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_btn

손이 가지는 기쁨

by 마을지기 posted Feb 19, 2008
Extra Form
보일날 2009-10-08
출처 한수산, 《먼 그날 같은 오늘》(나남출판, 1994), 46쪽
책본문 사람의 몸 가운데 잠 잘 때만이 쉴 수 있는 게 두 가지가 있다. 손과 눈이다. 이 두 개는 한순간도 멈추어 있지 않다. 그 어떤 기쁨도 노여움도 미움도 억울함도… 살아 있는 순간 순간의 모든 것을 가장 먼저 나타내는 것이 손이며 눈이다.

그렇지만 때때로 눈에는 즐거움도 있다. 환희도 있다. 오래 기다리던 사람을 만나는 설레임, 가슴 저미는 듯해서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풍경을 만날 때의 기쁨, 영화 〈뽕네프의 연인들〉을 볼 수 있는 찬란… 그것은 눈이 가질 수 있는 은혜로움이다. 그러나 손에는 무엇이 있는가. 끝없는 노동 그리고 희생. 손의 모든 것은 남을 위한 것 뿐, 자신의 몫이 없다.

사랑의 통과의례. 그것을 처음으로 겪는 건 무엇일까. 그래 그건 손이었어 하고 나는 그때 생각한다.

이 손이 처음으로 가져보는 기쁨이 무엇일까. 첫사랑. 그 첫 남자.

그의 손을 처음으로 잡을 때의 설레임만은 손이 가지는 기쁨이다. 겨우 그것이 손의 몫이었다. 어지러운 손금을 따라 촉촉히 땀이 배어나는 것 같은 그 순간의 숨막히는 듯한 긴장을, 그렇게 확인하는 사랑의 시작을 손이 치러낸다. 손을 잡는 것으로 우리들은 사랑의 통과의례를 시작한다. 그리고 서로를 껴안는다. 더 깊이 더 가까이… 그를 나에게 있게 하고 싶어서.

― 〈겨울 안개는 깊지 않다〉에서.
사용처 1. 20131117 일 한울교회 주일예배 설교.
눈으로는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고,
귀로는 감미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코로는 은은한 향기의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입으로는 맛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손은, 일을 하기 위해서
온갖 거친 것과 더러운 것들을 만져야 합니다.
첫사랑의 손을 잡는 설레임이야말로
손이 맛보는 첫 기쁨일 것입니다.

이야기마을 옹달샘

전대환의 책 이야기

List of Articles
번호 보일날 제목 조회 수
1677 2006-04-21 힘을 빼라! 3188
1676 2005-05-23 희생자가 비난 받아야 하는가 2451
1675 2006-04-29 희망이란 3260
1674 2009-11-03 흘려야 할 때 3571
1673 2010-06-18 휴일에는 일하지 말 것! 5191
1672 2009-03-05 훨씬 더 많은 햇빛 3397
1671 2008-10-23 훌쩍 떠나버리는 여행 2835
1670 2009-07-02 훌륭한 파트너를 찾아라 3492
1669 2007-07-28 훌륭한 정보의 원천 5034
1668 2010-11-18 훌륭한 영혼 4249
1667 2009-10-06 훌륭한 안내자 3612
1666 2004-11-11 훌륭한 사람을 떠받들지 마십시오 2358
1665 2008-05-23 후회파와 회상파 3135
1664 2008-04-15 후원자 3060
1663 2009-09-15 회를 먹을 때 3472
1662 2007-11-20 황당한 운명은 없다 2890
1661 2003-12-04 황당한 목표 2253
1660 2010-04-06 활력 넘치는 삶 4563
1659 2003-09-08 환희를 느끼는 순간 2312
1658 2004-12-06 화장하는 것도 선행이다 236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84 Next
/ 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