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전대환 채널 바로가기

성서본문 누가복음서 7:31-32 
설교일 2020-05-17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기념주일 

성서 본문

 

그러니, 이 세대 사람을 무엇에 비길까?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그들은 마치 어린이들이 장터에 앉아서, 서로 부르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희에게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하는 것과 같다.

 

누가복음서 7:31-32

 

들어가는 이야기

 

서울의 클럽들을 통해서 또 다시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그래도 그 전파속도가 폭발적이지는 않아서 천만다행이기는 합니다. 여기서 다시 진정국면으로 들어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도 교회에 나와서, 또는 인터넷을 통해서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 위에 하늘의 은혜와 땅의 축복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정을 듣기 전

 

꽤 오래 전 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목사님들이 가끔 예화로 사용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무대는 뉴욕의 어느 지하철 안입니다. 때는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열차 안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신문을 보는 사람도 있고,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는 사람도 있고, 앉아서 졸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느 역에서 30대쯤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아이들을 데리고 탔습니다. 갑자기 열차 안이 시끄러워졌습니다. 남자가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대여섯 살쯤 되었을까요, 그런 아이들이 소란을 피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고함을 지르면서 뛰어다닙니다. 그러는 와중에 누군가의 팔을 쳐서 읽고 있던 신문을 떨어뜨리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승객들의 표정은 일그러졌겠지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이들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마땅히 아이들을 말려야 할 텐데, 이 사람은 가만히 눈만 감고 있었습니다. 보다 못한 승객 한 사람이 다가와서 조용히 말했습니다. “선생님, 실례합니다. 댁의 아이들이 너무 소란을 피워서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있습니다. 조용히 있도록 좀 타일러 주시겠습니까?”

 

아이 아버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들고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말씀이 옳습니다. 아이들을 단속해야 하는데, 제가 그만 잠시 정신을 놓고 있었습니다. 지금 아이들과 저는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입니다. 한 시간 전에 아이들 엄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말을 꺼냈던 사람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남자의 고통이 자기 가슴에도 느껴졌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선생님의 상황을 살피지 못했습니다. 뭐 도와 드릴 것이라도 없을까요?” 다른 승객들도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렇듯, 알고 보면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하지요. 우리가 그렇습니다. 어떤 현상을 보고, 또는 남의 이야기나 뉴스를 듣고 화를 내는 일이 많습니다. 욕도 합니다. 그러나 사정을 듣고 나면, 아하,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요. 세상일이라는 게, 아무리 큰일이라도 모르면 남의 일입니다. 그렇지만 알고 나면 대부분 공감이 됩니다.

 

공감 능력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상황을 직면해서 공감을 표시하는 것을 정서적 공감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사정을 알고 나서야 공감이 되는 경우, 이것은 인지적 공감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요, 그 비율은 2:8 정도라고 합니다. 정서적 공감이 2, 인지적 공감이 8입니다.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공감이 안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말이지요.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내용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효도가 뭐냐, 효도란 부모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그랬지요? 부모는 한 세대 위인 사람들 아닙니까? 자기보다 최소한 스무 살에서 서른 살이 더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부모의 마음을 읽고 거기에 공감할 수 있다면, 다름 사람들의 마음도 잘 읽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고도 했습니다. 소비자의 마음을 잘 읽어야 사업가로 성공할 수 있고, 국민의 마음을 잘 읽어야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말, 동의하시지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일, 그것을 공감능력이라고 합니다. 공감능력을 가지는 것, 이것은 인품만 키워주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우리 삶에 크게 도움을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공감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공감은 영어로 심퍼시’(sympathy)라고 합니다. 그리스어에서 온 말인데요, ‘파테인이 합쳐진 말입니다. ‘’(sounsym)함께라는 뜻이고, ‘파테인’(patheinpathy)고통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공감이란 함께 고통을 겪는 것을 말합니다. 그 사람의 고통을 내가 느낄 수 있다, 그러면 공감능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람입니다. 공감능력도 일종의 스펙입니다. 요즘 사람들, 스펙 좋아하잖아요. 반드시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르면 공감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호세아서 6:3에서 호세아는 이렇게 호소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자. 애써 주님을 알자.”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야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려면 부모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 충성하려면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하셨는데, 이웃을 사랑하려면 이웃의 마음, 이웃의 고통을 읽어야 합니다.

 

그날, 40년 전

 

올해가 광주항쟁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80518일 그날은 주일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대학 3학년이었습니다. 그날 아침 저는 서울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교회에 가다가 라디오에서 광주 소식을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광주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났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야 드러났습니다만 그건 단순한 소요사태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전두환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유력 정치인들을 모조리 가두었습니다. 그렇게 해놓고 나라를 통째로 들어먹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폭거에 항거해서 광주에서 민중항쟁이 일어난 겁니다. 광주는 완전히 봉쇄됐습니다. 밖에서 광주로 들어갈 수도 없었고, 거기서 밖으로 나올 수도 없었습니다. 전화도 끊어졌습니다. 광주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광주 사람들 말고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뒤에 밝혀진 일입니다만, 광주 시민들이 어쩌다 보니까 광주를 장악한 것입니다. 글쎄요, 그게 작전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처음에는 계엄군도 그렇게 포악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사람들은 광주를 해방 광주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시민군이 광주를 장악하고 있는 동안, 도시가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광주에서는 매점매석이 한 건도 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사재기를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총기가 수천 점이 풀려 있었지만 광주에서 강도 사건이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시민군들이 실탄을 장전해서 들고 다니고 수류탄을 차고 다녔지만 총기 사건이 한 건도 없었습니다. 가게가 털렸다는 데도 없습니다. 딱 두 곳만 불탔습니다. 방송국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기들이 두 눈으로 똑똑히 상황을 보고 있는데 TV에서 가짜뉴스를 버젓이 내보내는 거예요. 그래서 KBS하고 MBC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밖에는 파괴된 곳이 없습니다. 한홍구, 특강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한겨레출판(), 2009), 356. 저는 당시 광주 사정을 비교적 잘 알고 있습니다. 1980년 당시에도 광주에서 올라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요, 그 뒤에도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터무니없는 소문들도 많았습니다. 경상도 사람이 경상도 번호판을 단 차를 타고 광주에 가면 기름도 안 넣어준다더라, 김대중 만세를 불러야 상대를 해준다더라, 등등. 그러나 전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광주를 잘 모르는 분들에게 저는 늘 말합니다. 5.18을 전후해서 꼭 광주에 한번 다녀오시라고 권합니다. 저는 작년에도 망월동 5.18 기념식에 다녀왔습니다만, 이맘때쯤 광주에 가면요, 40년이나 지났지만 가슴이 미어집니다. 사랑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5월이 되면 광주에서는 한 집 건너 한 집씩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권합니다. 광주 5.18 현장에 다녀오십시오. 제주 4.3 현장에도 다녀오십시오. 또한 유족들의 이야기도 들으십시오. 그러면 공감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맺는 이야기

 

 

누가복음서 7:31-32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이 세대 사람을 무엇에 비길까?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그들은 마치 어린이들이 장터에 앉아서, 서로 부르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희에게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하는 것과 같다.” 이 시대 사람들이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한탄하셨습니다. 우리가 남의 사정을 잘 모르는 것, 남의 고통에 무관심한 것, 그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거기다가, 아픔에 절어 있는 사람들을 비난까지 하는 것은 차마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닙니다. 우리는 공감능력을 키워야 됩니다. 가만히 앉아서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열심히 찾아가야 합니다. 열심히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다른 사람들의 기쁨뿐만 아니라 아픔까지도 함께 나누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1101 양심을 깨끗하게 만드는 제물
1100 벌거숭이가 됩시다
1099 칼 이야기
1098 머리로 알기 vs 몸으로 알기
1097 예배와 봉사, 무엇이 먼저인가?
1096 고향으로 가자
1095 "애써 주님을 알자!"
1094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093 의로운 백성, 비틀거리는 백성
1092 생각에서 행동까지
1091 이슬처럼 내리는 은혜
1090 새내기들의 다짐
1089 하나님 어머니
1088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1087 주머니가 구멍난 까닭
1086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1085 노예로 살기, 주인으로 살기
1084 "너희를 구하여 내겠다!"
1083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1082 “신을 벗어라!”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