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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고린도전서 1:18-25 
설교일 2022-07-03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감사절 

성서 본문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할 것이다하였습니다. 현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이 세상은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그렇게 되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게 들리는 설교를 통하여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합니다.

 

고린도전서 1:18-25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요즘은 쌀이 부족하지 않아서 보리추수의 기쁨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만, 옛날에는 힘겨운 보릿고개를 넘기고 여름양식을 확보하는 때가 바로 이즈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드렸지요. 지금 우리는 보리농사를 많이 짓지 않지만, 한 해의 절반을 보내면서 그동안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앞으로 남은 반 년 동안도 몸과 마음과 영혼이 평안하기를 비는 마음으로 맥추감사주일을 지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날을 기뻐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성령님의 능력의 기운이 소나기처럼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오늘 우리가 주목할 말씀은 고린도전서 1:18-25의 말씀,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22절과 23절의 말씀입니다. 22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23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핵심을 말하자면, ‘유대사람들처럼 기적을 요구할 것인가? 아니오! 그러면 그리스 사람들처럼 지혜를 찾을 것인가? 그것도 아니오! 그러면 우리가 추구할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십자가이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 주시는 것, 당연히 감사할 일이지요.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는 것, 그것도 크게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 더 크게, 더 깊이 감사해야 할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기적?

 

먼저 기적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은 참 신나는 일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로 나오던 때, 뒤에서 이집트 군대가 잡으러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앞에는 바다가 가로놓여 있습니다. 진퇴양난(進退兩難),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때 바다가 양쪽으로 갈라져서 백성들이 바다를 건넜다고 되어 있습니다. 정말 신기한 기적입니다. 광야로 나온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괴로워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날마다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 하니까 메추라기 떼를 보내주셨습니다. 물이 없어서 목이 타고 있을 때 바위를 갈라서 물줄기가 터지게 해주셨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광야를 통과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주셨습니다. 엄청난 기적들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불행하게도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기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면 예수님은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기적으로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니까 하나님은 친히 사람이 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도 기적을 많이 행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기적이 아니면 도무지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죽은 사람까지 살려주셨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되었습니까? 아닙니다. 병 고침을 받는 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밥 얻어먹는 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택하신 길이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기적으로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혜?

 

그 다음, 지혜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지식에 대비되는 지혜가 아니라 지혜와 지식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쓰였습니다. 바울은, 유대 사람들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들은 지혜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그리스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철학과 문화 아닙니까? 기적을 가지고 인간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철학 곧 학문이나 문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그것도 아니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성철스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 중에서 못된 것이 중 되고, 중들 중에서도 못된 것이 수좌 되며, 수좌 중에서 못된 것이 도인 됩니다.” 정찬주, 자기를 속이지 말라(열림원, 2005), 210-212. 그러면서 그분이 하는 말이, 지식만능은 물질만능 못지않게 큰 병폐라는 것입니다. 뭘 좀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나쁜 짓을 더 많이 합니다. 구약 전도서에도 비슷한 취지의 말이 있습니다. 전도서, 하면 보기 드문 지혜서인데, 그 첫 마디가 이렇습니다. 전도자가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전도서 1:2). 그러더니 마지막 장에 가서 또 같은 말을 합니다. 전도자가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전도서 12:8). 사람이 지식을 아무리 많이 쌓아도 그것으로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이겠습니까? 기적으로도 안 되고, 지식이나 학문으로도 안 되면 무엇이 답이겠습니까?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기적? No! 학문? NO! 그러면 답은? 십자가, OK!’ 그렇습니다. 십자가가 답입니다. 십자가라는 게 뭡니까? 십자가는 마법의 마크가 아닙니다. 축복의 도구도 아닙니다. 구원의 티켓도 아닙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죽음의 상징입니다. 그냥 곱게 늙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불의에 저항하다가, 모순에 항거하다가 살해당하는 것, 그것이 십자가가 지니고 있는 참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죽어야 산다고 했습니다. 그냥 땅에 거꾸로 머리 박고 죽는 죽음이 아닙니다.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권력자보다는 억압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득권자들보다는 힘없는 소수자들을 위해서 처절하게 투쟁하다가 스러져가는 죽음, 그런 죽음이 있을 때 진정한 삶이 싹틉니다. 제대로 된 하나님의 나라가 꿈틀대며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그게 부활입니다.

 

십자가는 악과의 투쟁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 투쟁의 방법은 폭력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비폭력 투쟁입니다. 때리면 맞고, 욕하면 듣고, 찌르면 찔리고, 죽이면 죽고. 그것이 예수님의 삶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 민중들의 삶이 바로 그런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삼일운동이 그랬고, 4.19가 그랬고, 광주민주화운동이 그랬고, 19876월 혁명이 그랬고, 2008년의 대규모 촛불시위가 그랬습니다. 비폭력 저항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맞고 깨지고 투옥되고 죽었지만 끝까지 비폭력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동학혁명 때도 무기를 틀고 나서기는 했지만 그때 농민들이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은 그들의 마음이 너무 착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십자가 정신에 아주 가까운 민족성을 지녔습니다. 그렇지만 십자가는 십자가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뒤에는 반드시 부활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맺는 이야기

 

 

오늘 드린 말씀을 요약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일은 기적으로도 안 되고 지혜로도 안 되고, 오직 십자가로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외아들인 예수님께서, 천하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23).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황당한 일을 통하여 세상을 뒤집으셨습니다. 기적으로도 안 되었던 일, 학문이나 지혜로도 안 되었던 일을 십자가로 이루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28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이 누굽니까? 민중이지요. 이 민중의 힘이,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신비입니다.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이 세상에서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앨 것이라고 하는 소식,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음이 아니겠습니까? 주님께서 이런 복음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그것보다 더 감사한 일도 없습니다. 지금 힘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지금 멸시 받는다고 화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통하여 승리의 역사를 만드실 것입니다. 부활의 역사를 만드실 것입니다. 하늘과 같은 아버지의 은혜와 바다와 같은 주님의 사랑과 폭풍과 같은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저와 여러분에게 넘치도록 부어져서 지급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축원합니다.

 

https://youtu.be/kLX1kIPYy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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