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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을지기 posted Apr 1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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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날 2009-01-23
출처 조정래, 《태백산맥 4》(한길사, 1989), 181쪽
책본문 설은 명절 중의 명절이었다. 추석이고 대보름을 큰명절이라 하지만 그것은 다 설을 앞세운 다음의 이야기였다. 설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을 때는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그 나름의 설채비는 끝내놓고 있었다. 설이 되면 비렁벵이도 쪽박에 낀 때를 벗기는 법이라고 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설채비라는 것은 거의가 어슷비슷했다. 농사일에 쫓기는 틈틈이 뜯어모아 처마그늘에 말려두었던 쑥을 꺼내 물통에 담궜다. 쑥의 독기를 울궈내고, 쌀을 많이 섞지 못하는 떡을 보드랍게 하자면 서너 차례 물갈이를 하면서 이틀은 걸렸다. 그 사이에 온 식구의 빨래를 하고, 밤이면 해진 데를 깁는 손질을 하는 것이다. 쑥을 건져내 물을 짜내기 전에 쌀을 물에 담가야 했다. 그때 가난한 아낙네들은 새로운 시름에 잠겨들었다. 하루 한 끼를 죽으로 살면서도 깊이깊이 묻어두었던 쌀을 꺼내놓고 보면 한 됫박. 그것은 산 사람들의 몫이 아니라 조상님네의 몫이라고 없는 것으로 잊고 있었던 것인데, 막상 펼쳐놓고 보면 쌀알에 서린 빈한이 가슴을 저미는 서러움이었다. 인절미는 아예 바라지도 않지만 흰떡이나마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자아내는 감상이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치마에 묻은 검불 털어내듯 훌훌 털어버려야 했다. 그 쌀이나마 없어 장리쌀을 얻으려고 있는 집 문전을 기죽어 기웃거리지 않는 것만도 조상님 덕분이라 여겼다. 쑥떡은 쪄내놓고 나면 말이 떡이지, 쌀가루 기운으로 겨우겨우 엉긴 상태의 쑥덩어리였다. 그것을 절구통에 넣고 쳐대면 쌀의 찰기가 좀더 살아나고 쑥이 몽그라져 풀이 죽으며 떡 모양새가 되었다. 아이들은 그것이나마 양쪽 손에 들고 길길이 뛰며 설기분을 돋우었다.
우리나라의 '설'은 대개
소한 대한 추위가 다 지나가고
봄 기운이 땅속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를 즈음에 오는 명절입니다.

설이 지나면 농사 준비를 해야 하고,
한 해의 힘겨운 노동이 시작되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털어낼 것은 최대한 털어내고
몸과 마음의 준비를 철저히 하였습니다.

이야기마을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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