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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선생의 응접실

by 마을지기 posted May 2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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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날 2005-07-23
출처 정동주, 《소나무》(기획출판 거름, 2000), 46-47쪽
책본문 일본인 오자키 유키오가 월남 이상재 선생을 찾아왔습니다. 오자키는 일본의 저명한 정치가로서 일본 '의회정치의 아버지'로 불렸고 25번이나 중의원 의원을 지낸, 당시 일본정가의 양심으로도 통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오자키는 당시 한국의 민족지도자들을 두루 방문하던 중 월남 선생을 만나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으레 월남 선생을 요정으로 초청했지만 선생은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시 사람을 보내 요정으로 초청한 일을 사과하면서 월남 선생 집으로 찾아뵙겠으니 허락해 달라고 했습니다. 선생은 그제야 승낙하셨지요.

오자키는 정해진 시간에 통역만 데리고 걸어서 가회동 언덕에 있는 선생의 납작한 초가집을 방문했습니다. 월남 선생은 그 때 일흔을 넘긴 백발이었습니다. 문간까지 나와 손님을 맞은 선생은 손님을 마당에 세워 놓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잠시 뒤 헌 돗자리 한 장을 말아서 팔에 끼고 나오며 말씀하셨습니다.

"자, 우리 응접실로 갑시다."

선생은 돗자리를 말아 들고 앞장을 섰지요. 집 뒤에 있는 산으로 올라가면서 손님을 돌아보았습니다.

한참 올라가자 아름드리 솔 한 그루가 보였지요. 소나무 아래엔 널찍한 바위도 있었고요. 선생은 솔 그늘 진 너럭바위 위에 돗자리를 폈습니다. 통역과 손님을 나란히 앉게 하고 선생은 아름드리 솔을 등진 채 꼿꼿이 앉았습니다. 두 사람의 얘기는 여러 시간 격의 없이 오갔습니다. 그 때 선생은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공동의 적인 일본과 투쟁할 것을 목표로 신간회를 조직하려던 한국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어른이셨습니다.

오자키는 일본에 돌아가서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조선에 가서 무서운 영감을 만났다. 돈이든 영예든 현실적인 이익에는 꿈쩍도 않는 지독한 민족주의자였다. 무엇보다 그가 나를 데려간 뒷동산의 몇 아름 되어 보이는 소나무 밑에 꼿꼿이 앉아서 일본의 침략을 꾸짖는 그의 모습은 한 마디로 존경스러웠다. 그는 세속적인 인간이 아니라 몇 백 년 된 소나무와 한 몸인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갈수록 그가 나를 그곳으로 데려간 목적에 짓눌리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사용처 1. 20130601 토 흥해제일교회, 백낙원 목사 출판감사예배 설교.
돈이든 영예든,
현실적인 이익에는 꿈쩍도 않고
오로지 민족과 나라를 위하여
꿋꿋함을 잃지 않은 선생의 의기는
뒷동산의 몇 아름 되는
소나무의 기상과 잘 어울립니다.

돈이든 영예든,
현실적인 이익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오로지 자신의 안일만 위하여
민족를 헌 신짝처럼 여기는 이들의 욕심은
추하기가 이를 데가 없는
아귀(餓鬼)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야기마을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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