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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와 안티폰의 행복론

by 마을지기 posted Apr 0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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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날 2005-04-18
출처 유준호, 《아무것도 구하지 마라》(시공사, 2001), 196-198쪽
책본문 소크라테스와 안티폰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들어보자. 어느 날 소크라테스는 여느 때처림 제자들과 한가하게 인간의 행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마침 안티폰이라는 자가 그 옆을 지나가다 대화 내용을 듣고 소크라테스에게 다가왔다. 안티폰이라는 인물로 말하면 당시 아테나이에서 소피스트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으며, 소크라테스를 못마땅하게 여겨 항상 그를 비난하는 데 앞장을 섰던 자이다.

안티폰은 이번 기회에 소크라테스와 토론을 벌여, 그의 제자들 앞에서 그를 꺾고, 그의 제자들을 자기 문하로 데리고 갈 생각을 하며 일동이 있는 앞에서 다음과 같이 회심의 포문을 열었다.

"소크라테스, 나는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자는 반드시 행복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세. 그런데 자네를 보면 바로 지혜를 사랑하는 것 때문에 행복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얻고 있는 것 같군. 자네가 만약 노예라서 주인에게 이런 대우를 받는다면 그대는 아마 도망을 가고 말 걸세. 자네가 먹는 음식은 사람이 먹기에 적합하지 않고, 의복은 검소함이 지나쳐 여름이나 겨울이나 단벌 신세로, 내의나 신발도 없이 지내고 있네. 또 돈이란 받아서 기쁘고, 받으면 생활이 한결 넉넉해지는 법인데, 자네는 제자들을 가르치고도 돈을 받지 않네. 그리고 다른 선생들은 제자들로 하여금 스승을 따르게 하는데, 자네의 경우는 제자를 부추기며, 불행을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긴장했다. 그들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라고 하는 두 사람이 만인이 보는 앞에서 논쟁을 벌여 누가 살아남을지,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스승을 걱정하는 생각이 앞서고, 또 한 편으로는 논쟁의 결과가 궁금하여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야릇한 흥분을 억누를 수 없었다.

고요한 정적이 잠시 흐르고,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늘 걸치고 다니는 헐렁한 튜니카를 조금 들었다 내리고 나서, 한 손으로 안티폰을 가리키며 말문을 열었다.

"안티폰, 그대는 나의 옷차림과 내가 먹는 음식을 보고, 그처럼 비참한 생활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네. 그러나 자네가 생각하고 있는 고통이라는 것을 함께 생각해 보세. 돈을 받는 사람은 돈을 받은 이상 싫어도 일을 해야 하지만, 나는 돈을 받지 않기 때문에 내가 싫어하는 자는 가르치지 않아도 되네. 음식만 해도, 음식을 정말 먹을 줄 아는 사람에게는 진미성찬이 필요가 없고, 약간의 허기를 유지하면 모든 음식을 항상 맛있게 먹을 수 있다네. 의복도 마찬가지야. 옷이란 더위와 추위를 막기 위해 갈아입는 것이고, 신발은 걸을 때 발이 편하도록 신는 것인데, 자네는 내가 추워서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고, 더위를 피해 누구와 나무 그늘을 다투며, 또 발이 아파서 마음대로 걷지 못하는 것을 본 적이라도 있는가? 신체를 튼튼히 단련하면 몽이 강해지고, 강한 사람은 어려움을 훨씬 용이하게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자네는 모르고 있는가? 그렇게 보면 식욕이나 환락의 노예는 자네이지 내가 아닐세. 나는 실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란 말일세."

이제까지 숨을 죽이며 노스승의 반론을 듣고 있던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안도하는 마음과 기쁨으로 손뼉을 쳤다. 잠시 후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은 말로 안티폰의 발걸음을 완전히 돌려 세웠다.

"안티폰, 자네는 행복이란 사치와 호사인 줄로 알고 있는데, 나는 욕심이 없으면 신과 똑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세. 그리고 욕심이 가장 적을 때 신에 가장 가까운 법일세. 신은 지고의 선인데, 그 지고의 선에 가까운 것은 그대의 모습이 아니라 나의 가난한 모습일 걸세."
사용처 1. 20111002 Haanul.
자기가 필요해서 옷을 입는 사람은
옷 한두 벌로도 충분하지만
남에게 보이기 위해 옷을 입는 사람은
옷이 백 벌 있어도 부족합니다.
전자는 자기 안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고
후자는 남에게 행복을 구걸하는 사람입니다.
전자는 자기 한 사람의 뜻만 따르면 되니
자신이 곧 노예이면서 주인이지만,
후자는 수많은 사람의 눈치를 살펴야 하니
수많은 사람의 노예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야기마을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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