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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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마태복음서 5:9 
설교일 2019-01-06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송구영신 

성서 본문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

 

마태복음서 5:9

 

들어가는 이야기

 

며칠 동안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하는 인사를 많이 듣고, 많이 하셨지요? 영어로는 “Happy New Year!”라고 하지요. 행복한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이것에 비해서 우리 식의,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는 조금 더 구체적입니다. 복덩이가 막 굴러들어올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그런데 저는 복 많이 받으세요!”보다 복 많이 지으세요!”가 더 좋습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수동적이지만, 복을 짓는다는 것은 능동적이기 때문입니다. 남이 주는 복을 받기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복을 지어서 남들에게 듬뿍듬뿍 나누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새해에는 여러분이 복의 근원이 되어서, 더 많은 복을 지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올해 2019년의 우리 교회의 기도 제목은 평화의 씨앗이 되게 해주십시오!”입니다. 그렇다면 우선 평화가 무엇인지, 알아보아야겠지요. 그 답은 이사야서 61:1-2에 있습니다.

 

무엇이 평화인가?

 

예수님을 평화의 왕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평화를 위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를 위해서, 그리고 사람과 자연 사이의 평화를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소명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한 것이 이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회당에서 직접 읽어주기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주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평화, 그러면 우리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조용한 상태, 서로 부딪침이 없는 상태를 상상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 의문이 생깁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첫째 사명입니다. 세상에 밥이 무진장 나오는 것이 아니잖아요. 재화 곧 재산이라는 것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땅 한 평 없는 가난한 사람에게 집이라도 한 채 가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땅 많이 가진 사람의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게 조용하게 되나요? 혁명이 일어나야 될 일입니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에요. 상한 마음을 싸매어준다고 했지요. 마음 상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한 놈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놈은 가만히 두고 마음 상한 사람한테만 괜찮아, 괜찮아!’ 하면 괜찮아집니까? 가해자를 잡아 족쳐야 마음이 풀릴 겁니다.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한다고 했어요. 포로는 누가 수용하고 있습니까? 전쟁에서 승리한 쪽이지요. 그 포로를 풀어주려면 전쟁에서 승리한 쪽을 박살내야 됩니다. 그리고 갇힌 사람을 풀어준다고 했지요. 죄 없는 사람을 잡아가둔 원흉을 감옥에 쳐 넣어야 그 일이 가능해집니다.

 

칼을 주러 오신 예수님

 

이렇게 하나하나 짚어보니까, 이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그 날을 보복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보복의 날, 복수의 날,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일을 하려고 오셨어요. 하얀 옷을 입고 가만히 앉아서 얌전만 떨려고 오신 분이 아닙니다. 무서워요. 마태복음서 10:34 말씀입니다.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 한 점, 한 획, 그대로 이해가 되시지요.

 

나이 많은 예언자 시므온이 아기 예수님을 안고 마리아에게 말했습니다(누가복음서 2:35). 칼이 당신의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 이 아이가 칼이 되어서 번번이 당신을 찌를 것이고, 그때마다 당신은 깜짝깜짝 놀라게 될 것이오, 그 말입니다. 실제로 그랬지요. 마리아는 평화를 이루려고 동분서주하시는 예수 때문에 심장 떨어질 뻔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예전에 문화부장관을 지냈던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꽃은 평화의 상징이 아니라 비생명적인 모든 것에 대한 저항의 언어이다. 빛깔을 갖는다는 것, 대지가 잿빛으로 바뀌어 갈 때 하나의 빛깔을 갖는다는 것, 그것은 사치가 아니라 죽음을 거역하는 장렬한 투쟁이다. 매연의 악취 속에서도 향기를 내뿜는다는 것은 눈물겹기까지 한 생명의 데몬스트레이션이다. 꽃은 허식이 아니다. 부지런한 뿌리의 노동 속에서 가꾸어진 땀의 결정이다. 딱딱한 돌과 음흉한 땅벌레들을 피해 맑은 수분을 퍼올리고 거친 흙더미에서 양분을 획득한 그 슬기의 깃발이다.” 이어령(李御寧), (문학세계사, 1988), 30. 꽃을 평화의 상징이라고 하지만, 그 평화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입니다.

 

평화를 만드는 예술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괭이로 땅을 파 엎어야 합니다. 땅이 만일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때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 상처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입이 있다면 비명을 지를 것입니다. 싹이 틀 때 생기는 설렘과 꽃이 필 때 느끼는 기쁨과 결실할 때 얻는 보람은 훨씬 나중에 찾아오는 보상입니다. 빅토르 위고(베스트트랜스 역), 레미제라블 한영합본(10)(더클래식, 2012), 전자책 1944/9701쪽 참고. 이렇듯,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저항이 필요합니다. 투쟁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피 흘리는 일도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왜 비범한지, 왜 위대한지 아십니까? 평화를 이루기 위한 칼끝을 남을 향하여 휘두른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하도록 방향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싸움을 할 때 칼은 누가 씁니까? 무사(武士)들이 쓰지요. ‘무사’()라는 한자어를 뜯어보면 창 ’() 자에 멈출 ’() 자로 되어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진정한 ’()라는 것은 흉도(凶刀)를 쳐들고서 난을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창()을 멈추게() 하는 것이 무입니다. 야마오카 소하치(박재희 등 역), 대망 7 도쿠가와 이에야스(동서문화사, 2012), 전자책 1289/1718쪽 참고. 참 무사는 칼을 남에게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라, 칼과 창을 멈추게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부자들을 찔러야 했습니다. 상한 마음을 싸매어주기 위해서 가해자를 도륙내야 했습니다. 포로를 석방시키기 위해서 피를 더 많이 흘려야 했습니다. 갇힌 사람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감옥을 부수고 간수를 죽여야 했습니다. 이게 보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평화를 이루기 위한 피를 스스로 흘리셨습니다. 조용하게 평화의 왕이 되셨습니다.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작가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승리를 확신하는 정의는 난폭해질 필요가 전혀 없다.” 빅토르 위고(베스트트랜스 역), 레 미제라블 한영합본(10)(더클래식, 2012), 전자책 2393/9701. 하나님의 의를 이 땅에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난폭해질 필요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맺는 이야기

 

사랑은 화를 내지 않습니다. 오래 참습니다. 무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친절합니다(고린도전서 13). 이것이, 칼이 아니라 사랑으로 평화를 만들어내는 예술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복과 저주 가운데서 복을 선택하는 일입니다(신명기 11:26). 우리 모두 평화의 씨앗이 됩시다. 아프더라도, 상처를 받더라도, 예수님 안에서,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인내하면 평화의 열매는 반드시 열립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런 평화의 씨앗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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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2 한 몸이기에
1091 가을 밤 외로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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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2 행복해지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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