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_btn

김칫독

by 마을지기 posted Aug 18, 2008
Extra Form
보일날 2009-12-16
출처 나상만, 《혼자뜨는 달 5 - 현주의 일기》(도서출판 다나, 1994), 256쪽
책본문 장충동 우리집 정원에는 커다란 김칫독이 묻혀 있다. 그 김칫독이 겨우내 우리 식탁을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 식구는 김치를 좋아한다.

하얗게 내린 눈을 사각사각 밟으며 김치를 꺼내러 가시던 엄마, 그 뒤로 우리집 파수꾼 현구와 현진이가 꼬리를 흔들며 나둥그러질 때 아버지는 경쾌하게 비질을 시작하셨지.

갓 꺼낸 생생한 김치 냄새에 잠이 깬 나는 순식간에 식탁까지 달음질 쳤고, 추위를 잘 타는 게으름뱅이 고양이 현묘도 엉겁결에 눈을 떴다가 다시 식탁 밑에서 졸곤 했지.

올해도 정원에 김칫독을 묻어 놓았을 텐데 누가 그 많은 김치를 다 먹을까. 서근서근한 김치를 맛보며, 행복을 얘기하던 아침, 그때가 너무너무 그립다.
요즘에는 많은 가정에서 김치를 담은 뒤
김치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꺼내 먹지만,
예전에는 뒷곁에 땅을 파고 독을 묻어
거기에다가 김장 김치를 보관해 두었습니다.

아무리 김치냉장고의 성능이 좋다고 하더라도
김칫독에서 꺼낸 김치맛은 내기 어렵습니다.
독은 숨을 쉬면서 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이지만
냉장고는 숨을 쉬지 못하는 까닭인 것 같습니다.

이야기마을 옹달샘

전대환의 책 이야기

List of Articles
번호 보일날 제목 조회 수
277 2004-02-23 날개가 있는 것은 네 다리가 없다 2275
276 2004-12-29 다급해진 일본 2273
275 2004-03-19 또 다른 기적 2272
274 2004-02-26 세 가지 욕망 2272
273 2004-12-13 부자라고 행복한 건 아니다 2271
272 2004-08-18 지혜를 익힌다는 것은 2271
271 2004-06-23 모임 약속 2271
270 2004-10-23 우리 인생의 절정은? 2269
269 2004-04-13 야수 앞의 도덕 2269
268 2004-06-16 하느님의 편애 2265
267 2004-03-11 인간이 사는 곳 2265
266 2004-02-03 엄마 같은 바다 2265
265 2004-08-30 포탄보다 강한 것 2263
264 2004-07-15 ‘환희의 송가’가 울려퍼질 때까지 2263
263 2003-12-03 2263
262 2003-09-07 옆 사람에게 물이 튀지 않게 2263
261 2005-10-14 지식의 습득이란? 2262
260 2004-05-31 풍요롭게 살기 위하여 2259
259 2004-01-14 모든 것이 다 소중하고 필요한 것 2257
258 2004-10-11 기쁠 땐 감탄사를 아껴둡니다 225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66 67 68 69 70 71 72 73 74 75 ... 84 Next
/ 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