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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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사도행전 3:1-10 
설교일 2006-12-03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대림절 


■ 성서 본문

오후 세 시의 기도 시간이 되어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올라가는데,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을 사람들이 떠메고 왔다. 그들은 성전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게 하려고, 이 못 걷는 사람을 날마다 '아름다운 문'이라는 성전 문 곁에 앉혀 놓았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 구걸을 하였다.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그를 눈여겨 보고, 그에게 말하였다. “우리를 보시오!” 그 못 걷는 사람은 무엇을 얻으려니 하고,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았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하고,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는 즉시 다리와 발목에 힘을 얻어서, 벌떡 일어나서 걸었다. 그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걸어다니는 것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고, 또 그가 아름다운 문 곁에 앉아 구걸하던 바로 그 사람임을 알고서, 그에게 일어난 일로 몹시 놀랐으며, 이상하게 여겼다.

(사도행전 3:1-10)


■ 들어가는 말씀

구약성경 신명기 16장 1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그 곳에서, 당신들과 당신들의 아들과 딸과 남종과 여종과, 성 안에서 같이 사는 레위 사람과 떠돌이와 고아와 과부까지도 함께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삼대 절기 중 하나인 칠칠절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하는 규정입니다.

오늘은 대림절 첫째 주일입니다. 오늘 촛불이 하나가 켜졌으니까, 앞으로 네 주면 성탄절이 옵니다. 성탄절이 되면 흔히 이른바 ‘불우이웃 돕기’라는 것을 하지요. 그런데 저는 이 ‘불우이웃 돕기’라는 말이 썩 좋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불우이웃’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도와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할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에 그랬지 않아요? 성경에서 말하는 불우이웃은 떠돌이와 고아와 과부와 레위인입니다.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요즘 말로 하자면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입니다. 장애인도 여기에 속하겠지요. 성경에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칠칠절 하면 당시에 상당히 큰 잔치였는데, 잔치 때, 이 불우이웃들에게 입다 남은 옷을 갖다 주고, 먹다 남은 음식을 갖다 주라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당신들과 당신들의 아들과 딸과 남종과 여종과, 성 안에서 같이 사는 레위 사람과 떠돌이와 고아와 과부까지도 함께” 주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정답입니다.

■ 1. 성전에서 일어난 기적

신명기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지시한 것처럼, 힘없는 ‘불우이웃’이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즐거워했던 일이 신약성경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가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 우리가 주의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앞뒤 다 빼버리고, 베드로가 기적을 일으켜 앉은뱅이를 일으켰다, 이것만 생각합니다. 물론 맞는 말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이 말씀의 초점은 아닙니다. 오늘 사도행전 본문의 핵심은 ‘그가 일어나서 걸었다’가 아니라 8절의 말씀입니다. “그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다는 것이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앉은뱅이는 평소에 성전에 들어갈 꿈도 못 꿨던 사람입니다. 성전으로 들어가는 한쪽 문 앞에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에요. 그것도 자기 혼자 못 나오니까 다른 사람들이 업어다가 거기에 앉혀주면 누가 뭘 주는 사람이 없나, 하고 하루 종일 손 벌리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앉은뱅이가 어떻게 해서 일어나게 되었는가, 그 전에는 무슨 병이었기에, 베드로의 명령 한 방으로 싹 낫게 되었는가, 이런 것들은 유대인들이 관심을 가졌던 문제들입니다. 그런 건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전에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던 사람이, 사람들 틈에 끼지도 못하던 사람이 이제는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서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다, 이것이 신명기의 율법을 성취하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함께 기뻐하라고 하신 말씀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 2. 오늘날의 교회들

옛날의 ‘성전’은 오늘 우리 상황에서 말하자면 ‘교회’입니다. 21세기의 우리나라 교회들은, 아니 세계 교회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그 곳에서, 레위 사람과 떠돌이와 고아와 과부까지도 함께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고 있는가, 이 말씀을 생각하면 상당히 부끄럽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교회들을 한 세 가지 정도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무늬만 예수교인 교회들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구약부터 신약까지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이 약자들을 보호하하는 것이고, 그들과 함께 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이 땅의 하나님 나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죽어서 천국 가는 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런 교회의 재정예산을 보면 구제비도 별로 없습니다. 그저 살아서 열심히 기도해서 복 받고, 죽어서 천국에 가자, 이런 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그래도 예수 흉내라도 내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런 교회들은 예산에 구제비도 상당액 책정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심판하실 때 양과 염소의 무리로 나누고, 양의 무리를 칭찬하신다고 하니까, 열심히 남을 도우려고 하는 교회들입니다. 좋은 일이지요. 그래서 연말에 ‘불우이웃’도 돕고, 평소에도 꽤 열심히 그런 일을 합니다. 경로잔치도 열고, 무료 급식소 사업도 합니다. 복지관까지 운영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교회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지요.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자칫하면 이런 교회들은 ‘불우이웃’을 하나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불우이웃’은 우리가 도와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즐거워해야 할 ‘주체’입니다. 옛날 우리나라에 ‘고려장’ 제도가 있었다고 하지요. 이게 뭡니까? 부모는 늙어도 부모입니다. 끝까지 한 가족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고려장’이라는 풍습은 부모를 ‘가족’이 아닌 ‘대상’으로 바꾸어버리는 것이지요. 산에다 모셔다 놓고 먹을 것만 갖다 드립니다. 당시도 다 이유야 있었겠지만, 결과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불우이웃’에 대한 교회의 태도도 그렇습니다. ‘불우이웃’을 ‘대상’으로 정해놓고, 때때로 그들을 돕는 것, 이것도 ‘고려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같이 살기는 뭔가 불편하고 싫습니다.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하기에는 좀 양심에 걸립니다. 그래서 나온 게 ‘고려장’ 아닙니까?

그렇다면 ▶교회의 셋째 유형은 무엇인가, 이게 정답이 되어야 하는데,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입니다. 모세가 그랬지요.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그 곳에서” ‘불우이웃’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해라, 그겁니다. ‘불우이웃’은 우리가 도와야 할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너희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없도록” 하라고 하신 말씀대로, ‘불우이웃’이 아예 존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와 ‘불우이웃’을 분리해서는 안 됩니다.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는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 3.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

베드로가 앉은뱅이에게 그랬지요. 사도행전 3장 6절입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베드로에게 은과 금은 없었습니다. 돈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단 하나, ‘나사렛 사람 예수의 이름’ 그것뿐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성장해야 한다고 외칩니다. 왜 교회가 커져야 하느냐, 이렇게 물어보면 한 결 같이 나오는 이야기가, 그래야 가난한 사람을 도울 것 아니냐, 그럽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정신입니다. 예수님이 교회 키우고 재정 늘려서 가난한 사람 도우라고 했습니까? 베드로가 그랬습니까? 바울이 그랬습니까? 성경에 그런 말씀은 없습니다. 공연히 요즘 사람들이 갖다 붙인 말이지요. 베드로가 그랬지 않아요? ‘은과 금은 내게 없다.’ 베드로가 돈으로 불우이웃을 도왔습니까? 베드로는 오직 ‘나사렛 사람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그 때 앉은뱅이는 평생 꿈도 못 꾸던 경험을 한 겁니다.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예배를 드렸다고 했지요. 이것이 기적입니다.

요즘 교회의 문제가 그겁니다. 이른바 ‘불우이웃’이 함께 하기에는 문턱이 너무 높아요. 겉으로야, 예수님께서는 누구나 환영한다고 말하지요. 그런데 현실이 어디 그렇습니까? 다들 잘 차려 입고 와서 한다는 이야기가 재태크가 어떻고 아파트 값이 어떻고, 자동차가 어떻고… 순 그런 데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인데, ‘불우이웃’이 그 틈에 끼어서 어떻게 함께 즐거워합니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 교회는 축복 받은 교회에요. 어떤 사람이 오더라도 주눅 들 일이 없습니다. 다 함께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은 교회입니까?

엊그저께 저는, 어떤 분으로부터 다른 지방에 있는 어떤 교회 이야기를 듣고 참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칠십이 넘은 노인인데, 참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시는 분입니다. 이분이 젊어서 남편을 잃고 고생에 고생을 해가며 자녀들을 잘 키웠습니다. 지금은 아들과 함께 사시는데, 애석하게도 아들 며느리가 아직 예수를 믿지 않아요. 그래서 자나 깨나 기도 제목이 그겁니다. 아들과 며느리가 예수 믿게 해달라는 것이지요. 이분이 다니는 교회가 아마도 수천 명이 모이는 교회인 것 같습디다. 하루는 담임목사님을 만나서 부탁을 했답니다. 사실 아들과 며느리가 아직 예수를 믿지 않고 있으니, 우리 집에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주시면 좋겠다고. 그랬더니 담임목사님이 바빠서 못 오시겠다고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부목사님께 부탁을 했는데, 그분도 안 오시더랍니다. 전도사님께 부탁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글쎄, 저는 그 교회를 폄훼할 생각도 없고, 그 교회 목사님들과 전도사님들을 깎아내릴 생각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상당히 바빠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까 그렇게 됐겠지요. 그러나 만일 그 노인 집사님이 헌금 많이 내는 부자였다면 그래도 그분들이 그렇게 대했을까, 그건 좀 마음에 걸립니다. 그리고 제가 더 마음이 아픈 것은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의 구조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작정 큰 교회가 되려고 하고, 교회 부흥을 외쳐 대는데, 가장 기초적인 교회의 사명, 목회자의 사명도 감당하지 못하면서, 그렇게 덩치만 키워서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여러분의 담임목사가 못나기는 했지만, 적어도 저는 여러분이 요청하신다면 언제든지 달려가서 함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건 저뿐만 아니라 우리 장로님이나 집사님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 어떤 사람이 온다고 하더라도, 어떤 ‘불우이웃’이 온다고 하더라도 저와 여러분은 반갑게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함께 기뻐하며 함께 예배드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보다 더 좋은 교회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 맺는 말씀

비록 우리 교회가 ‘은과 금’이 없어 돈으로 구제 사업을 많이 하지는 못하지만, 예수님의 이름만은 확실하게 살아 있는 교회임을 자랑스럽게 여기셔도 좋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교회가 예수님의 이름이 더욱 빛나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101 내 인생 광내기
1100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1099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1098 벌거벗은 이사야
1097 사무엘처럼
1096 안디옥 공동체
1095 주님의 문
1094 아기야, 칼이 되어라!
1093 성령의 언어
1092 왜 어린이를 복되다 하는가?
1091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
1090 우상에 대하여
1089 내가 이 일을 지체 없이 이루겠다!
1088 우리 가운데에 하나님의 나라를!
1087 희망 전도사
1086 그리스도의 사람
1085 어둠의 자식, 빛의 자녀
1084 온 생명을 충만케 해주십시오!
1083 믿음의 어머니들
1082 합심하여 무슨 일이든지 구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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