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괴로움도 없고 슬픔도 없으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예수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고, 화도 내셨고, 슬퍼하기도 하셨고, 괴로워하기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보면 예수님께서는 "괴로워 죽을 지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기도하셨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습니다.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마태 26:39).
우리에게 고난이 오는 것은 세 가지 경우일 것입니다.
첫째는 의를 위한 고난, 둘째는 나의 죄로 인한 고난, 셋째는 내가 알 수 없는 고난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는 당연히 첫 번째 것에 해당하겠지만, 우리는 두 번째나 세 번째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욥의 경우가 세 번째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두 번째나 세 번째의 경우라면 회개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겠고, 첫 번째 경우라고 생각되더라도 일단은 나의 개인적인 실책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고난이나 고통이든 겪을 일은 겪어야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간구한다면 이런 내용이 될 것입니다.
'아버지,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실 수 없다면,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아닙니다.
예수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고, 화도 내셨고, 슬퍼하기도 하셨고, 괴로워하기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보면 예수님께서는 "괴로워 죽을 지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기도하셨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습니다.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마태 26:39).
우리에게 고난이 오는 것은 세 가지 경우일 것입니다.
첫째는 의를 위한 고난, 둘째는 나의 죄로 인한 고난, 셋째는 내가 알 수 없는 고난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는 당연히 첫 번째 것에 해당하겠지만, 우리는 두 번째나 세 번째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욥의 경우가 세 번째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두 번째나 세 번째의 경우라면 회개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겠고, 첫 번째 경우라고 생각되더라도 일단은 나의 개인적인 실책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고난이나 고통이든 겪을 일은 겪어야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간구한다면 이런 내용이 될 것입니다.
'아버지,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실 수 없다면,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