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_btn

여자의 삶을 아시나요?

by 마을지기 posted Jan 21, 2018
Extra Form
성서본문 열왕기하 4:1
설교일 2018-01-21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가정

[오디오파일 듣기/내려받기]

 

성서 본문

 

예언자 수련생들의 아내 가운데서 남편을 잃은 어느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으며 호소하였다. “예언자님의 종인 저의 남편이 죽었습니다. 예언자님께서도 아시다시피 그는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빚을 준 사람이 와서, 저의 두 아들을 자기의 노예로 삼으려고 데려가려 합니다.”

 

열왕기하 4:1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도 하나님의 집에 나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이곳을 찾을 때마다 축복이 넘치기를 바라고, 이곳에서 말씀을 듣고 교제를 나눔으로써 여러분의 영혼이 평안하게 되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이 잘 될 뿐만 아니라, 몸도 마음도 모두 건강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총회가 정한 여신도주일입니다. 그래서 여성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잠깐 하려고 합니다.

 

두 번 태어났어요!

 

우리의 인생은 참 짧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명이 많이 늘어나서 옛날 사람들보다 배나 더 오래 삽니다. 그러나 즐거움의 시간이 늘어났는가, 생각해보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굉장히 길어졌지만, 여전히 인생은 짧습니다. 참다운 인생을 맛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갑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사람은 두 번 태어납니다. 한 번은 인간이라는 종으로 태어나고, 또 한 번은 여자로 태어납니다. 장 자크 루소(이환 역/이환 편), 에밀(돋을새김, 2015), 전자책 410/702. 처음 태어났을 때 우리는 모두 아이였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가 사춘기가 지남으로써 비로소 여자와 남자로 나누입니다. 2의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여러분, 남자로 사는 것과 여자로 사는 것, 이 둘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행복하겠습니까? 그리스 신화에는 셀 수도 없는 신들이 등장하는데, 거기서 주신(主神)은 제우스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그리스에서 기적을 행하니까, 그리스 사람들이 바울 보고는 헤르메스라고 하고 바나바 보고는 제우스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 앞에 제물을 가지고 와서 제사까지 지내려고 했습니다(사도행전 14:12-13). 어쨌든, 제우스가 어떤 신을 인간 세상에 보내서, 여자로 사는 게 더 좋은지 남자로 사는 게 더 좋은지를 알아보게 했습니다. 그 신은 여자와 남자의 몸속에 번갈아 들어가서 각각 하루씩 머물렀습니다. 그 신은 제우스에게 돌아와서 여자로 사는 게 낫다고 보고했습니다. 여자가 느끼는 쾌감이 남자의 쾌감보다 아홉 배나 강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이세욱 역), ()(주식회사 열린책들, 2005), 545. 그만큼 여자가 섬세하고 감각에 예민하다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행복을 더 많이 누리려면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좋다, 그런 말인데, 그게 사람 마음대로 됩니까? 이미 남자로 태어났다면 좀 더 여성스러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남편이 죽었어요!

 

이렇게 말하면 여성들 가운데서는 말도 안 된다고, 반대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세상에 여자로 사는 게 얼마나 힘 드는지 아느냐고, 세상이 얼마나 남자 위주로 되어 있는지 아느냐고 항의할 것입니다. 옳습니다. 그러나 제 말은, 세상이 공정하고 상식적이라면 그렇지 않을까 하는 뜻입니다. 세상은 여성에게 매우 불리한 게 사실입니다. 역사를 봐도 여성은 남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고통을 겪어 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구약성경 열왕기하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언자 수련생들의 아내 가운데에 이름 모르는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만 남편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 여자가, 남편의 스승인 엘리사에게 부르짖으며 호소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제자인 제 남편이 죽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아시다시피 그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죽자, 빚을 준 사람이 와서 저의 두 아들을 데려가서 자기의 노예로 삼으려고 합니다.” 혼자 남은 이 여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즘 같으면 정부에 도움을 요청한다든지, 힘겹지만 나가서 일을 한다든지, 어떻게 방법을 찾아볼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남자는 아내가 죽어도 새 여자를 얻어서 살면 되지만, 여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길은 있습니다. 힘겨운 현실보다도 훨씬 더 무서운 것이 희망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이 여자도, 엘리사의 도움을 힘입어서 다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포기하면 안 됩니다. 낙심하면 안 됩니다. 며칠 전에 아는 사람이 들려준 이야기인데요, 어느 날 공원에 앉아 있는데, 그 옆에 여든 세 살 된 할머니가 함께 있었답니다. 그때 또 다른 할머니가 지나가다가 합류했습니다. “올해 연세가 얼마입니까?” “아흔 다섯이오.” “댁은 얼마요?” “여든 셋입니다.” “아이고, 아직 한창 때네요. 참 좋은 나이입니다.” 그러더니 연세 많은 노인이 자기 보고 그러더랍니다. “이봐요, 젊은이. 문제는 말이오. 이 사람은 자기가 한창 때인 것을 전혀 모른다는 거예요.”

 

방법이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 형편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인생이 가장 고약하게 꼬였다고 생각합니다. 조금만 나이가 들어도, 이제 나이가 많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흔 다섯 된 노인이 보기에 여든 셋이면 얼마나 젊습니까? 구미에 있는 어떤 배드민턴 클럽에 여든 된 노인이 열심히 나와서 운동을 한답니다. 그 할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적어도 70세는 배드민턴을 배웠어야 했어.” 나이 들어서 배우려니까 힘이 든다는 뜻이지요. 이게 무엇을 말합니까? 나이 들었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살다가 사정이 어렵게 됐다고 낙심하면 안 됩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보다 기구한 팔자를 가진 여자가 어디 있습니까? 어느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랍비가 마리아에게 말합니다. “당신 아들은 예언자가 되어서 세상을 구원하게 될 거요.” 그때 마리아가 말합니다. “랍비님, 안 됩니다. 제발 저 좀 봐주세요. 저는 제 아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다른 모든 아이들하고 똑같이 자리면 좋겠습니다. 그 애는 점잖은 집안에서 태어나서 자란 딸, 착하고 젊은 여자와 결혼해야 돼요. 지참금을 가져올 여자라면 더 좋고요. 그 아이는 풍족한 살림을 꾸려 나가면서 자식을 여럿 낳아서, 나와 아이들과 손자들이 다 함께 토요일마다 춤을 추러 가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안정효 역), 최후의 유혹()(주식회사 열린책들, 2014), 160쪽에서 편집. 그러나 그게 이루어졌습니까? 예수는 젊어서 집을 나갔고, 오랜만에 찾아갔더니 누가 내 어머니입니까?” 이런 소리나 합니다. 그러더니 나이 서른에 십자가에 달려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마이라는 범상치 않은 여자였습니다. 아들이 뱃속에 있을 때부터 다 클 때까지, 아니 죽을 때까지 마리아는 아들을 믿었습니다.

 

맺는 이야기

 

가나라는 동네에서 잔치가 열렸습니다. 마리아가 일을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술이 떨어져서 곤란해졌을 때 마리아가 일꾼들에게 말했습니다. “보세요. 내 아들에게 가보세요. 그리고 시키는 대로 하세요.” 이처럼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마리아는 언제나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게 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희망을 잃지 않고 건강하고 복되게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설교일 설교구분 제목 성서본문 조회 수
860 2007-05-13 가정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요한복음서 10:7-15 8838
859 2008-03-23 부활절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시편 118:15-20 8812
858 2007-03-04 기념주일 벌거벗은 이사야 이사야서 20:1-6 8707
857 2008-05-04 기념주일 사무엘처럼 사무엘기상 2:18-21 8546
856 2007-08-19 기념주일 안디옥 공동체 마태복음서 5:13-16 8452
855 2008-03-16 사순절 주님의 문 시편 24:7-10 8369
854 2006-12-25 성탄절 아기야, 칼이 되어라! 누가복음서 2:33-35 8233
853 2007-05-27 오순절 성령의 언어 사도행전 2:4-13 8213
852 2007-05-06 가정 왜 어린이를 복되다 하는가? 마가복음서 10:13-16 8207
851 2007-01-07 송구영신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 이사야서 40:27-31 8188
850 2007-10-28 기념주일 우상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15:1-4 8151
849 2007-12-02 대림절 내가 이 일을 지체 없이 이루겠다! 이사야서 60:15-22 7978
848 2008-06-22 기념주일 우리 가운데에 하나님의 나라를! 누가복음서 17:20-21 7964
847 2007-12-23 대림절 희망 전도사 이사야서 40:1-11 7961
846 2008-04-20 기념주일 그리스도의 사람 로마서 8:1-11 7891
845 2008-01-06 송구영신 온 생명을 충만케 해주십시오! 요한3서 1:2 7812
844 2007-08-12 기념주일 합심하여 무슨 일이든지 구하면 마태복음서 18:15-20 7743
843 2008-05-11 가정 믿음의 어머니들 사무엘기상 1:19-28 7734
842 2006-12-03 대림절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 사도행전 3:1-10 7702
841 2007-11-18 감사절 이렇듯 한해를 영광스럽게 꾸미시니 시편 65:9-13 766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3 Next
/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