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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날 |
2004-04-21 |
실린날 |
2001-12-15 |
출처 |
들은이야기 |
원문 |
오! 하느님. 제발 저의 소원을 들어주세요.
전 제게 주어진 가난을 감히 하느님께 원망치는 않습니다. 다만 이런 생활이 지긋지긋하고 넌덜머리가 납니다. 저에게는 세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소원은 남들이 먹는 만큼만 먹어 봤으면 하는 겁니다. 하느님! 전 무 깍두기가 너무 먹고 싶습니다. 무 총각김치까지 바란다면 제 욕심이 너무 지나친 건가요? 배불리 먹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아주 조금만이라도 먹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허구헌날 식탁에 오르는 인삼 깍두기, 산삼 총각김치에 제 동심은 멍들어만 갑니다.
하느님 제 두 번째 소원은 남들 다 타고 다니는 전철 한 번 타보는 거랍니다. 일 년 삼백 육십 오일 매일 타고 싶다는 것도 아닙니다. 단 하루! 아니, 단 한 시간만이라도 타고 싶어요. 4500cc밖에 안 되는 거무틱틱한 차 속에서 따뜻한 여름에도 에어컨 바람에 덜덜 떨며 학교 가는 불쌍한 인생은 세상에 아마 저밖에 없을 겁니다. 제 삶 자체가 가시밭길 같다고나 할까요...
하느님, 마지막으로 제 세 번째 소원은 딱딱한 온돌 위에서 잠 한번 자 보는 겁니다. 제 욕심이 너무 지나친가요? 지난 밤엔, 자다가 뒤척이면 울렁울렁 거리는 물침대 위에서 전 제 앞날이 너무 캄캄해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살다가 죽는다고 생각하니 이 지경까지 제 삶을 방치한 엄마 아빠가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
하느님, 이 밤... 달빛마저도 정원 나무에 가려 보이질 않고, 그래도 이런 불쌍한 우리 가족들과 한번 살아보겠다고, 저 아래 연못에서 바둥바둥 헤엄치는 고기들과 함께 간절한 눈물로 2층 발코니에서 기도 드립니다. |
인삼 깍두기에 산삼 총각김치,
4500cc짜리 고급 승용차,
남들은 구경도 못하는 물침대,
숲이 울창한 정원,
물고기가 노니는 연못,
최고급 2층 저택...
그래도 마음이 가난하다면
행복과는 거리가 멀 수 있습니다.
참 불쌍한 학생이로군요.
딱딱한 온돌에서 잠을 자고
무 깍두기를 먹으며
전철을 타고 학교에 다니는
행복한 날이 어서 오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