전을 일으켜주시는 분입니다. 아들을 낳지 못해서 굴욕을 겪던 한나는 이런 감사 찬송을 불렀습니다. 사무엘기상 2:4-8입니다. 용사들의 활은 꺾이나, 약한 사람들은 강해진다. 한때 넉넉하게 살던 자들은 먹고 살려고 품을 팔지만, 굶주리던 자들은 다시 굶주리지 않는다. 자식을 못 낳던 여인은 일곱이나 낳지만, 아들을 많이 둔 여인은 홀로 남는다. 주님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로 내려가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다시 돌아오게도 하신다. 주님은 사람을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유하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 가난한 사람을 티끌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사람을 거름더미에서 들어올리셔서, 귀한 이들과 한자리에 앉게 하시며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하신다.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기초는 모두 주님의 것이다. 그분이 땅덩어리를 기초 위에 올려 놓으셨다.”

 

맺는 말씀

 

 

말씀에서 보신 것처럼,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시고 겸손한 사람들을 모으시는 분입니다.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시는 분입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시는 분입니다(누가복음서 1:51-53). 여러분,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코로나 걱정 때문에, 빠듯한 살림살이 때문에, 눈엣가시 같은 얄미운 그 인간 때문에, 그리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여러분을 비난하는 어리석은 사람들 때문에 몸 고생, 마음고생이 심했지요?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아합 임금에게 쫓겨서 광야를 떠돌던 엘리사가 기진맥진해서 쓰러져 있을 때, 하나님의 천사가 엘리야에게 말했습니다. “엘리야야, 일어나라, 일어나서 먹어라!”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어나서 먹어라. 갈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열왕기상 19:7). 여러분, 일어나십시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기운을 차리고 벌떡 일어나면 주님께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강한 지팡이와 막대기로 여러분의 원수들을 물리쳐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원수들 앞에서 보란 듯이 여러분 앞에 잔칫상을 차려 주실 것입니다. , 이제 우리 함께 일어납시다!

 

1076 “네 죄를 묻지 않겠다!”
1075 작은 씨앗, 큰 나무
1074 안식일 잘 지키기
1073 생명을 선택하십시오!
1072 능력을 입을 때까지
1071 예측 가능한 세상
1070 야곱, 부자 되다!
1069 청출어람(靑出於藍)
1068 야생, 방목, 사육
1067 좁은 문으로 들어간 솔로몬
1066 부활 드라마의 주역들
1065 예수를 찾는 이유
1064 “내가 세상을 이겼다!”
1063 소금과 빛
1062 슬픈 기다림, 복된 기다림
1061 그분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1060 행복하게 살기를!
1059 어둠 속에서도 그림을 그리십시오!
1058 인정하십시오!
1057 먹든지 안 먹든지 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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