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_btn

"어찌 나를 이길 수 있겠느냐"

by 마을지기 posted May 30, 2005
Extra Form
보일날 2005-06-14
출처 정병헌 이지영 편, 《우리 선비들은 사랑과 우정을 어떻게 나누었을까》(사군자, 2005), 73쪽
책본문 유생(兪生) 아무개가 있었다. 나이는 40세를 넘겼는데 아무런 이름도 이루지 못하고 뜻을 이루지 못해 항상 우울했다.

하루는 그가 외출했다가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을 만났다. 벽제(僻除) 소리를 내며 자기 쪽으로 오는 것을 보니 시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생은 어쩔 줄을 몰라 몸을 담장 밑에 숨기고 행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귀인은 젊었을 때의 자기 친구였다. 그가 탄식하며 말했다.

"나와 저는 다 같은 문벌에서 태어났는데 재덕(才德)과 명위(名位)가 왜 이렇게 다르단 말인가. 저 사람은 저렇듯이 영화롭게 되고, 나는 이렇게 궁하게 지낸단 말인가."

그는 분함을 참지 못하고 한참 있더니, 자기 분을 풀면서 이렇게 스스로 위안하였다.

"그러나 지금 세상에 아내 사랑하기를 나만큼 하는 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제가 아무리 벼슬이 높다고 하겠지만, 제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어찌 나를 이길 수 있겠느냐."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이 허리를 잡고 웃었다.

-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說) 권 16, 〈언어부〉(言語部)에 실려 있는 이야기 -
사용처 1. 20080608 일 구미안디옥교회 주일예배.
1. 20101027 미즈내일.
옛날 사람들이, 남자가
아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면
팔불출이라 해서 웃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비들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말하기를 즐겼으니
겉으로만 그런 셈입니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유 선생의 말이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데 일등인지,
출세한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는 데 일등인지
그게 분명치 않아 사람들이 웃었을 겁니다.

이야기마을 옹달샘

전대환의 책 이야기

List of Articles
번호 보일날 제목 조회 수
57 2003-08-15 인생의 일곱 단계 1886
56 2003-12-10 하나님의 아이들 1880
55 2003-11-10 기도 1870
54 2003-10-16 함께 먹기 1864
53 2003-10-18 자루 1863
52 2003-10-12 살 것이냐 죽을 것이냐 1861
51 2003-11-13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1860
50 2004-01-06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 1858
49 2003-08-22 혼자보다는 둘이 더 낫다 1858
48 2003-10-27 밥알 하나가 버려지면 1853
47 2003-11-14 의로운 판사님 1851
46 2003-08-24 세상의 많은 어머니시여! 1851
45 2003-12-21 맛을 내는 박테리아 1850
44 2003-12-29 사랑할 때의 마음가짐 1841
43 2003-10-30 하나님과의 담판 1840
42 2003-11-26 아버지의 친구 1839
41 2003-11-24 꿀벌의 날갯짓 1838
40 2003-08-20 허술한 지붕에서 비가 샌다 1837
39 2004-01-16 때묻지 않은 민족 1836
38 2003-08-21 하고 싶은 일을 하자 183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75 76 77 78 79 80 81 82 83 84 Next
/ 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