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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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린 날 2004-06-30 
실린 곳 굿데이 
―들어오자마자 들고 있던 비닐봉지에서 음료수를 꺼내 면접관들에게 하나씩 돌리면서 "힘드시죠?"라고 말하는 면접생.

―가벼운 어조로 "내세울 만한 자신만의 특기가 뭐냐"고 물었더니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해가며 에미넴의 랩을 5분 동안 열라 침 튀기며 똑같이 한다. 뭔 소리인지 잘 알 수는 없었지만 'Motherfucking'이란 단어는 선명히 들렸다.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이 말리고 싶었지만 타이밍을 놓쳐 버렸고, 분위기는 한순간에 싸늘해졌다.

―그룹 면접에서 옆 사람과 짝을 지어 토론을 시켰다. 처음엔 둘 다 조리있게 잘 얘기하더니만, 갑자기 한놈이 "너무 잘난 체하시는 거 아닙니까"라면서 감정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눈을 부라리던 두 사람은 결국 멱살을 잡고 싸우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나가서 싸우라고 했다. 나가서도 싸움이 끊이지 않아서 결국 경비원들을 불러 건물 밖으로 쫓아내야 했다.

―여자 면접생. 한참 질문을 하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리는 것이었다. 재킷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든 그 여자 면접생은 통화 내용이 충분히 전달될 정도의 큰 목소리로 닭살스러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자기구나? 응, 지금 면접 중이라서 통화 오래 못 하거든? 나 면접 잘보라고 해줄 거지?"

―농담 삼아 "여자친구는 없나?"라고 물었더니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있었는데…"라고 얘기를 시작했다. 그녀와 처음 만났던 일부터 싸웠던 이야기와 그녀가 양다리 걸쳤던 세세한 디테일까지 한참 동안 절절한 목소리로 털어놓았다. 퍼질러 앉아 소주 한잔 걸칠 것 같은 표정으로….

―여름날, 정장 바지와 흰 양말에 스포츠 샌들을 신고 온 면접생.

―중간중간 커다란 하트 무늬가 뻥뻥 뚫린, 귤 담는 주머니 같은 그물 스타킹을 신고 온 여자.

―왜 우리 회사에 지원했는지 동기를 물었더니, 언제 어떻게 그 많은 자료를 다 조사했는지 회사의 창립부터 대표이사의 경영관, 사훈과 사원들의 모토, 사업계획, 사업실적, 앞으로의 전망과 비전 등 자신의 꿈과 회사의 이상이 일치하는 부분에 대해 매우 감동적이면서도 섬세한 연설을 펼친 면접생. 정말 면접관들을 눈물짓게 하기에 충분했다. 달달 외운 그 연설문이 우리 회사가 아니라 최고 경쟁사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는 점만 빼면…. 실수로 잘못 외운 것이었겠지. 그 면접생, 그날 과음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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