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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훈훈한 기억

by 마을지기 posted Feb 0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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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날 2009-05-13
출처 김후란(金后蘭), 《오늘 만나는 우리들의 영혼은》(강성출판(降盛出版), 1985), 262-263쪽
책본문 그 날도 아카시아가 한창 피어 흐드러졌으니 5월 하순경이었을 것이다.

취한 마음으로 꽃길을 밟는 나를 바쁘게 지나치는 사람이 있었다.

허술한 차림의 여인이 등에 아기를 업고 머리에는 보퉁이를 인 채 어린 딸을 데리고 가고 있었다. 아마도 저녁밥 지을 걱정에 성급해 있는 걸음이었다.

“아차차!”

서둘던 아기 엄마가 그만 돌뿌리를 차고 곤두박질을 하였다.

나동그라지는 건 면했지만 고무신짝이 저만치 날아가고 버선발이 흙먼지를 뒤집어썼다.

일곱 살쯤 되었을까, 어린 딸이 달려가 고무신을 주워다가 인조견 분홍 치맛자락으로 깨끗이 닦았다.

“에그, 그 치마가 뭐 되냐!”

엄마는 소리쳤다. 딸아이는 싱긋 웃고 이번에는 엄마의 버선발을 들어 손으로 톡톡 털어 주고 고무신 위에 얹었다.

그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여인은 생각난 듯이 아카시아 한 가지를 꺾어 딸아이 손에 쥐어 주었다.

“이 꽃은 먹는 꽃이야.”

아이는 기쁜 듯이 꽃잎 하나를 입에 넣고 타달타달 먼짓길을 걸어갔다.

그 날 나는 피곤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슴 훈훈한 기억이 그 아름다운 길과 함께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았다.
사용처 1. 20120429 일 한울교회 주일예배 설교.
옛날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특히 딸내미들에게 살갑게 대하는 일을
쉽게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야단 치듯 말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돌부리를 차고 넘어질 뻔한 엄마를 위해
치맛자락으로 신발을 닦아주는 아이에게도
엄마는 그저 나무라는 투로 말합니다.
그러나 그 추궁은 칭찬의 다른 표현이었습니다.

이야기마을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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