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은 이제 엘리바스의 발언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대응할 만한 상대가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대신 하나님을 애타게 찾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기만 한다면
내 억울함을 풀어주실 텐데...'
이런 심정인 듯합니다.
욥이 이토록 애타게 찾는 주님을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가 주님의 영을 피해서
어디로 가며,
주님의 얼굴을 피해서
어디로 도망치겠습니까?
내가 하늘로 올라가더라도
주님께서는 거기에 계시고,
스올에다 자리를 펴더라도
주님은 거기에도 계십니다.
내가 저 동녘 너머로 날아가거나,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거기에 머무를지라도,
거기에서도 주님의 손이
나를 인도하여 주시고,
주님의 오른손이 나를
힘있게 붙들어 주십니다."
(시편 139:7-10)
그렇다면 욥이 찾는 하나님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하나님이 안 계셔서 그런 게 아니라
만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직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셨겠지요.
하나님을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판기에서 커피 꺼내듯이
내 편리한 대로, 내 필요에 따라
나타나시는 분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달렸습니다.
별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대응할 만한 상대가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대신 하나님을 애타게 찾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기만 한다면
내 억울함을 풀어주실 텐데...'
이런 심정인 듯합니다.
욥이 이토록 애타게 찾는 주님을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가 주님의 영을 피해서
어디로 가며,
주님의 얼굴을 피해서
어디로 도망치겠습니까?
내가 하늘로 올라가더라도
주님께서는 거기에 계시고,
스올에다 자리를 펴더라도
주님은 거기에도 계십니다.
내가 저 동녘 너머로 날아가거나,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거기에 머무를지라도,
거기에서도 주님의 손이
나를 인도하여 주시고,
주님의 오른손이 나를
힘있게 붙들어 주십니다."
(시편 139:7-10)
그렇다면 욥이 찾는 하나님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하나님이 안 계셔서 그런 게 아니라
만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직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셨겠지요.
하나님을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판기에서 커피 꺼내듯이
내 편리한 대로, 내 필요에 따라
나타나시는 분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