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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22-07-09 11: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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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갈라디아서 3:26-29 
설교일 2022-07-10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성서 본문

 

여러분은 모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약속을 따라 정해진 상속자들입니다.

 

갈라디아서 3:26-29

 

들어가는 이야기

 

지나간 한 주 동안도, 무더위 속에서 여러분 모두 수고 많이 하셨지요? 인류가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온 이래 먹고 사는 일이 쉬운 적은 없었지만, 요즘같이 힘겨운 때도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고유가, 고환율, 고물가 시대라고 하지 않습니까? 제 경험으로는 1972년 오일쇼크(유류파동) 이후 가장 힘겨운 시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니까 주식투자 하신 분들은 울상입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서민은 목이 죄어 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허락해주신 안식의 날에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서 그리스도의 평화를 누리게 해주신 것은 주님께 감사한 일입니다. 오늘은 사도 바울의 말과 예수님의 교훈을 통해서 잠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바울의 노예해방선언

 

바울이 폭탄선언을 하나 했습니다. 바울이 살던 당시 기준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소리를 한 겁니다. 매우 불온한발언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백번 지당한 말이지만 그때의 사회 분위기로 보면 그랬습니다. 잡혀갈 수도 있는 위험한 주장이었습니다. 발언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는 하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28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면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왜 혁명적인 말인가 하면, 근대 세계사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절대군주제가 무너지고 이른바 민주주의가 싹튼 것이 17세기에서 18세기 사이였습니다. 서유럽에서 일어난 시민혁명이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비로소 모든 국민에게 참정권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도 여성에게는 참정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1893년 뉴질랜드가 세계 최초로 여성참정권 인정했습니다. 호주는 1902년에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었고, 유럽대륙에서는 핀란드가 1906년 최초로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했습니다. 그 뒤 미국에서는 1920년에, 영국에서는 1928년에 이르러서야 남녀가 동등하게 투표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선진국이라고 부르고 있는 나라들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그리 앞서가지 못했습니다. 이탈리아는 1945년에, 프랑스는 1946년에 여성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고, 스위스는 1971년에 이르러서야 그 일이 성사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1948년에 헌법이 만들어지면서부터 남녀가 평등하게 참정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선진국이라고 하는 스위스보다 우리가 앞선 거예요.

 

예수님의 가르침

 

우리는 하나다, 유대인과 이방인도 하나고, 자유인과 종도 하나고, 남자와 여자도 하나다!’ 하는 바울의 이 선언이 거의 2천 년이나 가까이 지나서야 형식적으로나마 우리 생활 속에서 실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울이 말하기 전, 일찍부터 이 정신을 몸으로 실천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종과 자유인을 차별하신 적이 없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달리 대접하신 적이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구별해서 따로 상대하신 적이 없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갈라놓고 한쪽을 편애하신 일이 없습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인 요한복음서 4장에 나오는 이야기를 봐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를 떠나서 갈릴리로 가실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시려면 사마리아를 거쳐서 가실 수밖에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는 마을에 이르셨습니다. 때는 정오쯤 되는 한낮이었습니다. 마침 그 마을에 우물이 하나 있어서 거기서 다리쉼을 하시기 위해 앉으셨고, 제자들은 먹을 것을 구하러 동네에 들어가고 없을 때였습니다. 그때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나왔고,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마실 물을 좀 달라고 청하셨습니다. 먼저 말을 거신 것입니다. 이 여자의 신분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엄청난 행동을 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여자가 사마리아 사람이지요. 유대인들이 이방인 취급을 하면서 개로 여겼던 사람들입니다. 아예 상대를 안 하려고 했던 종족입니다. 거기다가 여자지요. 여자라면 사람 수를 셀 때도 빼놓고 세던 시절이었습니다. 더구나 이 사람은 남편을 여섯 번이나 갈아치운 여자였습니다. 말 다 했지요.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상대로 말을 걸었고, 잠깐이지만 토론까지 하셨습니다. 동등한 상대로 여기신 것입니다.

 

건강한 하나를 위하여

 

예수님의 가르침도 그렇고, 민주주의의 정신도 그렇고, 세상의 그 어떤 사람이든지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권리를 누리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하나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라는 정신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 항거하여 자기 몸을 불태웠던 전태일은 이렇게 절규했습니다. 1970년에 쓴 글입니다. "업주들은 한 끼 점심값에 200원을 쓰면서 어린 직공들은 하루 세 끼 밥값이 50, 이건 인간으로서는 행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나이가 어리고 배운 것은 없지만 그들도 사람, 즉 인간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생각할 줄 알고, 좋은 것을 보면 좋아할 줄 알고, 즐거운 것을 보면 웃을 줄 아는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의 영장, 즉 인간입니다.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한 자는 부()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빈한 자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안식일을 지킬 권리가 없습니까?" 1970년 초의 소설작품 초고에서. 조영래, 전태일 평전(돌베개, 1991), 207.

 

요즘 영화나 TV 드라마를 보면 거의 안 빠지고 나오는 장면이 재벌 집의 사람들이 사는 모습입니다. 그 사람들은 한 끼에 수십만 원 하는 밥을 먹는 것은 보통이고, 하룻밤 술값에 수백, 수천만 원을 써댑니다. 명품 물건들이라고 해서 소소한 생필품 하나 사는 데도 수백만 원 쓰는 게 보통입니다. 그야말로 물 쓰듯 돈을 씁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부러움을 느끼십니까? ‘, 열심히 돈 벌면 나도 저렇게 살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만일 부러움을 느끼신다면 생각을 조금 바꾸십시오. 그 부러움은 분노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 것을 보고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분노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노력하면 저렇게 살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꿈을 깨셔야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사는 것은 노동자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을 나누지 않기 때문입니다.

 

맺는 이야기

 

 

남자나 여자나, 고용자나 노동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권리를 우리 스스로 저버리면 안 됩니다. 그러면 노예처럼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깨어 있어라!” 하고 누차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우리 교회 부흥회 하러 오신 목사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아직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덴마크에서 여러 해 살다 오신 목사님이었습니다. “덴마크라는 나라에서는 도시 사람이나 시골 사람이나 비슷하게 삽니다. 사장이나 수위나 생활 수준이 비슷합니다.” 큰 회사 사장이나 그 회사 직원이 비슷한 수준으로 사는 세상,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비슷한 대우를 받는 세상, 수도권 사람이나 지방 사람이나 차별 없이 사는 세상, 남자나 여자나 동등한 지위를 누리는 세상,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모두 행복한 세상, 대학 나온 사람이나 안 나온 사람이나 다 같이 당당한 세상, 그런 세상이 이상합니까? 아니잖아요. 그런 세상, 어서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라는 정신을 널리 널리 전파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일입니다. 우리가 어디 가서 차별당하지 않는 세상, 우리도 어디서든 누구든 차별하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서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https://youtu.be/FWIcDNpEVx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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