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하나님 앞에 무엇인가
잘못을 저지른 듯합니다.
'하나님, 분노를 거두어주십시오.
저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제 생명을 건져 주십시오.
이 몸이 죽은 다음에 어찌
주님을 찬양할 수 있겠습니까?
밤마다 눈물을 흘려서
눈마저 침침해졌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응답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시인이 비록 잘못은 저질렀지만
그는 자신이 주님의 자녀임을
확신하는 가운데 기도합니다.
'제가 주님의 자녀인데
죽어서 어찌 주님을 찬양합니까?
무덤에서 어찌 주님께 감사합니까?'
우리도 잘못을 많이 저지릅니다.
그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다가
우리가 무언가 잘못하면
'요놈, 잘 걸렸다' 하고
벌주려고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독자가 아니라
자애스러운 아버지로서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안아주십니다.
그 때 우리는 세상을 향해 보란듯이
'주님께서 나의 울부짖음을,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하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눈물로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도 움직입니다.
잘못을 저지른 듯합니다.
'하나님, 분노를 거두어주십시오.
저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제 생명을 건져 주십시오.
이 몸이 죽은 다음에 어찌
주님을 찬양할 수 있겠습니까?
밤마다 눈물을 흘려서
눈마저 침침해졌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응답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시인이 비록 잘못은 저질렀지만
그는 자신이 주님의 자녀임을
확신하는 가운데 기도합니다.
'제가 주님의 자녀인데
죽어서 어찌 주님을 찬양합니까?
무덤에서 어찌 주님께 감사합니까?'
우리도 잘못을 많이 저지릅니다.
그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다가
우리가 무언가 잘못하면
'요놈, 잘 걸렸다' 하고
벌주려고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독자가 아니라
자애스러운 아버지로서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안아주십니다.
그 때 우리는 세상을 향해 보란듯이
'주님께서 나의 울부짖음을,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하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눈물로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도 움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