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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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베드로전서 1:13-16 
설교일 2022-09-18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성서 본문

 

그러므로 여러분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정신을 차려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이 받을 은혜를 끝까지 바라고 있으십시오. 순종하는 자녀로서 여러분은 전에 모르고 좇았던 욕망을 따라 살지 말고, 여러분을 불러주신 그 거룩하신 분을 따라 모든 행실을 거룩하게 하십시오.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1:13-16>

 

들어가는 말씀

 

가을이 됐지만, 낮에는 꽤 덥지요? 지난 한 주간 동안 여러분 모두 별 탈은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오늘도 이 자리에서 기쁨으로 함께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 위에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땅의 큰 축복이 넘치도록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보니까 베드로전서의 저자는 모든 행실을 거룩하게 하십시오!” 하고 당부합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11:45, 46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거룩한 행실이란 어떤 것인가, 그 문제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러자면 거룩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데, 간단히 말하면 거룩한 삶이란 구별된 삶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들어가려고 하는 넓은 문이 아니라, 가려고 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삶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거룩한 삶이란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박한 삶

 

첫째, 거룩한 삶이란 자연과 가까운 소박한 삶입니다. 지난여름에도 어김없이 태풍이 지나갔고, 상처가 남았습니다. 태풍이나 홍수가 오면 가정 먼저 경험하는 피해가 정전입니다. 많은 사람이 혼란을 겪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을 겪으면서, 전기에 고마워해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도 하던데, 저는 그것보다는 사람이 만들어낸 과학과 문화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이고 때로는 위험한 것인가, 하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사람 손으로 이루어내는 일에는 언제든지 사고위험이 뒤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전력 확보를 위해서 원전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있지만, 지난번에 러시아의 체르노빌이나 일본의 예에서 보았듯이 그건 사고가 나면 그대로 재앙으로 이어집니다. 원자력이 대안이 될 수는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1:14에 보니까, 거룩한 삶에 반대되는 삶은 욕망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욕망을 버리면 거룩한 삶이 됩니다. 욕망 가운데 가장 큰 것은 풍요롭게 살고자 하는 욕망일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 조상들은 참 힘겹게 살았습니다. 부족하게 살았습니다. 불을 때서 밥을 했지요. 빨래도 냇가에 가지고 나가서 했습니다. 거기다가 들일과 밭일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청소도 전기, 밥도 전기, 빨래도 전기, 대부분의 일을 전기가 다 해주지요. 그렇다고 편리한 생활을 포기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쯤 됐으면 만족하고 살아야 하는데, 우리는 그걸 잘하지 못합니다. 자꾸 더 가지려고 하지요. 그러나 이제는 전기 없이도 살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좋습니다. 전기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어요. 요즘은 전기자동차 개발에 한창인데, 그것도 완벽한 대안은 아닙니다. 전기자동차를 타려면 충전을 해야 하는데, 전기가 하늘에서 그냥 내려오는 게 아니잖아요. 자연 친화적인 전력을 개발하지 않는 한, 전기를 만들려면 연료를 때야 하니까 여전히 문제는 남습니다. 원자력 말고, 이산화탄소 많이 배출하는 그런 방법도 말고, 다른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최소한의 전기만 쓰고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욕망을 줄여야 합니다. 그것이 거룩한 삶입니다.

 

치열한 삶

 

거룩한 삶이란, 두 번째로, 치열한 삶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지요. ‘너희는 꽃처럼 살아라!’ ‘너희는 새처럼 살아라!’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몸을 감싸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마태복음서 6:25). 그러면서 두 가지 예를 들어주셨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아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으나,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새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태복음서 6:26).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온갖 영화로 차려 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와 같이 잘 입지는 못하였다”(마태복음서 6:28-29).

 

이 말씀은 걱정하지 말고 살라는 맥락으로 하신 것인데, 그냥 먹고 놀라는 뜻이 아니라 욕심을 줄이라는 뜻입니다. 숲속에서 꽃이 어떤 고난을 겪으면서 견디는지, 새 한 마리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필사적으로 노력하는지, 그걸 배우라는 것이지요. 편하게 살려고 마음먹으면 몸은 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갇혀서 사육되는 닭이나 돼지 신세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능동적으로 살면 힘겨울 수는 있지만 그런 삶은 역동성이 넘칩니다. 주는 밥 얻어먹고 사는 대신에 묶이거나 갇혀서 사는 강아지가 될 것인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살아야 하지만 숲을 호령하는 늑대가 될 것인지, 그것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생각할 때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한 삶야생의 삶과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전기가 없어도 살 수 있고, 위험이 닥쳐와도 담대하게 헤쳐나갈 수 있는 주체적인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모두 야생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만, 야생성을 조금은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삶

 

세 번째, 남을 배려하는 삶이 거룩한 삶입니다. 그런데 거룩한 삶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었습니다. 사실 이 사람들은 거룩하게 살려고, 남들과 구별되게 살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꼭 예복을 입고 다녔습니다. 헌금생활 열심히 하는 것을 보이려고 헌금을 할 때는 남들이 보는 앞에서 폼나게예물을 바쳤습니다. 길거리에서나 어디서든 기도하는 것을 보이려고 힘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혼쭐이 났습니다. 이 사람들을 두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원하고, 장터에서 인사 받는 것과 회당에서 높은 자리와 잔치에서 윗자리를 좋아한다”(누가복음서 20:46). 그러나 이 사람들이 실제로는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는 사람들이었고, 기도를 하기는 하는데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17). 겉으로만 하는 사람들이었지요. 그래서 이 사람들은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한 행실이란 겉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정신은 겉모습으로 남들과 구별되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점에 있어서 구별되게 살라는 것입니다. 겉으로 거룩한 척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남이 보지 않더라도 진정으로 이웃을 배려하며 사는 것은 어렵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성경에서는 셀 수도 없이 남을 배려하며 살 것을 명령합니다. 그 가운데서 몇 가지만 들어보겠습니다. 레위기 19:14입니다. 듣지 못하는 사람을 저주해서는 안 된다. 눈이 먼 사람 앞에 걸려 넘어질 것을 놓아서는 안 된다. 너는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알아야 한다. 나는 주다.” 레위기 19:9-10입니다. 밭에서 난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에는, 밭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어들여서는 안 된다. 거두어들인 다음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도 안 된다. 포도를 딸 때에도 모조리 따서는 안 된다. 포도밭에 떨어진 포도도 주워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 신세인 외국 사람들이 줍게, 그것들을 남겨 두어야 한다.” 멋진 예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이 거룩한 사람이 아니라, 밭에서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 가난한 사람과 들짐승들을 위해서 이삭을 남겨 둘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정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맺는 이야기

 

 

미국에, 매일 통근열차를 타고 출근을 하는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열차 노선 중에 경사진 언덕을 오르는 곳이 있었는데, 여기를 지날 때면 열차의 속력이 떨어져서 철로 옆에 있는 어떤 집이 안까지 훤히 들여다보였습니다. 그 집에서 늙은 노인이 항상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 젊은이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매일 그 모습을 본 젊은이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서 노인의 이름과 주소를 알아내서 병이 회복되기를 기원하는 카드를 보냈습니다. 자신의 이름은 밝히지 않고 그저 날마다 언덕 철길을 통해 출근하는 한 젊은이가라고 써서 보냈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 날도 출근길에 젊은이는 그곳으로 눈길을 돌렸는데, 방은 비어있고 창가에는 램프가 켜져 있었습니다. 그 집 유리창에는 큰 글씨가 쓰인 종이가 한 장 붙어 있었습니다. “얼굴을 알 수 없는 그대에게 축복을!” - 십대도 행복할 수 있다중에서. 그 노인의 방이 비어 있는 것이, 노인이 죽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병이 나았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병이 나았다면 그보다 큰 다행은 없고, 설령 세상을 떠났다고 하더라도 행복하게 눈을 감았을 겁니다. 작지만 남을 배려하는 이 청년의 행동, 이 얼마나 거룩한 행실입니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저와 여러분이 늘 거룩한 행실을 몸에 달고 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PT1aUMFTY&feature=share&si=ELPmzJkDCLju2KnD5oyZM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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