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자신의 죄없음을 주장합니다.
'주님, 저는 이제까지
주님의 뜻대로 살았습니다.
저를 속속들이 살펴보십시오.
저는 헛된 것을 좋아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저의 목숨을 죄인들의 목숨과 함께
거두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스도교인들은 흔히
자신을 너무 비굴하게 만듭니다.
무조건 죽을 죄인이라고만 합니다.
뭘 그렇게 죽을 죄를 졌습니까?
왜 그렇게 살아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식민지 사상에 찌든 신앙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노예근성의 신앙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거나
주님을 속이려 하는 것은 안 되지만
매일 그렇게 주눅 든 채
살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노라고
당당하게 주장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자녀입니다.
그러나 진정 죽을 죄를 지었다면
죽기를 각오하고 회개합시다.
매번 '죽을 죄인'이라 기도하면서도
기도만 마치면 잊어버리는
무책임한 인간이 되지 맙시다.
말로만 죽을 죄인이고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게 느끼는
이중 신앙인이 되지 말자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 재판이 열리더라도
떳떳하게 변론하겠다는 각오로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책임 있는 신앙인이 됩시다.
'주님, 저는 이제까지
주님의 뜻대로 살았습니다.
저를 속속들이 살펴보십시오.
저는 헛된 것을 좋아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저의 목숨을 죄인들의 목숨과 함께
거두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스도교인들은 흔히
자신을 너무 비굴하게 만듭니다.
무조건 죽을 죄인이라고만 합니다.
뭘 그렇게 죽을 죄를 졌습니까?
왜 그렇게 살아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식민지 사상에 찌든 신앙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노예근성의 신앙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거나
주님을 속이려 하는 것은 안 되지만
매일 그렇게 주눅 든 채
살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노라고
당당하게 주장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자녀입니다.
그러나 진정 죽을 죄를 지었다면
죽기를 각오하고 회개합시다.
매번 '죽을 죄인'이라 기도하면서도
기도만 마치면 잊어버리는
무책임한 인간이 되지 맙시다.
말로만 죽을 죄인이고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게 느끼는
이중 신앙인이 되지 말자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 재판이 열리더라도
떳떳하게 변론하겠다는 각오로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책임 있는 신앙인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