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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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갈라디아서 5:22-26 
설교일 2021-07-11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성서 본문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 우리는 잘난 체하거나 서로 노엽게 하거나 질투하거나 하지 않도록 합시다.

 

갈라디아서 5:22-26

 

들어가는 말씀

 

이제 좀 잠잠해지려나 기대했던 코로나바이러스가 다시 창궐하고 있지요? 작년 겨울 이후 지금이 최악의 상황인 것 같습니다. 촛불이 꺼질 때 보면 아주 잠깐 갑자기 불이 밝아지지요? 이것도 그런 현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코로나가 아무리 기를 써도 머지않아 우리는 일상을 되찾을 것입니다. 좀더 인내하면서 힘을 냄으로써 이른 시일 안에 우리 모두 새날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가운데서 선함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이 말씀이 우리가 읽는 새번역 성경에는 선함으로 되어 있지만, 개역 성경에는 양선’(良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질고 착하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공동번역 성경에는 선행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다 비슷한 말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선함의 열매를 맺어서 선하게, 곧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하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세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일관성

 

선하다는 것은 첫째, 일관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예수님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선하신 선생님!” 그랬더니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너는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마가복음서 10:18). 그러면 어째서 하나님이 선한 분이겠습니까? 예레미야서 33:11에 보니까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만군의 주님께 감사하여라! 진실로 주님은 선하시며, 진실로 그의 인자하심 영원히 변함이 없다.” 하나님이 왜 선하신가 하면, 그분의 인자하심이 영원히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일관성이지요. 시편에도 여러 차례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주님, 먼 옛날부터 변함 없이 베푸셨던, 주님의 긍휼하심과 한결 같은 사랑을 기억하여 주십시오”(시편 25:6).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님께서 친히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십시오. 마음이 정직한 사람에게는, 주님의 의를 변함없이 베풀어 주십시오”(시편 36:10). 한결같이, 변함없이, 이게 선이에요.

 

요즘에는 거의 안 쓰는 말입니다만, 옛날에 갈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몸 파는 여자를 욕할 때 부르는 말이지요. 그런데 그런 여자를 왜 갈보라고 했는가, 어원 풀이가 재미있습니다. 여기서 자는 간다는 말입니다. 갈아치운다, 체인지(change)’ 한다는 것이지요. 거기에다가 뚱보, 털보, 울보, 할 때의 그 뒷가지 ‘-를 붙여서 갈보라는 말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이놈 저놈 사내를 자주 바꾸기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되겠지요. 울보는 울기를 잘하고, 갈보는 갈기(바꾸기)를 잘한다, 그래서 갈보가 된 겁니다. 박갑천,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을유문화사, 1995), 20-21. 어디 여자만 그렇겠습니까? 줏대 없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남자들도 많지요. 하나님은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을 참 싫어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당신께서 일관성이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변함이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일관성이 없으면 아무리 제사를 잘 드려도 소용이 없다고 했습니다. 선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호세아서 6:6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 변함없는 사랑, 곧 일관성 있게 주님을 사랑하는 것, 그게 선한 것입니다.

 

자연스러움

 

선하다고 하는 것은, 두 번째로, 자연스러운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연발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참 보기 좋다는 것이지요. 자연스럽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순응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래전에 우리가 여름 수련회 때 안동 하회마을에 갔었지요. 하회마을의 이름이 왜 하회(河回)인가 하면, 말 그대로 그 마을 옆의 강이 굽이쳐 돌아 흐르기 때문입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이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선한 것인데, 자연스러움의 특징이 뭡니까? 표시가 안 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 배웠지요. 그래서 선행을 하려고 애쓰는데, 문제는 진정한 선행은 표시가 잘 안 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때로는 좀 아쉽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지요. 고대 로마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이 선행을 했으며, 또 다른 사람이 당신의 선행으로 혜택을 받았다면, 어찌하여 당신은 바보처럼 선행에 대한 찬사나 그에 대한 보답을 받고자 하는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김철곤 역), 아우렐리우스 명상록(민중출판사, 2005), 166.

 

예수님께서도, 선행을 할 때는 표시가 안 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너는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자선 행위를 숨겨두어라. 그리하면, 남모르게 숨어서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복음서 6:3-4). 실제로 표시 안 나게 선행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지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10여 년쯤 전에 이른바 국민 여동생이라고 불리던 배우가 있었습니다.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듣기로, 이 친구는, 그때까지 아무런 조건 없이 수십억 원을 선행하는 데 썼답니다. 표시 안 나게 하려고 무진장 애를 썼지만, 워낙 유명한 배우라 드러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알게 됐는데, 예수님께서는 남모르게 선행을 하라고 하셨잖아요? 왜 그러셨는가 하면 선행이란 것은 감출수록 커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

 

선한 것이 무엇인가, 그 세 번째 뜻은 아름다움입니다. 한자로 착할 ’() 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다 아시지요? 아름다울 ’() 자와 비슷합니다. 착할 자는 양 ’() 자 밑에 제단이 그려져 있고, 아름다울 자는 양 ’() 자 밑에 큰 ’() 자가 있습니다. 흔히, 아름다울 자를 해석하면서 양이 크다그래서 아름답다, 이렇게 말합니다만, 물론 양이 살지고 크면 좋기는 하겠지요. 그렇지만 그것보다는 자와 연결해서 생각하면 더 분명하게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자는 덩치가 크다는 뜻도 있지만, 원래는 어른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그러니까 양을 잡아서 어른에게 대접해드리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래서 아름다울 자가 된 것입니다. 착할 자도 비슷한 뜻인데, 이 글자는 양을 제단 위에 올려놓은 모습입니다. 양을 잡아서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 또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을 말하지요. 그게 진정한 선행이라는 것입니다. 불교에 보시’(普施)라는 말이 있습니다. ‘널리 베푼다는 뜻이지요. 흔히 무엇을 베푼다, 하면 물질을 베푸는 일을 생각하지만, 꼭 물질이 아니더라도 베풀 것은 많습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친절도 보시이고, 버스나 전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것도 보시이고, 남에게 웃는 얼굴을 보이는 것도 보시이고,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하는 것도 훌륭한 보시입니다.

 

여성들이 화장하는 것도 멋진 보시입니다. 가족에게 깔끔한 모습을 보이는 것, 얼마나 좋습니까? 밖에 나가서도 남들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면 그것도 훌륭한 보시이지요.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정말, 정말 아름다운 일은 어른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아름다운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 중에 가장 귀한 것은 예배지요. 그래서 우리가 예배에 힘쓰는 겁니다. 코로나가 창궐하는 이때도 예배를 중단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까? 다시 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 가장 선한 일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맺는 말씀

 

 

신명기 33:16에서 모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하신 주님께서 그들의 땅에 복을 베푸시니, 그 땅이 온갖 좋은 산물로 가득할 것이다.” 요셉 지파를 두고 축복한 말씀인데요, 하나님이 왜 선하신 분인가 하면 땅에 복을 베푸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선한 사람이 되려면 복을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복을 베풀면 좋을까요? 저는 오늘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일관성 있게 복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 그게 선한 일입니다. 둘째는 자연스럽게, 표시 안 나게 복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예배는 그 자체로 훌륭하게 복을 베푸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 일관성 있게, 자연스럽게, 아름답게 복을 베푸는, 주님의 선한 자녀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1101 내 인생 광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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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9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1098 벌거벗은 이사야
1097 사무엘처럼
1096 안디옥 공동체
1095 주님의 문
1094 아기야, 칼이 되어라!
1093 성령의 언어
1092 왜 어린이를 복되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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