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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종소리

by 마을지기 posted Apr 1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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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날 2009-12-11
출처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돌베개, 2008), 109쪽
책본문 새벽마다 저는 두 개의 종소리를 듣습니다. 새벽 4시쯤이면 어느 절에선가 범종(梵鐘)소리가 울려오고 다시 한동안이 지나면 교회당의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러나 이 두 종소리는 서로 커다란 차이를 담고 있습니다. 교회종이 높고 연속적인 금속성임에 비하여, 범종은 쇠붙이 소리가 아닌 듯, 누구의 나직한 음성 같습니다. 교회종이 새벽의 정적을 휘저어놓는 틈입자(闖入者)라면, 꼭 스물아홉 맥박마다 한 번씩 울리는 범종은 ‘승고월하문’(勝鼓月下門)의 ‘고’(鼓)처럼, 오히려 적막을 심화하는 것입니다. 빌딩의 숲 속 철제의 높은 종탑에서 뿌리듯이 흔드는 교회 종소리가 마치 반갑지 않은 사람의 노크 같음에 비하여, 이슬이 맺힌 산사(山寺) 어디쯤에서 땅에 닿을 듯, 지심(地心)에 전하듯 울리는 범종소리는 산이 부르는 목소리라 하겠습니다. 교회 종소리의 여운 속에는 플래시를 들고 손목시계를 보며 종을 치는 수위의 바쁜 동작이 보이는가 하면, 끊일 듯 끊일 듯 하는 범종의 여운 속에는 부동의 수도자가 서 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리스도교 전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일부 그리스도교인은
불교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은, 그래도
교회의 새벽종 소리가 더 낫다고 할지 모르지만
산사의 새벽종이 어떻게 울리는지 알아보면
그들의 생각도 달라지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야기마을 옹달샘

전대환의 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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