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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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이사야서 30:18 
설교일 2022-03-20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성서 본문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시려고

기다리시며,

너희를 불쌍히 여기시려고

일어나신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주님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은 복되다.

 

<이사야서 30:18>

 

들어가는 이야기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도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돼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새봄을 맞이하여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 위에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땅의 충만한 축복이 넘치도록 임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혹시 여러분을 속상하게 만든 일은 없었는지, 몸이 아파 고생하시지는 않았는지, 이런 저런 걱정에 불안해하시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서 사람구실을 하며 사는 것이 결코 호락호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러분은 믿음 안에서 꿋꿋하게 사셨을 줄 압니다.

 

기다리는 사람들

 

저는 주일을 기다리는 낙으로 삽니다. 전에는 주말이 가까이 오면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이번 주에는 무슨 말씀으로 설교 주제를 삼을까, 어떤 내용을 담아서 말씀을 전할까등등, 보통 마음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는데, 요즘에는 평일에 시간에 쫒기며 하는 일이 있어서 그런지, 주일이 가까이 오면 그저 즐겁습니다. 우선은 여러분을 만날 수 있어서 좋고, 또 하나는 금요일 오후 6시만 지나면 전화가 안 오고 책도 마음대로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릅니다. 한 주일 내내 생업을 위해 애쓰시는 여러분의 노고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즐거움이라면 즐거움입니다.

 

여러분, 혹시 풀꾹새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뻐꾸기의 전라도 사투리입니다. ‘뻐꾹 뻐꾹한다고 해서 뻐꾸기라고 하는데, 저쪽 동네에서는 풀꾹 풀꾹한다고 해서 풀꾹새라고 부르는 것이겠지요. 이 새는 두견이과에 속하는 철새로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름새입니다. 조금 있으면 어디서든 이 새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디에선가 풀꾹새가 애절한 목 태움으로 울고 있으면 공연히 우리 마음도 슬퍼지지요. 이 새에 얽힌 이야기들이 꽤 많이 있지요. 대부분 슬픈 이야기들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이렇습니다. 어떤 과부가 홀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힘겨운 보릿고개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어린 자식들이 굶어서 죽게 됐습니다. 과부는 그 안타까움을 어쩌지 못해 한을 품고 아이들을 뒤따라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죽은 과부의 넋이 이 산골 저 산골을 헤매며 자식들을 찾아 우는 목쉰 울음, 그것이 풀꾹새의 울음이라는 것이지요. 이제나 형편이 좀 나아지나, 저제나 배곯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기다렸지만, 결국 그 기다림이 절망으로 끝나버린 비극적인 이야기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또 다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어떤 처녀가 신랑과 결혼해서 첫날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혼인날 밤 단 한 번 정을 나누고는 다음날 아침에 과거를 보러 떠났습니다. 몇 해가 지나도 남편은 아무런 소식도 전해주지 않습니다. 남편이 끝내 돌아오지 않자, 기다림에 지친 새댁은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이렇게 죽은 여인의 넋이 임을 찾아다니며 우는 소리, 그리도 섧게 우는 소리가 풀꾹새의 울음이라는 것입니다. ‘너무 울어서 목에서 피를 토하고, 제 피를 되 마셔가며 목을 축이며 또 운다는 목쉰 피울음!’ 사람들은 풀국새의 울음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보릿고개를 지나며, 배고픔에 속 아리는 밤마다 풀꾹새는 그렇게도 지칠 줄을 모르고 웁니다. 조정래, 태백산맥 8(한길사, 1989), 291-292쪽 참고.

 

기다림이란 이렇게 서럽습니다.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기다림이 꼭 그렇게 슬픈 것만은 아닙니다. 이사야서 30:18에 보니까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은 복되다.” 기다림이 복되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는 왜 기다림을 복되다고 했겠습니까? 그 답 역시 18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 말씀의 앞부분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시려고 기다리시며, 너희를 불쌍히 여기시려고 일어나신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려고 기다리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께로 가기만 하면 그분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니다. 그러면 주님이 어떤 분이시기에 우리를 기다리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불쌍히 여겨 주십니까? 주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복된 사람들

 

하나님이 부자들만의 하나님이라면 가난한 사람들은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약육강식과 무한경쟁을 옹호하는 하나님이시라면, 약한 우리는 그분 앞으로 나아갈 꿈도 꾸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이 학술적인 토론을 즐기시는 분이라면 우리 같이 무식한 사람들은 그분 앞에서 말도 제재로 붙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주님은 부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강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유식한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 오히려 가난한 사람의 편을 들어주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강자와 약자가 다툴 때, 오히려 약자의 손을 들어주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논리적으로 설명을 못하고 있을 때, 이거냐 저거냐 분명하게 말하라고 다그치며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버벅대는 사람들을 안아주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인 위르겐 몰트만(Uergen Moltmann, 1926.4.8~) 목사는 희망의 신학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다림은 삶을 행복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기다리는 사람은 자신의 현재를 전부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요, 행복 속에서만 기뻐하지 않고 고난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으며, 행복 속에서만 행복해하지 않고 고통 속에서도 행복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로 희망은 행복과 고통을 뚫고 나간다.” 위르겐 몰트만(이신건 역), 희망의 신학(대한기독교서회, 2002), 40. 무언가를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은 건강한 사람들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제가 무언가를이라고 말했습니다만, 아무거나 기다린다고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기다릴 때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행복해할 수 있습니다.

 

맺는 이야기

 

예수님은, 나무를 판단할 때 그 잎을 보지 말고 열매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을 판단할 때도 그렇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하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열매를 삶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 공의의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까? 경남의 거창고등학교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줄 압니다. 이 학교는 1953년에 설립되었는데, 2003년에 50회 졸업식을 했습니다. 그때 한 졸업생이 이런 답사를 납겼습니다.

 

거고인 건축가가 세운 다리는 무너지지 않고,

거고인 농부가 키운 작물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으며

거고인 의사는 삶의 목숨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거고인 판사가 내린 판결은 믿을 수 있고

거고인 직공이 만든 옷은 단추가 잘 떨어지지 않으며

거고인 선생님에게는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수 있다.

거고인 관리는 뇌물을 받지 않고

거고인 기자는 거짓을 전하지 않으며

거고인 역사가는 그 무엇보다 진실을 목말라 한다.

그래서 세상은 거고를 빛이요 소금이라고 한다.

 

 

여기서 거고인이란 거창고등학교 출신을 말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으로서, 방언을 말하며 기적을 일으키며 천사의 말을 하는 등, 여러 가지 열매를 맺을 수 있지만, 이처럼 사람으로서 아주 기본적인 열매를 맺는 것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을 기다리는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기다림은 슬픈 기다림이 아니라 기쁜 기다림, 복된 기다림입니다. 지금은 비록 선보다 악이 성하고, 원칙보다 요령이 힘을 쓰는 것 같지만, 공의의 하나님은 그런 상태를 계속 두고 보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성령의 열매, 사람의 기본열매를 풍성히 맺음으로써 더 기쁘고 더 행복하게 공의의 하나님을 기다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s://youtu.be/Nr-6Unvve7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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