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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 콤플렉스, 요한 콤플렉스

by 마을지기 posted Jun 2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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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마태복음서 14:1-12
설교일 2006-06-25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그 무렵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서, 자기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났다. 그 때문에 그가 이런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헤롯은 일찍이,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 때문에 요한을 붙잡아다가 묶어서,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그것은, 요한이 헤롯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롯은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민중이 두려워서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헤롯의 생일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서, 헤롯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헤롯은 그 소녀에게,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맹세로써 약속하였다.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말하였다.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이리로 가져다 주십시오.” 왕은 마음이 괴로웠지만, 이미 맹세를 하였고, 또 손님들이 보고 있는 앞이므로, 그렇게 해 주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보내서,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그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가져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그 시체를 거두어다가 장사 지내고 나서, 예수께 가서 알려드렸다.

(마태복음서 14:1-12)


■ 들어가는 말씀

요즘 방영되는 주말 드라마 가운데 비판을 많이 받는 것이 두 개 있는데, 혹시 보시는 분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는 KBS의 《소문난 칠 공주》이고, 또 하나는 SBS의 《하늘이시여》입니다. 상당히 파행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재수생 여학생이, 과외 선생인 대학생의 아이를 가져서 조기에 결혼을 한다는 내용도 있고…, 이건 칠 공주에 나오는 이야기지요. 그리고 하늘이시여, 이야기는 결혼하기 전에 한 남자와 사귀어서, 딸을 낳았는데, 결혼한 후에, 남편의 전처가 낳은 아들과 자기 딸을 결혼시키고, 자기는 남편과 사별한 후에, 전에 사귀던 남자와 재혼을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이 두 드라마가 요즘 상당히 비판을 많이 받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기는 가장 좋답니다. 온 가족이 보는 시간대에 저런 내용을 내보낼 수 있느냐, 하는 비판이지만, 그런 내용이 한 편으로는 상당히 솔깃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요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옛날에도 있었고, 또 옛날에도 사람들의 관심거리였습니다.

오늘 신약성서 본문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헤롯왕이 자기 친동생 빌립의 아내를 빼앗아서 데리고 살았습니다. 이 여자가 헤로디아인데, 이거 보통 여자가 아닙니다. 세례요한이 이 일을 알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입바른 소리를 했지요. 그래서 헤롯이 헤로디아의 말을 듣고 세례요한을 죽인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두 사람, 곧 헤롯과 요한의 이름을 따서 ‘헤롯 콤플렉스’와 ‘요한 콤플렉스’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콤플렉스’라는 말은 여러 가지로 쓰이는 말입니다. 가장 흔한 뜻으로는 ‘복합체’라는 말인데, 우리 구미에도 있는 ‘공단’을 말할 때 ‘Industrial Complex’라고 합니다. 그리고 심리학에서는 ‘열등감’을 콤플렉스라고도 합니다. 또 정신분석학에서 말할 때는, ‘고정관념’ ‘과도한 혐오’ ‘강박관념’ ‘이상심리’ 이런 뜻을 가집니다.

1. 헤롯 콤플렉스

먼저 ‘헤롯 콤플렉스’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자의든, 타의든, 죄의 굴레에 휘감겨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점점 더 깊은 죄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상태를 ‘헤롯 콤플렉스’라고 해보겠습니다. 전문가도 아니면서 함부로 말을 갖다 붙인다고, 심리학자들에게 혼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해를 돕기 위해 어쨌든 그렇게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헤롯이 어떤 인물입니까? 자기 친동생인 빌립의 아내를 빼앗아 자기 아내로 만든 ‘죄인’입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칩시다. 사람이라면 누구든 죄를 지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사람한테 있는 심각한 문제가 뭐냐 하면,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고, 은폐하려고 더 큰 죄를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그래, 나 죄인이다. 잘못했다.’ 이러면 문제가 더 커지지는 않았을 텐데, 자기 잘못을 지적하는 요한을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자기는 그럴 만한 배짱도 없으면서, 여자의 지시에 따라 그렇게 했습니다.

이것이 ‘죄의 굴레’입니다. 한 번 패배하는 것은 병가지상사이고, 한두 번 죄를 짓는 것은 대체로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죄가 죄를 키우고, 그 죄가 더 큰 죄를 낳게 하는 것은 용서 받기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분 십계명을 잘 아시지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일컫지 말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거를 대지 말라.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

‘헤롯 콤플렉스’ 상태에 있는 사람들도 이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여기에다가 몇 가지를 더 붙인다고 합니다. 제 11계명, ▶들키지 말라. 그게 안 통하면 제 12계명, ▶잡아떼라. 그것도 안 통하면 제 13계명, ▶무슨 수를 쓰든 은폐하라. 이렇게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제대로 됩니까? 자기 나름대로는 죄에서 어떻게 벗어나보려고 발버둥치지만, 이건 결코 성공하지 못합니다. 점점 죄만 커지고, 갈수록 사람만 추해집니다.

2. 요한 콤플렉스

그럼 ‘요한’ 콤플렉스는 뭐냐, 일종의 ‘결벽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이 어떤 인물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두고 “여자가 낳은 사람 중에 가장 큰 사람”이라고 평하셨습니다. 이 양반에게서는 ‘죄’가 될 만한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람 사는 동네를 떠나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옷도 지어 입지 않고, 짐승 가죽을 두르고 살았습니다. 밥도 해먹지 않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습니다. 그 사람 주변에는 여자들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온몸을 바쳤으니, 하나님 앞에서 그 누구도 요한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지 않으니 살인할 일도 없고, 재물을 탐낼 일도 없습니다. 간음할 일도 당연히 없습니다. 부모의 뜻대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으니 효자이기도 했습니다. 십계명 중에서 하나도 어길 일이 없습니다.

3.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우리는 세례요한과 같은 사람이 되자고 합니다. 저도 그렇게 설교한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자,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그렇게 살 수 있느냐, 이겁니다. 솔직히 저는 포기했습니다. ‘나는 세례요한과 같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두고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맬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저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세례요한의 발가락의 때만도 못한 사람이다.’

우리는 세례요한도 아니면서, 남들이 나를 세례요한처럼 인정해주기를 바랍니다. 세례요한처럼 살지도 못하면서, 남들이 나를 세례요한 보듯 보아 주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들 아닙니까? 이거 상당히 큰 착각입니다. 우리는 ‘요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요즘 ‘착한 여자 콤플렉스’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여자는 이러이러해야 한다,’ 하는 고정관념에 빠져, 요조숙녀라는 말을 듣지 못하고, 현모양처라는 말을 듣지 못하면 여자로서의 인생이 끝장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여자들이 많은데, 거기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착한 여자’이기 이전에 먼저 ‘인간’임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에게 ‘진정한 여우’가 되라고 충고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여자들이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하듯이, 사람이라면 ‘완벽한 사람’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착한 여자일 수도 없고, 완벽한 사람일 수도 없습니다. 세상 남자들은 착한 아내를 기대하고, 세상 여자들은 완벽한 남편을 기대합니다. 교인들은 완벽한 목사를 바라고, 목사는 완벽한 교인을 기대합니다. 자식들은 완벽한 부모를 기대하고, 부모는 자식을 완벽한 만능 재주꾼으로 키우려고 합니다. 이처럼 세상은 ‘완벽한’ 나를 기대하더라도, 나는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또 남에게도 그렇게 공표해야 합니다.

■ 맺는 말씀

자,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게 문제인데, 일단은 나는 완벽하지 못하다, 아니 완벽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성경 말씀에 대해서 일점일획도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했는데, 십계명에서 일점일획도 더하거나 뺄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꼭 지키라고 주신 계명이고, 어떻게 보면 선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부칙으로 거기다가 두어 가지를 덧붙였으면 합니다. ‘헤롯 콤플렉스’에 묶여 있는 사람들은 ▶들키지 말라. ▶잡아떼라. ▶무슨 수를 쓰든 은폐하라, 이렇게 덧붙이지만, 저는 죄인이 되더라도 인간다운 죄인이 되기 위해 이렇게 덧붙이겠습니다. 1에서 10계명까지는 그대로 두고, 제 11계명, ▶인정하라. 제 12계명, ▶책임지라. 이렇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세상에서 숨 쉬고 사는 한 죄를 짓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신혼을 지난 후에는 거의 부부싸움을 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지금도 몇 년에 한 번씩은 좀 다툽니다. 그렇다고 큰소리를 내면서 싸우는 것은 아닙니다만, ‘냉전’ 상태가 있지요. 전에는 그런 것을 잘 몰랐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니까, 한 번씩 부부간의 ‘냉각기’가 지나고 나면 몸에 이상 징후가 오는 것을 느낍니다. 그게 어디 혼자만 그렇겠습니까? 쌍방이 다 그렇겠지요. 이게 뭡니까? 미워하는 마음, 사랑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상대방의 건강을 해친다는 겁니다. 그게 수명을 단축하는 것이고, 제 명에 못 죽고 일찍 죽게 하는 것이 살인 아닙니까? 그러니까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은 살인하는 겁니다. 예수님 말씀이 틀린 데가 없어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은 간음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완벽한 효자 효녀가 있습니까? 우리 중에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일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 잇습니까? 우리 중에 재물에 욕심 없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여기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 죄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11계명과 12계명을 덧붙인 겁니다. 지금까지 죄를 지은 것을 고백하고, 앞으로도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 그것을 인정하자는 말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천하의 바울 같은 이도 이렇게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그냥 죄인이라는 것도 모자라, “나는 죄인의 괴수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죄에 대해서 책임질 일이 있다면 기꺼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사람 앞에 지은 죄는 사람에게 책임지고, 하나님 앞에 지은 죄는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용서를 해주고 말고는 전적으로 상대방 마음이니까, 용서 받을 것을 전제로 해서 죄를 짓는 것도 안 됩니다. 요즘 우리가 월드컵 축구에서 보듯이, 반칙을 해서 경고를 주면 경고를 받고, 퇴장 명령을 받았으면 책임을 지고 경기장에서 나와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 다윗도 죄를 지었습니다. 성군 히스기야도 죄를 지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도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자기 죄를 부인하거나 은폐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자기 죄를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책임질 것은 책임을 졌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도 죄인이었고, 앞으로도 죄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도, 그것에 대해 발뺌하고, 그 죄를 은폐하기 위해서 더 큰 죄를 짓는, ‘죄의 굴레’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사람 앞에서, 그리고 주님 앞에서 죄를 인정하고 책임질 줄 아는, ‘인간다운 신앙인’들이 될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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