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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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이사야서 40:27-31 
설교일 2007-01-07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송구영신 


■ 성서 본문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불평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불만을 토로하느냐?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이사야서 40:27-31)


■ 들어가는 말씀

올해 우리가 집중해서 묵상할 말씀은 이사야서 40장 31절 말씀입니다. 앞에 있는 이 말씀을 다 같이 힘차게 한 번 읽어 봅시다.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아서 새 힘을 얻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주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1. 마음이 넓어집니다.

오늘 구약 본문 이사야서 40장 27절에서 이사야가 말합니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불평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불만을 토로하느냐?” 희망 없이 살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짜증투성이가 되었습니다. 눈만 뜨면 불평이요, 입만 열면 불만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사야는 외칩니다. ‘주님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라.’ 주님을 소망으로 삼지 않고, 엉뚱한 데 소망을 두는 사람은 매사에 불평불만이지만, 땅과 하늘을 창조하신 분,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 분, 지칠 줄 모르시는 분,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 곧 우리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불평할 거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감사와 기쁨이 충만합니다.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조개껍질을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서로 더 큰 것, 더 예쁜 것을 가지려고 다투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어떤 아이가 진주조개를 주웠습니다. 그 아이는 그것을 아무도 몰래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조개껍질들을 모두 내놓았습니다. “이거 너희들 다 가져!” 그 동안 얼마나 아끼던 것들이었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조개껍질 같은 것들은 눈에 띄지도 않습니다. 더 소중한 것을 얻었기 때문이지요. 거기서 아량이 생기는 겁니다. “이거 너 다 가져!”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세상의 창조자이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신 하나님, 그런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는데, 세상의 시시한 것들 가지고 아옹다옹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 줘도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지요. 겉옷을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속옷까지 줘버려라, 왼뺨을 치는 사람이 있거든 오른뺨까지 돌려대 줘라. 이거, 어려운 일이지요. 무작정 이렇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미친 사람이겠지요. 그러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그 말씀이 이해가 갑니다. 세상을 다 얻었는데, 그까짓 뺨 한 대 더 맞는 것이 뭐가 대수겠습니까? 주님께서 마음만 먹으면 속옷 몇 벌, 겉옷 몇 벌이 아니라, 옷에 깔려 죽을 만큼 주실 텐데, 그까짓 옷 정도 가지고 시시하게 그럴 게 뭐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면 이렇게 사람이 통이 커집니다. 쩨쩨하게 세상 물질을 가지고 다툴 일이 없습니다. 아량이 생깁니다. 마음이 넓어집니다.

■ 2. 고난을 이깁니다.

친일 작가로 알려진 미당 서정주 선생이 이런 말을 했지요. ‘만일 일제 식민통치가 곧 끝날 줄 알았다면 친일할 사람이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초기에는 민족운동을 하던 사람들도 일제 말기에 가서 친일파로 돌아선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지요. 그 사람들이 처음부터 나쁜 마음을 가지고 친일한 것은 물론 아닐 것입니다. 문제는 뭐냐, 그것은 그들이 소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반드시 해방이 되고 나라를 되찾을 것이라고 하는 소망이 있었다면 결코 가문의 누가 되는 그런 짓들은 하지 않았겠지요.

우리 민족이 참 좋은 풍성들을 많이 지녔지만, 저는 좀 더 욕심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성에서 통이 좀 더 컸으면 좋겠어요. 일제 36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많이 흔들렸습니다. 많은 지식인들이 자의든 타의든 친일파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통이 장난이 아닙니다. 우리는 겨우 36년 가지고 난리 법석이 났는데, 이 사람들은 2천 년이에요. 나라 잃고 2천 년이나 지나서도 나라 찾을 꿈을 버리지 않았던 겁니다. 유대인들에게 못된 점도 있지만 이런 건 배워야 합니다. 유대인 노래 가운데 <하티크바>라는 게 있습니다. 전에 우리가 몇 번 불러봤던 노래지요.

우리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유다의 얼이 살아 있는 한
동방의 시온 사모하면서
언제나 그 곳 잊지 않는 한
우리 희망 살아 있다
이천 년 지켜온 희망
우리 땅에서 자유롭게 살리라
시온에서 예루살렘에서
우리 땅에서 자유롭게 살리라
시온에서 예루살렘에서


이 노래에서 ‘하티크바 미슈놋 알파임’(하~틱 바미 슈놀알파임) 하는 말이 핵심 구절입니다. ‘그 희망 지녀온 햇수 이천 년’이라는 말입니다. 고난, 고난, 하지만 나라 잃은 유대인들이 이 천 년 동안 받아온 고난을 어찌 다 말로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이 ‘희망’이라는 낱말 하나로 버티어 온 것입니다. 희망이 없으면 한 시도 못 견디는 것이 고난이지만, 희망이 있으면 이천 년이 아니라 이만 년도 견디고 버틸 수 있는 것이 고난입니다. 지금 삶이 고달프십니까? 고난 중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희망을 가지십시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고난도 기쁨으로 견딜 수 있습니다.

■ 3. 에너지가 생깁니다.

이사야서 35장 3절부터 4절까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맥풀린 손이 힘을 쓰게 하여라. 떨리는 무릎을 굳세게 하여라. 두려워하는 사람을 격려하여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의 하나님께서 복수하러 오신다. 하나님께서 보복하러 오신다. 너희를 구원하여 주신다” 하고 말하여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손에 맥이 빠졌습니다. 무릎이 떨릴 정도로 휘청거립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힘이 팍팍 솟아납니다. 하나님께서 복수하러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시달리고 고생하던 것이 얼마인지 모르는 사람들이었기에, ‘복수’하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친히 복수해주시겠다니,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사람 몸이 참 신기합니다. 맥이 빠져 있을 때는 만사가 귀찮습니다. 남은 것이라고는 짜증밖에 없습니다. 매사에 무기력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그런 경험을 해보지 않았습니까?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정신이 번쩍 들고, 기운이 펄펄 납니다. 대개 기쁜 소식을 들었을 때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요. 오늘 본문말씀 30절에서 31절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빌빌거리던 무릎에 힘이 생깁니다. 맥 빠진 손에 기운이 솟습니다. 가라앉았던 마음에 활기가 생깁니다. 침침하던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꿀꿀하던 기분에 생기가 돕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우울증이 없습니다. 어제 신문을 보니까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뇌졸중에 걸릴 가능성이 네 배나 높다고 합니다. 주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항상 새로운 에너지를 가지고 삽니다.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치 않습니다.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솟구쳐 올라갈 것입니다.

■ 맺는 말씀

새해가 되었습니다. 새해 첫 주일입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담임목사로서 여러분을 향하여 축복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차고 넘칩니다. 무슨 말로 축복을 하면 좋을까,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만, 아무리 좋은 말로, 아무리 길게 축복을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앞으로 두고두고 축복을 하겠습니다만,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복을 주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생각하지 못했던 복까지 듬뿍 내리시기를 바랍니다. 그 이상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 그것이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이제 시작된 이 한 해 동안, 여러분 모두가 오직 주님께 소망을 둠으로써 새 힘을 얻어, 넘치는 은혜 가운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101 내 인생 광내기
1100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1099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1098 벌거벗은 이사야
1097 사무엘처럼
1096 안디옥 공동체
1095 주님의 문
1094 아기야, 칼이 되어라!
1093 성령의 언어
1092 왜 어린이를 복되다 하는가?
»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
1090 우상에 대하여
1089 내가 이 일을 지체 없이 이루겠다!
1088 우리 가운데에 하나님의 나라를!
1087 희망 전도사
1086 그리스도의 사람
1085 어둠의 자식, 빛의 자녀
1084 온 생명을 충만케 해주십시오!
1083 믿음의 어머니들
1082 합심하여 무슨 일이든지 구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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