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을 향한 하나님의 질문이
계속해서 쏟아집니다.
'네가 사자의 먹이를 댈 수 있느냐?
네가 까마귀 떼를 먹일 수 있느냐?
네가 사슴이 새끼를 낳게 하겠느냐?
네가 들나귀를 제어할 수 있느냐?
네가 들소를 길들일 수 있느냐?
네가 타조처럼 달릴 수 있겠느냐
네가 말처럼 뛸 수 있겠느냐?
네가 독수리를 날게 할 수 있느냐?'
하나님께서 욥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지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건 욥의 기를 죽이자는 게 아니라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간단치가 않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 아닐까요?
우리는 언제나 '나'를 중심으로 하여
'나를 위한 것'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나 혼자'만
사는 데가 아닐뿐더러
세상이 나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사람들과 자연세계의 삼라만상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내 뜻대로 안 되는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겠지요.
세상이 내 뜻대로 안 돌아간다고
스트레스를 받고 불평을 하는 것은
미련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맡겨야 합니다.
계속해서 쏟아집니다.
'네가 사자의 먹이를 댈 수 있느냐?
네가 까마귀 떼를 먹일 수 있느냐?
네가 사슴이 새끼를 낳게 하겠느냐?
네가 들나귀를 제어할 수 있느냐?
네가 들소를 길들일 수 있느냐?
네가 타조처럼 달릴 수 있겠느냐
네가 말처럼 뛸 수 있겠느냐?
네가 독수리를 날게 할 수 있느냐?'
하나님께서 욥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지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건 욥의 기를 죽이자는 게 아니라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간단치가 않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 아닐까요?
우리는 언제나 '나'를 중심으로 하여
'나를 위한 것'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나 혼자'만
사는 데가 아닐뿐더러
세상이 나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사람들과 자연세계의 삼라만상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내 뜻대로 안 되는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겠지요.
세상이 내 뜻대로 안 돌아간다고
스트레스를 받고 불평을 하는 것은
미련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맡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