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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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05-12-23 09:5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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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린 날 2005-12-23 
실린 곳 경향신문 
황우석 신드롬은 애초부터 과학의 현상이 아니었다. BT에 명운을 건 국가는 2005년 황우석의 연구를 국교로 공인했다. 언론은 영생의 줄기세포주가 곧 오셔서 세상의 모든 병자들이 치유함을 받을 거라고 전했다. 조선복음, 중앙복음, 동아복음, 문화복음. 이 네 사도가 이 기쁜 소식을 사마리아 땅 끝까지 전하자, 이윽고 그 믿음은 모든 이의 것이 되었다.

-국가주의 코드 무장 헛된 소망-

황박사는 휠체어를 탄 척수장애 아동에게 ‘곧 걷게 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니 (…) 일어나 걸으라.”(행 3:6) 정통부에서는 척수 손상 환자가 휠체어에서 일어나 가족의 품에 안기는 감동적 장면을 담은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이런 도상을 미술사학에서는 ‘성화(聖畵)’라 부른다.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마 26:21) 배신자는 누굴까? PD수첩에서 취재에 들어가자 연구팀에서는 한 사람을 지목했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마 26:23) 황박사를 따르던 윤태일씨, 흥분하여 황박사를 잡으러 온 MBC를 공격한다.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마 26:51)

이때부터 주의 고난이 시작된다. 빌라도 앞에서 고난을 당하사 모든 공직에서 사퇴한다. 수염도 안 깎고 병원에 누운 황박사의 수척한 모습에서 사람들은 ‘패션 오브 크리스트’를 보았다. 배반할 것 같지 않았던 베드로 노성일 박사마저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황박사를 부인했을 때만 해도, 과학자로서 황박사의 생명은 영원히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황박사는 죽음의 권세를 이겼다. 기자회견을 하여 줄기세포가 있다는 증거를 세웠다. 신도들은 다시 일어난 그를 보고 환호했다. 줄기세포를 봐야만 믿겠다는 의심 많은 도마에게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 20:29) 과학의 시대에 부활한 그리스도, 지금은 조용히 DNA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황박사에 대한 믿음은 사실이 아니라 희망에서 나온 것이다. 때문에 이 상황이 되어도 여전히 그를 따르는 이들의 신앙은 과학의 힘으로 깰 수 있는 게 아니다. 난자 200개와 줄기세포 열 한 개로 오천 만명을 먹이고도 광주리 몇 개가 남는 기적은 사회적 양극화로 불안감을 느끼는 애국교 성도들 모두의 소망이 아닌가.

사실 국가주의와 시장주의 코드, 즉 황박사의 연구가 국위를 선양하고 33조원을 벌어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행패를 부렸던 이들의 헛된 소망에는 아무 연민도 느끼지 못한다. 하나님이 뜨거운 가슴과 별도로 인간의 어깨 위에 따로 머리를 달아주셨을 때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을 터. 그 섭리에 따르지 않다가 망신당한 책임은 온전히 스스로 져야 한다.

-‘이성의 절망’ 위안하는 믿음-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진실과 소망 사이에서 하나를 택해야 하는 난치병 환자와 가족들의 마음이다. 이들이 황박사를 믿은 것은 자칭 애국자들과는 다른 이유에서였다. 이들이 그동안 황박사에게 걸었던 절실한 소망, 아직도 그에게 거는 처절한 기대만은 가볍게 조롱당해서는 안될 것이다.

국위를 선양하고 33조원을 버는 것 따위는 다른 것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척수손상을 입은 난치병 환자들을 일으키는 것은 아직 불가능하다. 이렇게 과학이 돕지 못하는 곳에는 신앙이 필요하다. 이성이 절망한 곳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여전히 살아가게 해주는 것은 믿음이다.

〈진중권/ 문화비평가〉

입력: 2005년 12월 22일 18: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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