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_btn

석양 대통령

by 마을지기 posted Jun 29, 2005
Extra Form
보일날 2005-07-04
출처 신동엽(최성수 편), 《선생님과 함께 읽는 신동엽》(실천문학, 2004), 78-79쪽
책본문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됫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데거 러셀 헤밍웨이 장자(莊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 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갯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트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 기지도 탱크 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 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 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 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톳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신동엽의 시 〈산문시 1〉 전문)
사용처 1. 20050703 안디옥교회.
2. 20110101 twt.
3. 20110102 일 한울교회 주일예배 설교.
4. 20121206 twt, fb.
5. 20150517 일 한울교회 주일예배 설교.
6. 20191020 일 한울교회 주일예배 설교.

신동엽 시인이 38살 되던
1968년에 쓴 〈산문시1〉입니다.

딸 아이 데리고 칫솔 사러
퇴근 후에 백화점에 나오는 대통령,
자전거 뒤에 소주 한 병 달고
시인의 집에 놀러 가는 대통령,

지식인들이 광부 노릇하기를
전혀 주저하지 않는 나라,
국무총리가 휴가를 가도 누구 하나
요란 떠는 사람이 없는 나라….

머지 않은 장래에 찾아올
우리나라의 모습이면 좋겠습니다.


이야기마을 옹달샘

전대환의 책 이야기

List of Articles
번호 보일날 제목 조회 수
617 2005-05-20 농부의 꾀 2756
616 2004-09-04 승리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 2756
615 2005-08-10 어머니의 새벽 나들이 2755
614 2005-01-13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 2755
613 2005-06-13 벗을 사귈 때의 맹세 2754
612 2008-11-10 쓸데없이 태어난 건 없다! 2754
611 2008-12-30 목이 좋으면 돌도 구워 판다 2752
610 2005-08-16 서울 2751
609 2005-04-27 한 마리 새앙쥐의 기적 2749
608 2005-04-25 생각이 그대를 만든다 2749
607 2008-11-13 지지 받는 남편 2748
606 2005-03-08 지혜와 술수 2745
605 2005-12-21 남자를 부엌일에 동참시키려면 2744
604 2005-02-02 현재형의 목표를 가지자 2741
603 2005-04-21 이상형 2740
602 2005-12-27 가족과 함께 2740
601 2005-07-23 월남 선생의 응접실 2739
600 2005-12-17 멋진 만남이 다가오고 있다! 2739
599 2005-02-23 먹는 일의 거룩함 2737
598 2005-01-14 영원한 것과 유한한 것 273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 ... 84 Next
/ 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