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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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린 날 2001-12-15 
☆ 일단 먹겠다.

먹는 게 남는 거다. 내 몸보신부터 한다. 우선 가게로 달려가서 신라면 한 개를 산다.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라면을 오돌오돌, 야들야들하게 끓여 효용 가치를 극대화시킨다. 하지만 질보다 양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커다란 찜통을 준비하여 물을 라면의 10배 정도 붓고 약한 불에 1시간 정도 푸욱 고아 본다. 양을 극대화하고 싶으면 실국수를 몇 가닥 넣는다. 라면만 끓였을 때보다 3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때 주의할 점은 끓이는 시간을 한시간으로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끓이게 되면 화가 난 라면이 자폭해 버릴지도 모른다. 다 고고 나서는 10분간 뚜껑을 열지 말고 뜸을 들인다. 라면이 호르몬 주사를 맞은 것처럼 상상을 초월하게 불어날 것이다. 어쩌면 국물과 면발이 합궁을 하여 일심동체가 되어 있는 희한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오락실에 간다.

오락실로 쪼로록 달려가 제일 자신 있는 오락으로 200원짜리 한 판과 300원짜리 한 판을 한다. 물론, 자신 있는 오락으로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허무함과 동시에 인생무상까지 느끼기 십상이다.

☆ 500원짜리 장미 한 송이를 산다.

요즘 물가에 500원짜리 장미를 발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눈을 뒤집고 찾아다니면 결국 한 송이는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만약 못 찾을 경우엔 500원을 꽃집 아줌마한테 던져서 유인한 다음 아줌마가 그걸 줍는 사이에 꽃 한 송이 뽑아들고 튄다. 어쨌거나 훔친건 아닌 셈이다... 꽃을 사서 고생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폼을 잡으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준다. 그러면 나머지는 애인이 신나게 해 줄 것이다.

☆ 운동장을 20바퀴 단숨에 뛴다.

분비한 땀의 양이 350ml정도 될 때 그만 둔다. 이 때 쉬지 말고 그대로 기어가서 이온 음료를 한 캔 산다. 그리고 단숨에 마셔버린다. 벌컥벌컥... 벌컥벌컥... 캬~ 분명히 카타르시스와 오르가즘(??)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500원짜리를 50원짜리 10개로 바꿔서 논다.

친구와 짤짤이를 한다. 단, 약간 멍청한 친구와 해야 돈도 따고 재미도 있다. 혹시나 당신이 그 친구보다 더 멍청해서 돈을 다 잃게 되더라도 그 친구를 폭행하거나 건드려서 형사사건으로 사태를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

☆ 500원짜리를 10원짜리 동전 50개로 바꿔서 즐긴다.

먼저 똑똑한 친구와 25개씩 동전을 나누어 오목을 둔다. 흑백 대신 앞 뒤 면으로 편을 가른다. 헷갈려서 눈알 굴리기 운동이 절로 될 것이다. 하다가 지치면 동전 튕기기를 하는 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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